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서랍을 정리하며 깨달은 소비의 진실 - San Diego - 1

한국에 있을 때 그리고 여기 샌디에이고로 유학왔어도 저는 화장품을 정말 많이 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일종의 쇼핑 중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꽤 심한 수준이었습니다.

새로운 화장품이 출시되면 가장 먼저 구글에서 리뷰를 찾아보고, 유튜브 뷰티 크리에이터들의 영상을 보면서 "이건 꼭 사야 해"라는 생각에 사로잡히곤 했습니다.

사실 화장품 자체를 사용하는 즐거움보다 구매 버튼을 누르는 순간의 흥분에 더 중독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한창 심할 때는 한 달에 평균 200달러 정도를 화장품에 사용했고, 심한 달에는 300달러 이상을 쓰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스킨케어 제품이 나오면 사고, 유명 브랜드의 아이섀도 팔레트가 출시되면 또 사고, 한정판이라는 말만 붙어도 쉽게 지갑을 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집에는 비슷한 색상의 립스틱과 아이섀도, 사용하지도 않은 스킨케어 제품들이 끝없이 쌓여 갔습니다.

그런데 정작 매일 사용하는 제품은 늘 비슷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충격을 받았습니다.

미쉘은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교포인데, 제가 알던 사람들 중 가장 미니멀한 사람이었습니다. 화장품 파우치도 믿기 어려울 정도로 단순했습니다.

"너 화장품 어디 있어?"

제가 물어보자 미쉘은 웃으면서 작은 파우치를 보여줬습니다.

그 안에는 틴티드 모이스처라이저 하나, 마스카라 하나, 립 제품 하나 정도가 전부였습니다.

심지어 미쉘은 평소에도 화장품을 세 개 이상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여행을 가도 파우치가 두 개였고, 외출할 때도 혹시 모르니 이것저것 챙겨 다니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웠던 건 미쉘의 피부 상태였습니다.

특별한 스킨케어 제품을 여러 단계 바르는 것도 아니고, 최신 유행 화장품을 쫓아다니는 것도 아닌데 피부는 깨끗하고 건강해 보였습니다.

화장도 매우 자연스러웠지만 오히려 더 세련되어 보였습니다.

그날 이후 처음으로 제 화장대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서랍마다 사용하지 않는 제품이 가득했고, 유통기한이 지난 화장품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내가 정말 이걸 다 필요해서 산 걸까?"

좀 화가나서 그 다음부터 아이섀도 팔레트 구매를 중단했습니다.

충동 구매의 대부분이 팔레트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몇 달 동안 이를 유지한 후에는 사용 중인 제품이 떨어질 때만 다시 구매하는 방식으로 소비 습관을 바꾸었습니다.

파운데이션, 파우더, 마스카라처럼 실제로 매일 사용하는 제품만 리필하고 새로운 제품을 시험 삼아 사는 행동을 줄였습니다.

1년 정도 지나자 신기한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신제품 출시 소식에 흥분하던 감정이 점점 사라졌고, 화장품 쇼핑 사이트를 매일 들여다보지 않아도 괜찮아졌습니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정리를 시작했습니다.

거의 다 쓴 제품,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제품들을 과감하게 처분했습니다.

쉽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막상 정리하고 나니 엄청난 해방감이 찾아왔습니다.

더 큰 변화는 화장 방식 자체였습니다.

예전에는 완벽한 피부 표현과 화려한 메이크업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화장하지 않은 얼굴은 어딘가 부족해 보였고, 여러 제품을 사용해야만 외출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지금은 가벼운 틴티드 모이스처라이저나 톤업 제품, 약간의 파우더, 눈썹 정리, 마스카라 정도면 충분하다고 느낍니다.

오히려 예전보다 더 자연스럽고 편안한 모습이 마음에 듭니다.

지금은 깔끔하게 정리된 화장대가 훨씬 만족스럽습니다. 미쉘이 보여준 작은 파우치 하나가 제 소비 습관을 바꿨습니다.

가끔은 무언가를 더 많이 가지는 것보다 덜 소유하는 것이 훨씬 큰 자유를 준다는 사실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