'오딧세이 2026' 봤다. 러닝타임 3시간, 인터미션 없음 - Los Angeles - 1

LA에서 영화 한 편 본다는 건 이제 취미가 아니라 소비 활동이다.

AMC The Grove 14에서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딧세이'를 봤다. 온라인 예매 29불. 여기에 나초하고 콜라 2개 오더하면 50불이 증발한다.

3천 년 전 오디세우스가 바다에서 고생한 값을 왜 21세기 내 카드가 치르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긁었다.

미리 말하지만. 이 글은 스포일러 범벅이다.

아직 안 본 사람은 지금 뒤로 가기를 누르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경고 1: 러닝타임 3시간, 인터미션 없음

이거 진짜 중요하다. 거의 3시간짜리 영화인데 쉬는 시간이 없다. 없다. 진짜 없다.

그러니까 상영관 들어가기 전에 무조건 화장실부터 다녀와라.

그리고 라지 사이즈 콜라를 홀짝거리며 보겠다는 계획은 접어라.

그건 영화 감상이 아니라 인내력 테스트 시작이니까.

나는 그래도 나름 잘 참는 편인데도 후반부엔 허리가 시멘트처럼 굳었다.

경고 2: 내 친구는 순교자였다

같이 간 친구는 나보다 훨씬 극적인 관람을 했다.

엔딩 30분 남기고 꽉찬극장에서 화장실 가보려 했는데, 하필 그 타이밍에 영화가 클라이막스다 ㅋ.

오디세우스가 20년 만에 집에 돌아와 놓고도 정체를 안 밝히고 눈치만 살피는 구간.

관객 입장에선 "야 그냥 깽판 놓고 원수들 다죽여버려!" 소리가 목구멍까지 차오르는데, 놀란은 고구마를 정성스럽게 먹인다.

그러다 막판 20분, 쌓아놓은 걸 한 방에 터뜨린다. 친구는 결국 화장실을 포기하고 이를 악문 채 끝까지 봤다.

그리고 엔딩 크레딧 첫 줄이 올라가기도 전에 후다닥 튀어나갔다.

'오딧세이 2026' 봤다. 러닝타임 3시간, 인터미션 없음 - Los Angeles - 2

2억 5천만 달러가 어디로 갔는지는 화면이 알려준다

제작비 약 2억 5천만 달러. 보통 이런 숫자는 그냥 보도자료 속 숫자로 흘려듣는데, 이 영화는 화면이 영수증을 보여준다.

바다, 전쟁, 배, 괴물, 섬, 그리고 사람 크기를 우습게 만드는 세트가 IMAX 스크린을 꽉 채운다.

그리스 신화 배경 영화 중에서도 손에 꼽는 규모고 기록적인 제작비라는 말이 나올 만하다.

CG 티가 덜 나는 게 아니라, 애초에 진짜로 만들어 놓고 찍은 느낌이다.

놀란은 요즘 시대의 스필버그다

개인적인 생각인데, 지금 이 시대에 "감독 이름만 보고 극장 가는" 몇 안 되는 사람이 놀란이다.

나한테는 요즘의 스티븐 스필버그 같은 존재다.

집 TV로 봐도 되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사람을 기어이 극장 의자에 앉히는 사람이다.

그게 요즘 얼마나 희귀한 재능인지 생각해 보면 29불이 아깝지 않다. ...아니 조금은 아깝다. 그래도 낸다.

맷 데이먼 캐스팅, 이건 계산된 한 수다

오디세우스는 단순한 근육 전사가 아니다. 머리가 미친 듯이 좋고, 사람 심리를 읽고, 거짓말도 능수능란하고, 정 안 되면 직접 다 때려잡는 인간이다.

한마디로 두뇌와 주먹이 동시에 설득력 있어야 하는 배역이다.

그래서 배우가 똑똑해 보여야 하고, 딕션이 좋아야 하고, 액션도 어색하지 않아야 한다.

이거 조건이 까다롭다.

여기에 <The Bourne Supremacy>의 제이슨 본을 했던 맷 데이먼이 들어오니 그림이 맞아떨어진다.

머리 굴리는 장면에선 진짜 영리해 보이고, 칼 뽑는 장면에선 "그래, 저 인간이면 저 정도는 하지"라는 납득이 자동으로 된다.

'오딧세이 2026' 봤다. 러닝타임 3시간, 인터미션 없음 - Los Angeles - 3

그리고 거지로 분장한 주인공이 활을 잡는 순간

영화에서 제일 좋았던 건 마지막 이타카 시퀀스다.

20년을 떠돌다 겨우 집에 왔는데, 자기 집 거실에 아내 페넬로페를 노리는 Suitor (처음 보는 단어다. 구혼자라고 번역이 된다는데.. ) 놈들이 바글바글하다.

보통 영화라면 여기서 주인공이 칼 뽑고 뛰어든다.

그런데 오디세우스는 안 그런다. 상황 보고, 사람 파악하고, 조용히 함정을 판다.

그러다 활을 잡는 순간, 극장 공기가 바뀐다.

2시간 넘게 고구마 먹으며 버틴 관객한테 감독이 "자, 이제부터 너희가 기다린 거 보여줄게" 하고 뚜껑을 딴다.

친구 표현대로 고구마 열 개 먹이고 마지막에 사이다 한 병 주는 장면인데, 문제는 그 사이다가 너무 시원해서 앞의 고구마가 다 용서된다는 거다.

단점도 있다, 솔직히

3시간이 짧게 느껴졌다고는 절대 말 못 하겠다. 중간중간 늘어지는 구간이 분명히 있다.

다만 IMAX 화면이 눈앞을 꽉 채우고 있으면 그 늘어짐도 어느 정도 버텨진다.

반대로 말하면, 이 영화를 집에서 보다가 냉장고 열고 전화 받고 하면 재미의 절반은 그냥 증발한다.

이건 극장에서 봐야 하는 영화다.

흥행은 크게 할 것 같다. 놀란이라는 이름값, 맷 데이먼, 그리고 인류가 3천 년째 우려먹는 검증된 원작.

블록버스터 조건은 다 갖췄다.

총평: 10점 만점에 9점

뺀 1점은 순전히 인터미션 때문이다.

세 시간짜리 영화 만들면서 중간에 10분 쉬는 시간 하나 넣어주면 어디 덧나나.

예술적 몰입이 중요한 건 알겠는데, 45세 넘어가면 영화보다 방광이 먼저 현실을 알려준다.

놀란 감독님, 다음 작품엔 인터미션 좀 부탁드립니다. 진심으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