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람들이 밤에도 커튼을 안 치는 진짜 이유 - Miami - 1

퇴근하고 동네를 걷다 보면 미국 주택가에서 종종 눈에 띄는 장면이 있다.

거실 창문이 훤히 열려 있어서, 지나가면서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 보는 가족의 모습까지 다 보이는 것이다.

부엌에서 설거지하는 모습이나 저녁 식탁에 둘러앉은 가족까지 훤히 들여다보일 때도 있다.

처음 이 나라에 왔을 때는 그게 참 낯설었다고 생각한다.

밤이 되면 당연히 커튼을 치는 게 예의라고 배우고 자랐으니 말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게 그저 개인의 습관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사회의 구조와 맞닿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집의 생김새 자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교외가 확장되면서 마당이 넓고 이웃집과 거리를 둔 단독주택이 표준이 됐다.

그 시기에 유행한 것이 바로 거실 한쪽 벽을 통유리로 만든 이른바 픽처 윈도우, 우리말로 하면 통창이다.

애초에 집을 가리는 게 아니라 보여주는 방향으로 설계가 된 셈이다.

이웃과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사는 한국의 아파트 구조와는 출발선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는 조금 의외의 이야기인데, 창문을 열어두는 게 오히려 동네를 안전하게 만든다는 인식이다.

도시학자 제인 제이컵스는 1961년에 낸 책에서 거리를 향한 창문이 많을수록 자연스럽게 감시의 눈이 늘어나 범죄를 줄인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거리 위의 눈이라는 개념인데, 이게 미국 주택가 설계와 치안 인식에 오래도록 영향을 줬다.

커튼을 닫아버리면 오히려 그 집도, 그 거리도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아무도 모르는 사각지대가 된다는 논리다.

세 번째 이유는 솔직히 말해 재산과 자신감의 문제이기도 하다.

2013년 미국 에너지부 조사를 보면 연소득 15만 달러 이상인 가구는 2만에서 2만9천 달러 사이인 가구보다 창문을 가리지 않고 사는 비율이 두 배 높았다.

실제로 그런 데이터가 있다는 걸 처음 봤을 때는 나도 조금 놀랐다.

최근에는 미국 매체들이 커튼 없는 통유리 창을 아예 부유층의 새로운 과시 방식으로 다루기도 한다.

넓은 마당과 보안 시스템이 있는 집일수록 굳이 천으로 가릴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여기에 부동산 시장의 습관도 한몫한다고 생각한다.

집을 내놓을 때 부동산 중개인들이 가장 먼저 하는 조언이 커튼을 걷고 블라인드를 올려서 집을 밝고 넓어 보이게 만들라는 것이다.

그렇게 몸에 밴 습관이 이사한 뒤에도 그대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네 번째는 기술의 발달이다.

요즘 미국 주택에는 알람 시스템과 현관 카메라, 동작 감지등이 기본으로 붙어 있는 경우가 많다.

물리적으로 시야를 가리는 커튼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보안 장비로 안심하는 쪽을 택하는 셈이다.

그래도 정말 가리고 싶은 공간은 따로 있다.

침실이나 욕실 창문에는 젖빛 유리나 블라인드를 달아서 꼭 필요한 만큼만 가리는 식이다.

거실이나 부엌처럼 손님을 맞는 공간은 열어두고, 사적인 공간만 선택적으로 가리는 셈이니 무작정 다 열어놓고 사는 건 아니다.

재미있는 건 유럽에서도 비슷한 문화가 있다는 점이다.

네덜란드는 밤에 창문을 가리지 않는 전통으로 유명한데, 숨길 게 없다는 공동체 신뢰를 보여주는 방식이라는 설명이 따라붙는다.

미국의 경우는 공동체 신뢰보다는 개인의 재산과 안전 장비에 대한 자신감 쪽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둘 다 커튼을 안 친다는 결과는 같지만 그 속내는 사뭇 다른 셈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미국식 개방성이 완전히 이해되지는 않는다.

남의 눈에 우리 집 안이 다 보인다는 게 여전히 조금은 불편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도 각자 자기 집과 동네를 지키는 방식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게 새삼 흥미롭다고 느낀다.

결국 커튼 하나에도 그 나라의 주거 역사와 치안에 대한 믿음, 그리고 살림살이에 대한 자신감까지 다 묻어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