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마다 헷갈리는 두 개의 달력, 이민자의 고민 - Portland - 1

매년 이맘때가 되면 저는 달력 두 개를 동시에 들여다보는 버릇이 있습니다.

하나는 냉장고에 붙어 있는 미국 달력이고, 다른 하나는 핸드폰에 저장해 둔 음력 달력입니다.

추수감사절이야 매년 11월 넷째 주 목요일로 정해져 있어서 따로 찾아볼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추석은 다릅니다. 올해는 며칠인지 매번 검색을 해봐야 안심이 되더군요.

추석은 음력 8월 15일로 고정되어 있지만, 이걸 양력으로 옮기면 매년 날짜가 바뀌어서 9월 초부터 10월 초 사이 어디쯤에 걸리게 됩니다.

그러니 해마다 달력 앱을 열어 손가락으로 날짜를 짚어봐야 하는 건 이민자들에게는 꽤 익숙한 연례행사입니다.

반면 추수감사절은 1941년에 미국 연방법으로 11월 넷째 목요일로 못박힌 뒤로 단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습니다.

루스벨트 대통령이 쇼핑 시즌을 늘리려고 날짜를 옮겼다가 여러 주에서 반발이 나오자, 결국 의회가 나서서 지금의 날짜로 아예 법으로 고정해버린 결과입니다.

그 배경을 알고 나니 묘하게 이해가 갔습니다. 미국은 날짜를 법으로 딱 정해버리는 쪽을 선택했고, 한국은 계절과 달의 움직임을 그대로 따라가는 쪽을 선택한 셈이니까요.

문제는 이 두 가지 방식이 이민자의 일상에서는 그냥 나란히 놓이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추수감사절은 회사도 학교도 당연히 쉬는 날이라 가족 모임을 잡을 때 아무도 의문을 갖지 않습니다.

그런데 추석이나 설날에 가족이 모이려면 누군가는 반드시 휴가를 내야 하고, 아이는 학교에 결석계를 써야 합니다.

회사에 추석 당일 휴가를 쓰겠다고 하면 열에 아홉은 그게 무슨 날이냐고 되묻습니다.

매번 음력이 어쩌고 조상님이 어쩌고 설명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개인 사정이라고 둘러대는 쪽이 편해지더군요.

실제로 뉴욕주는 2023년에야 음력설을 학교 휴일로 인정하는 법을 만들었고, 실제로 학교가 문을 닫은 건 2025년이 처음이었습니다.

캘리포니아 정도가 주 차원에서 음력설을 공식 휴일로 인정하고 있을 뿐, 나머지 지역에서는 여전히 평범한 평일입니다.

그러니 미국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 눈에는 추수감사절은 온 나라가 함께 쉬는 큰 명절이고, 추석은 엄마 아빠만 신경 쓰는 개인적인 행사처럼 비칠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들은 크리스마스는 늘 12월 25일인데 왜 설날은 해마다 날짜가 바뀌냐고 묻곤 합니다.

그 질문에 제대로 답하려면 결국 음력과 양력의 차이부터 짚어야 하니, 명절 하나 챙기는 일이 어느새 작은 강의가 되어버립니다.

저희 집 안에서도 자연스럽게 추수감사절 저녁 식사가 일 년 중 가장 크게 다 같이 모이는 날이 되어버렸습니다.

추석 상은 차리더라도 평일 저녁이나 그 근처 주말로 옮겨서 조촐하게 지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처음에는 이게 좀 씁쓸했습니다. 명절인데도 명절 대접을 못 받는 기분이랄까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추수감사절에 아무 부담 없이 다 같이 모여 저녁을 먹고, 추석에는 우리끼리 조용히 송편을 빚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두 번의 기회가 생긴 셈이니까요.

달력이 두 개라는 건 결국 일 년에 명절이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다만 그 두 번 중 하나는 사회가 통째로 받쳐주고, 다른 하나는 순전히 우리 가족의 의지로만 지켜야 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추석이 다가오면 미리 달력에 표시부터 해둡니다.

아무도 대신 챙겨주지 않는 날이니, 저라도 먼저 챙겨야 그 날이 명절답게 지나간다는 걸 알게 됐거든요.

두 개의 달력을 산다는 건 번거로운 일이지만, 그만큼 일 년에 감사할 이유가 두 번 생기는 일이기도 하다고, 요즘은 그렇게 생각하며 지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