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벌써 20년전 한국마켓 옆 비디오 가게에서 홍콩영화 빌려볼때 나는 중국 사람들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었다.
의천도룡기 같은 무협소설을 드라마로 만들고, 몇 년 지나면 또 만들고, 배우 바꿔서 또 만들고, 10년쯤 지나면 최신 CG 넣어서 다시 만든다.
나는 가끔 그걸 보면서 도대체 장무기 이야기를 몇 번이나 우려먹는 거냐고 웃었다.
그런데 미국도 별로 다를 게 없었다.
스파이더맨이다.
내가 LA에서 살면서 극장에서 본 스파이더맨만 생각해도 토비 맥과이어가 있었고, 그다음에는 앤드류 가필드가 나왔다.
이제 끝났나 싶었더니 톰 홀랜드가 나타났다.
톰 홀랜드가 누군가?
지금 대박났다고 난리인 놀란의 영화 오딧세이에서 왕자로 나오는 그 배우다. 아주 물들어 올때 노젓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모터보트를 타고있다.
그가 이번에 스파이더맨으로 나온게 2026년작 'Spider-Man: Brand New Day'다.
솔직히 나는 이런 생각부터 들었다.
스파이더맨으로 이제 무슨 이야기를 더 하지?
거미에 물려서 능력이 생긴 것도 알고, 삼촌 이야기 알고, 여자친구 이야기 알고, 악당도 웬만한 놈들은 다 나왔다.
심지어 전작 'No Way Home'에서는 옛날 스파이더맨들까지 다시 불러냈다.

이 정도면 정말 냄비 바닥까지 긁어먹은 것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결과를 보니 내가 틀렸다.
7월 31일 미국에서 개봉한 'Brand New Day'는 북미 개봉 첫 주말에 약 3억6천만 달러를 벌었다.
'Avengers: Endgame'의 기록까지 넘어 북미 역대 최고 오프닝 기록을 세웠다.
개봉 6일 만에 전 세계 10억 달러를 넘었고, 8월 말 현재 세계 흥행수입은 22억 달러를 넘어섰다.
올해 영화 가운데 압도적인 1위다.
이 정도면 그냥 잘된 영화가 아니다. 또 하나의 괴물 같은 스파이더맨이 나온 것이다.
더 재미있는 건 요즘 사람들이 슈퍼히어로 영화에 질렸다는 이야기가 몇 년 전부터 계속 나왔다는 것이다.
마블 영화가 예전 같지 않다는 말도 많았다. 나도 사실 동의했다.
그런데 빨간 옷 입고 뉴욕 빌딩 사이를 거미줄 타고 날아다니는 이 친구가 다시 나오니까 사람들이 또 극장으로 몰려갔다.
왜 그런가 생각해보면 스파이더맨은 다른 슈퍼히어로하고 조금 다르다.
슈퍼맨은 거의 신이고, 배트맨은 엄청난 부자다.
그런데 피터 파커는 늘 돈 없고, 연애 꼬이고, 친구 문제 생기고, 학교나 직장에서도 고생한다. 엄청난 능력이 있는데도 인생 자체는 별로 편하지 않다.
이번 영화도 세상이 피터 파커의 정체를 잊어버린 이후 혼자 살아가는 이야기를 중심에 놓았다.

그러니까 관객 입장에서는 거미줄 액션을 보러 갔다가 결국 외롭고 인간적인 피터 파커 이야기에 다시 빠지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중국의 의천도룡기도 똑같다.
장무기가 몇 번째 장무기인지 알면서 또 본다. 새로운 배우가 나오면 이번 장무기는 어떤가 궁금해서 다시 보는 것이다.
미국 사람들도 만만치 않다.
피터 파커 부모도 알고, 삼촌도 알고, MJ도 알고, 거미줄이 어디서 나오는지도 안다.
그래도 또 본다.
그리고 더 웃기는 것은 나도 새 스파이더맨이 나오면 또 볼 것 같다는 것이다.
결국 영화라는 게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만 필요한 것은 아닌가 보다.
우리가 이미 알고 좋아하는 이야기를 그 시대에 맞게 다시 잘 만들어주면 된다.
중국 사람들은 장무기를 10년마다 다시 만나고 미국 사람들은 피터 파커를 다시 만난다.
그리고 2026년 흥행 성적을 보면 아직 스파이더맨 거미줄은 끊어질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다.
이 정도 돈을 벌었으니 할 이야기가 없어도 또 만들어낼 것이다.
그런데 아마 또 재미있을 것이다.


데스키우아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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