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부모들이 대입에 무관심한 척 연기하는 이유 - El Paso - 1

얼마 전 동네 학부모 모임에서 재미있는 장면을 봤다. 한 아버지가 커피를 마시며 "우리 애 대학 지원은 완전히 자기가 알아서 해요, 저는 손 하나 안 댑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거였다.

그런데 며칠 뒤 우연히 그 집 앞을 지나가다 보니, 새벽 한 시가 넘도록 거실 불이 켜져 있고 부자가 나란히 앉아 노트북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마 그 화면에 떠 있던 건 에세이 초안이었을 것이다.

미국 부모들 사이에서 이런 장면은 생각보다 흔하다. 겉으로는 관여 안 하는 척하면서, 뒤에서는 누구보다 열심히 손을 보태는 것이다.

왜 다들 이렇게 안 도와주는 척을 할까. 답은 의외로 입학사정관들 쪽에 있다.

매년 수천 개의 에세이를 읽는 입학사정관들은 문장 어디쯤에서 어른의 어휘와 문체가 튀어나오는지 귀신같이 잡아낸다는 게 여러 입시 전문가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평소 학생 글에 안 쓰던 표현이 나오거나 고등학생답지 않게 매끈한 문장이 이어지면, 그 자체가 감점 요인이 된다고 한다.

그러니 부모 입장에서는 도와주긴 도와줘야겠는데 티는 절대 나면 안 되는, 묘하게 피곤한 줄타기를 하게 되는 셈이다. 다들 "우리 애는 알아서 해요"라는 대사를 입에 달고 사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게 아닐까.

사실 이 원칙은 분위기만이 아니라 규정으로도 못박혀 있다. 대부분의 대학 지원서는 제출 버튼을 누르기 전에, 에세이가 본인이 직접 쓴 정직한 결과물이라는 걸 학생 스스로 확인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니 부모 손이 많이 탄 걸 인정하는 순간, 원칙적으로는 곤란해지는 구조다.

이 눈치 게임이 부담스러운 집들은 아예 전문가에게 맡기는 쪽을 택한다. 입시 컨설팅 업계 자료를 보면 상담료는 평균 5천 달러 선이지만, 적게는 200달러부터 많게는 20만 달러가 넘는 경우까지 폭이 상당히 넓다.

뉴욕의 한 컨설팅 업체는 고등학교 4년 동안 연간 12만 달러를 받고, 시험 준비 비용까지 합치면 졸업할 때까지 가족이 쓰는 돈이 50만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웬만한 집 한 채 값을 입시에 쏟아붓는 셈이다.

이렇게 개인 상담 시장이 커지다 보니 업계 전체 매출은 2024년 기준 30억 달러 규모로 불어났다. 대학 입시가 하나의 산업이 됐다는 말이 과장은 아닌 것 같다.

학교 안에서 상담을 충분히 못 받는 것도 한몫한다. 미국 공립학교의 학생 대 진학상담교사 비율은 평균 405대 1이라, 상담교사 한 명이 신경 써줄 수 있는 학생 수 자체가 물리적으로 빠듯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결국 부모가 카운슬러 역할까지 떠맡게 되고, 이게 지나치면 이른바 "스노우플라우 부모"라는 소리를 듣는다. 이 표현은 2019년 명문대 입시 비리 스캔들 때 본격적으로 퍼졌는데, 당시 일부 학부모가 자녀 입시를 위해 수십만 달러의 뒷돈을 쓴 사실이 드러나면서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그 사건 이후로 분위기가 묘하게 바뀌었다. 자녀 입시에 관여한 티를 내는 것 자체가 어딘가 떳떳하지 못한 일처럼 여겨지게 된 것이다.

재미있는 건 이 눈치 게임이 부모 쪽에서만 벌어지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아이들도 친구들 앞에서는 부모가 얼마나 도와줬는지 굳이 말하지 않는다. 다들 순전히 자기 힘으로 붙은 것처럼 보이고 싶어 하는 건 부모나 자식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그러다 보니 부모들은 실제로는 열심히 돕고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거리를 두는 척하는 이중 플레이를 하게 됐다. 아이의 독립성을 존중해서라기보다, 남들 눈에 극성 부모로 비치는 게 더 두렵기 때문일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부모가 자식 일에 마음 쓰는 게 뭐가 그렇게 부끄러운 일인가 싶다. 도와주는 걸 도와준다고 인정하고 그 안에서 선을 지키는 쪽이, 몰래 숨기면서 서로 눈치나 보는 것보다는 훨씬 건강한 방식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