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도 없는데 마음에 남는 영화, Boyhood (2014) - Houston - 1

얼마전에 영화 보이후드(Boyhood, 2024)를 봤을 때 특별한 반전도 없고 심심하기만 한 영화가 무려 2시간 45분짜리 영화라서 당황했다.

무슨 엄청난 사건이 벌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냥 한 아이가 자라는 이야기다.

학교를 다니고 엄마를 따라 이사를 간다.

친부모는 싸우다 결국 이혼하고, 엄마는 다시 젋은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 주인공인 소면은 크면서 새 친구를 만나고, 여자친구도 생긴다.

그런데 끝까지 보고 나면 이상하게 마음에 남는다.

이 영화가 유명한 가장 큰 이유는 실제로 12년에 걸쳐 촬영했다는 점이다.

주인공 메이슨 역의 Ellar Coltrane을 여섯 살 무렵부터 열여덟 살까지 계속 촬영했다.

아역배우와 성인배우를 바꾼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보는 앞에서 진짜 아이가 청년으로 자란다. 이 무슨 미친 기획력인가 ㅋㅋ.

처음에는 얼굴이 동글동글했던 꼬마였는데 어느 순간 머리가 길어지고 목소리가 변한다.

그러다 여자친구가 생기고 대학 갈 준비를 한다.

이게 참 묘하다.

영화 속에서는 "5년 후" 같은 자막도 거의 없다. 어느 순간 보니까 아이가 커 있다.

우리 인생도 사실 그렇지 않나 싶었다. 매일 거울을 보면 달라진 게 없는데 10년 전 사진을 보면 깜짝 놀라는 것처럼 말이다.

특히 텍사스에 살아본 사람이라면 영화 속 풍경이 굉장히 익숙하다.

휴스턴을 비롯해 San Marcos, Austin 주변 등 텍사스 여러 지역에서 촬영됐다.

넓은 도로, 큰 길가 옆 학교 운동장, 끝없이 펼쳐지는 하늘을 보고 있으면 실제로 내가 사는 텍사스가 나온다는 느낌이 든다.

아무 일도 없는데 마음에 남는 영화, Boyhood (2014) - Houston - 2

한국 사람 입장에서 재미있는 건 가족의 모습이다.

메이슨의 부모는 이혼했고 엄마는 아이들을 데리고 살아간다.

다시 결혼하지만 그것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 아버지는 철없는 사람처럼 보이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조금씩 아버지다운 사람이 되어간다.

Patricia Arquette가 연기한 엄마를 보고 있으면 한국 부모들 생각도 많이 난다.

아이 키우고, 공부하고, 직장 다니고, 어떻게든 집안을 끌고 간다. 그러다 마지막에 아들이 대학으로 떠날 때 엄마가 허탈해하는 장면이 있다.

아이 키우느라 내 인생을 다 보낸 것 같은데 어느 날 아이는 자기 인생을 찾아 나가버린다.

한국 부모들이 보면 그 장면에서 마음이 좀 이상할 것 같다.

Patricia Arquette가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것도 이해가 된다.

Ethan Hawke가 연기한 아버지도 좋았다. 완벽한 아빠가 아니다.

처음에는 자기 인생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사람인데 아이들과 계속 만나면서 조금씩 변한다. 그래서 오히려 현실적이다.

보이후드에는 악당도 없고 영웅도 없다. 그냥 시간이 악당이고, 시간이 주인공이다.

Richard Linklater 감독이 정말 보여주고 싶었던 것도 결국 이것 아니었을까 싶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메이슨보다 오히려 내 지난 시간이 생각난다.

나는 10년 전에 뭘 하고 있었지? 그때 같이 있던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 있지?

그 시절에는 그렇게 중요했던 일이 왜 지금은 아무것도 아니게 됐을까.

두 시간이 넘는 영화를 보고 나왔는데 남의 인생을 본 것 같다가도, 가만히 생각하면 결국 내 인생을 조금 들여다본 것 같은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