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람들이 슬픈 이웃에게 음식부터 들고 가는 이유 - Seattle - 1

미국에 살다 보면 한 번쯤 겪게 되는 장면이 있다. 누군가 가족을 잃었거나 큰 수술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이 돌면, 며칠 안 가 그 집 문 앞에 포일을 덮은 그릇들이 하나둘 쌓인다.

위로한다는 말 한마디 없이, 그냥 오븐용 그릇 하나를 조용히 놓고 가는 이웃도 있다. 처음 이 모습을 봤을 때는 솔직히 조금 낯설었다.

슬픈 일에는 말이 먼저 필요한 거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게 오히려 더 배려 깊은 방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이런 음식 나눔은 장례식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아기가 태어났을 때, 수술을 받았을 때, 항암 치료를 받는 동안에도 이웃들은 똑같이 그릇을 들고 나타난다.

그래서 왜 하필 음식인지가 궁금해서 좀 찾아봤다.

미국에서 조문이나 병문안에 캐서롤을 들고 가는 이유는 의외로 실용적이다. 오븐용 그릇 하나에 담아 그대로 데워 먹을 수 있고 여러 명이 나눠 먹기에도 좋아서, 정신없는 유족에게 요리할 부담을 덜어준다.

이 캐서롤 문화가 자리 잡은 데는 뜻밖의 역사가 있다. 1950년대 후반 캠벨 수프 회사가 수프 캔 라벨에 캐서롤 레시피를 인쇄하기 시작했고, 이게 1960년대 미국 가정 요리의 표준으로 굳어지면서 이웃집이나 상갓집에 들고 가는 대표 음식이 됐다.

미국 남부에서는 교회를 중심으로 한 '퍼널럴 포트럭' 전통이 19세기부터 이어져 왔다. 상을 치르는 가족의 부엌일을 이웃들이 나눠 맡으면서, 자연스럽게 공동체 전체가 애도에 동참하는 방식으로 굳어진 것이다.

유타주에는 감자와 치즈, 옥수수콘플레이크를 겹겹이 올린 '퓨너럴 포테이토'라는 음식도 있다. 이 지역 교회 공동체에서는 오래전부터 장례식 자리마다 빠지지 않고 올라온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문화가 기독교권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유대교에는 '슈다트 하브라아'라 불리는 위로의 식사 전통이 있어서, 장지에서 돌아온 유족에게 이웃이 첫 끼니를 차려주는 관습이 오래전부터 이어지고 있다.

요즘은 이런 마음을 온라인으로 조율하는 서비스까지 생겼다. 밀트레인이라는 사이트에 들어가면 날짜별로 신청을 받아서, 같은 날 음식이 몰리거나 아무도 안 챙기는 날이 없도록 조율해준다.

동네 카페나 빵집이 이런 흐름에 슬쩍 끼어드는 모습도 종종 본다. 힘든 소식을 전해 들은 사장님이 갓 구운 빵 한 봉지를 아무 말 없이 문 앞에 걸어두고 가는 식이다.

재미있는 건 그릇을 챙길 때도 나름의 예의가 있다는 점이다. 나중에 씻어 돌려줘야 하나 신경 쓰이지 않도록, 일부러 다시 안 받아도 되는 일회용 용기나 이름을 안 써도 되는 그릇에 담아 가는 사람이 많다.

한국에서 상갓집에 갈 때 봉투부터 챙기는 그림이 익숙하다면, 미국에서는 그 자리를 대체로 음식이 채우고 있는 셈이다. 돈으로 상을 치르는 데 보태라는 뜻이 아니라, 당장 오늘 저녁 끼니부터 대신 해결해 주겠다는 접근인 것이다.

결국 음식을 들고 가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셈이다. 슬픔 앞에서는 말이 오히려 조심스러운데, 음식은 부담 없이 마음을 전하면서 동시에 정말 필요한 실질적 도움까지 되어주기 때문이다.

개인주의가 강하다는 이미지의 나라에서, 이런 순간만큼은 공동체가 놀랍도록 끈끈하게 움직인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각자 알아서 사는 것 같아도 누군가 무너지는 순간에는 조용히 힘을 보태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는 게 새삼 든든하게 느껴진다.

나도 나중에 누군가 힘든 일을 겪으면 어설픈 위로의 말을 고르느라 애쓰기보다, 따뜻한 그릇 하나 들고 조용히 찾아가는 쪽을 택하고 싶다. 말보다 오래 남는 위로도 있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