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람들이 직업 묻는 걸 실례로 여기기 시작한 이유 - Rapid City - 1

지난 주말 동네 바비큐 모임에서 재미있는 장면을 봤다. 새로 이사 온 옆집 사람한테 인사를 건네던 이가 "그래서 무슨 일 하세요"라는 말을 꺼내려다 말고 갑자기 날씨 얘기로 화제를 돌리는 거다.

예전 같으면 자연스럽게 나왔을 질문인데, 요즘은 다들 한 박자 망설인다. 나만 그런 줄 알았더니 주변에서도 비슷한 얘기를 자주 듣는다.

미국에서 "무슨 일 하세요"는 원래 처음 만난 사람한테 던지는 대표적인 질문이었다. 직설적으로 묻고 답하는 문화가 강한 나라다 보니, 상대를 파악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 직업을 묻는 거였다.

한인 사회에서는 이 질문이 한술 더 떴다. 직업 다음에 어느 동네 사는지, 아이는 어느 학교 다니는지까지 줄줄이 이어지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데 최근 미국 매너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 질문을 아예 권하지 않는 분위기다. 별생각 없이 던진 질문이 상대 소득이나 학력을 가늠하려는 시도로 비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생각해보면 일리 있는 지적이다. 직업이라는 게 결국 사회적 서열과 붙어 다니는 정보라, 물어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상대를 저울질하게 되는 셈이다.

심리학 쪽 연구를 보면 더 무거운 이유도 있다. 직장을 잃은 사람일수록 자기 정체성 자체가 흔들린다는 결과가 꾸준히 나온다.

실직이 단순히 수입이 끊기는 문제가 아니라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까지 건드린다는 얘기다. 그런 사람 앞에서 무심코 직업을 물으면 본의 아니게 아픈 곳을 찌르는 셈이 된다.

요즘처럼 여기저기서 감원 소식이 들리는 시기에는 이 질문이 더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몇 달째 구직 중인 사람한테 첫 마디로 직업을 물으면 분위기가 순식간에 어색해진다.

게다가 요즘은 일하는 방식 자체가 예전 같지 않다. 정규직 하나로 사는 사람보다 여러 일을 걸쳐서 하는 사람, 몇 달씩 일을 쉬는 사람, 프리랜서로 떠도는 사람이 훨씬 많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일 하세요"라는 질문은 대답하기가 애매해졌다. 한마디로 정리가 안 되니까 질문 자체가 부담스러워진 거다.

젊은 세대로 갈수록 이런 흐름이 더 뚜렷하다. 일은 그저 생활비를 버는 수단일 뿐, 자기가 누구인지를 설명하는 잣대로 삼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이 많아졌다.

나는 원래 이런 예의범절 논쟁을 보면 좀 답답한 편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되는데, 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매너 전문가들이 내놓은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직업 대신 요즘 즐겨 보는 것, 주말에 뭐 했는지, 취미가 뭔지를 물으라는 거다.

일 얘기를 아예 피하라는 게 아니라 순서를 바꾸라는 얘기로 들린다. 상대가 먼저 자기 일 얘기를 꺼내면 그때 자연스럽게 이어가면 될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변화가 나쁘지 않다고 본다. 미국 사회가 유난히 일로 사람을 평가하는 분위기가 강했던 걸 생각하면, 이제야 좀 균형이 맞아가는 느낌이다.

한 사람의 값어치를 연봉이나 직함으로 매기던 습관이 조금씩 옅어지는 거라면 환영할 일이다. 그래야 형편이 어려운 시기를 지나는 사람도 덜 움츠러들 수 있다.

물론 직업을 묻는 것 자체가 죄는 아니다. 다만 처음 만난 사람한테 다짜고짜 던질 질문은 아니라는 쪽으로 다들 조금씩 마음을 바꾸고 있는 것 같다.

요즘 나오는 미국 매너 안내서들을 보면 아예 "피해야 할 질문" 목록에 이 질문을 올려둔 경우도 있다. 그만큼 사회 전체가 이 질문의 무게를 다시 재고 있다는 뜻이다.

한편으로는 격세지감도 든다. 예전에는 직업을 밝히는 게 자기소개의 절반이었는데, 이제는 오히려 감추거나 돌려 말하는 쪽이 세련된 처세로 통하는 셈이다.

결국 질문 하나를 놓고 이렇게까지 신경 쓰는 이유는 간단하다. 상대를 판단하려는 의도 없이 그냥 안부를 묻고 싶을 뿐인데, 하필 그 질문이 너무 많은 걸 캐묻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다음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나도 직업 대신 주말 얘기부터 물어볼 생각이다. 어차피 통성명하고 나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면 무슨 일을 하는지는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