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50 넘어서 베스티가 어디 있냐, 각자도생이지 ㅋㅋ - Los Angeles - 1

미국에서 살다 보면 한국보다 유난히 자주 듣는 말이 하나 있습니다.

"My best friend."

회사에서도 듣고, 동네에서도 듣고, 술자리에서도 듣습니다.

그런데 이 말을 하는 사람이 꼭 20대도 아닙니다. 마흔 넘은 아저씨가 50대 아저씨를 가리키면서 "This is my best friend"라고 소개합니다.

저는 미국 살면서 이게 좀 신기했습니다.

한국에서 베프, 절친 이런 말은 아무래도 학창 시절 느낌이 좀 있잖아요.

특히 남자들은 나이 마흔 넘어가면서부터 친구를 소개할 때 "내 베스트 프렌드야"라고 잘 안 합니다.

그냥 "친한 형이야", "오래된 친구야", "같이 일했던 사람이야" 정도죠.

솔직히 나이 50 넘어가면 베스티가 어디 있습니까. 각자도생이지 ㅋㅋ.

자식 키우고, 모기지 내고, 회사 다니고, 사업하고, 부모님 챙기다 보면 친구 얼굴 보는 것도 일입니다.

LA 살면 더 그렇습니다. 같은 LA에 살아도 밸리에서 오렌지카운티 한번 만나러 가려면 약속부터 잡아야 합니다.

요즘은 물가도 팍팍해서 어디 옛날처럼 술먹고 노래방가고 어울리지도 않게 된지 오래 입니다.

그런데 미국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도 best friend라는 말을 별로 쑥스러워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2021년 미국 성인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59%가 자신에게 베스트 프렌드가 있다고 답했습니다.

재미있는 건 1990년에는 이 비율이 75%였다는 겁니다. 미국 사람들도 예전보다 친구가 줄어든 겁니다.

가까운 친구 숫자도 1990년 평균 2.94명에서 2021년 2.23명으로 감소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친구가 한 명도 없다고 대답한 사람은 3%에서 12%로 늘었습니다.

특히 남자들이 심합니다. 친구가 한 명도 없다고 답한 남성이 1990년에는 3%였는데 2021년에는 15%까지 올라갔다고 합니다.

이 정도면 미국 남자들도 나이 먹고 각자도생하는 건 한국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런데 차이가 하나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best friend라는 표현 자체를 한국보다 훨씬 편하게 사용합니다.

게다가 반드시 한 명이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베스트 프렌드가 있다고 답한 사람들에게는 그런 친구가 평균적으로 두 명 정도 있다고 합니다.

한국식으로 생각하면 제일 친한 친구가 어떻게 두 명이냐는 겁니다.

1등이 두 명이면 공동 1등인가 싶은데, 미국에서는 굳이 그렇게 서열을 따지는 개념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냥 내가 믿고 편하게 지내는 가까운 사람이면 "one of my best friends"라고 합니다.

어릴 때부터 BFF라는 말을 달고 사는 문화도 영향을 줬을 겁니다. 아이들이 BFF 팔찌를 차고 다니고 카드에도 쓰고 사진에도 붙입니다.

그렇게 자란 사람들이 40대, 50대가 됐다고 갑자기 "이 나이에 무슨 베스트 프렌드냐"라고 생각할 이유가 없는 거죠.

회사에서도 비슷합니다.

갤럽의 직원 몰입도 조사에는 아예 직장에 베스트 프렌드가 있느냐는 질문이 들어갈 정도입니다.

처음 보면 회사 설문에서 왜 친구를 물어보나 싶은데, 결국 직장에서 얼마나 강한 인간관계와 신뢰를 갖고 있는지를 보는 질문입니다.

생각해보면 월요일 아침에 회사 가서 업무 이야기 말고도 편하게 농담 한마디 할 사람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꽤 큰 차이입니다.

회사가 힘들어도 사람이 좋아서 버티는 경우가 있으니까요.

LA 한인사회에서 오래 지내다 보니 한국 사람과 미국 사람의 차이가 이런 데서 가끔 보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친해지는 데 시간이 좀 걸립니다. 대신 한번 친해지면 오래 갑니다.

미국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표현이 빠른 편입니다. 몇 년 알고 지낸 사람에게도 "He's my best friend"라고 별 부담 없이 말합니다.

물론 그 사람이 정말 죽고 못 사는 친구라는 뜻까지는 아닐 수도 있습니다.

저도 예전에는 그런 표현을 들으면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그 정도였나?'

그런데 지금은 그냥 미국식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굳이 친구 관계까지 1등, 2등, 3등으로 순위를 매길 필요가 없는 겁니다.

내가 좋아하고 믿는 사람이면 best friend라고 한번 불러주는 거죠.

그래도 개인적으로 50대가 되면 현실은 좀 다르다고 봅니다.

20대에는 밤 11시에 전화해서 "나와" 하면 나갈 친구가 있습니다.

30대에는 주말에 만날 친구가 있습니다. 40대부터는 한 달 전에 약속 잡아야 하고, 50대쯤 되면 "언제 밥 한번 먹자" 해놓고 다음 해가 되는 경우도 생깁니다.

친구가 싫어진 게 아니라 각자 짊어진 인생이 너무 많아진 겁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친구 숫자가 줄어드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미국 사람들처럼 가끔은 "This is my best friend"라고 말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듣는 사람 기분 좋고, 말하는 사람 돈 드는 것도 아니니까요.

어차피 50 넘어가면 다들 각자도생입니다.

그 와중에 가끔 전화해서 밥이나 먹자고 하는 사람 하나 있으면, 사실 그 사람이 베스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