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DIY 문화? 손재주 자랑이 아니라 인건비가 비싸니까요 - Dallas - 1

살다 보면 "이건 꼭 전문가를 불러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은 일들이 참 많습니다.

그중 하나가 정수기 설치예요. 한국에서는 정수기 하면 렌털부터 떠오르잖아요.

정수기 기사님이 와서 설치해 주고 달마다 와서 필터도 갈아주고 편하죠. 저도 그게 당연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텍사스 와서 보니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더라고요. 홈디포나 아마존에서 정수기를 주문하면 박스가 집 앞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그냉 본인이 설치합니다. 처음에는 "배관 잘못 건드리면 큰일 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부터 들었어요.

그런데 막상 해보니 생각보다 훨씬 단순했습니다. 사실 이래서 DIY 문화는 미국 사람들이 유난히 손재주가 좋아서 생긴 게 아닙니다.

가장 큰 이유는 인건비입니다.

예를 들어 정수기 설치를 업체에 맡기면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설치비만 200~400달러 정도 나오는 경우가 흔합니다.

텍사스에서도 300달러 정도는 쉽게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정작 정수기 가격도 200~400달러 수준인 제품이 많아요. 제품값만큼 설치비를 내야 하는 셈이죠.

그러니 미국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계산기를 두드립니다. "유튜브 보고 한 시간만 투자하면 300달러 아끼는데?"

답은 너무 뻔한 거죠.

그래서 미국 집 차고를 보면 공구가 정말 많습니다.

드릴, 렌치, 몽키스패너, 전동드라이버까지 없는 집이 드뭅니다. 취미로 모으는 게 아니라 생활비를 아끼기 위한 투자입니다.

정수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많이 사용하는 RO(Reverse Osmosis) 정수기는 설치 키트가 거의 다 들어 있습니다.

튜브 연결도 색깔별로 구분되어 있고 설명서도 꽤 친절합니다. 필요한 공구도 몽키스패너와 드라이버 정도면 대부분 해결됩니다.

처음 하는 사람도 천천히 따라 하면 1시간 정도면 설치를 끝낼 수 있습니다. 저는 예습을 철저히 했더니 30분 걸렸습니다 ㅋㅋ,

오히려 가장 고민되는 부분은 배관보다 싱크대 위 수도꼭지를 설치하는 자리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기존 비누 디스펜서 구멍을 활용하거나 타공 없이 설치되는 제품도 많아서 예전보다 훨씬 쉬워졌습니다.

설치하고 나면 만족감도 꽤 큽니다. 염소 냄새가 거의 없어지고 커피 맛도 부드럽게 느껴집니다.

얼음도 맑게 얼고 생수를 계속 사다 나르는 번거로움도 없어집니다.

관리는 더 간단합니다.

프리필터는 보통 6~12개월마다 교체하고, RO 멤브레인은 2~3년에 한 번 정도 갈아주면 됩니다.

최근 제품들은 필터 교체 시기도 LED로 알려줘서 특별히 어렵지 않습니다.

미국 생활을 하다 보면 이런 경험이 하나둘 쌓입니다.

처음에는 겁났던 일도 막상 해보면 "이걸 왜 업체 불렀지?" 하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유튜브 설치 영상이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주말 오후 두 시간 투자해서 300달러를 아끼고 직접 설치했다는 뿌듯함까지 얻는다면 그것도 미국 생활의 재미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