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음하면서 간경변이 있는 사람은 간암 걸릴 가능성이 높다  - Orlando - 1

미국에서 오래 살다보니 술을 대하는 분위기가 한국과 참 다르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한국에서는 회식하면 소주 한두 병이 자연스럽고, 미국에서도 퇴근 후 맥주나 와인 한잔은 그냥 일상의 일부다.

그런데 술 이야기를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장기가 바로 간이다. 그런데 간암이라고 하면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만 생기는 병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그건 아니다.

B형·C형 간염, 간경변, 대사이상 지방간 등 여러 원인이 있다. 다만 술이 중요한 위험요인인 것은 분명하다.

미국 국립암연구소(NCI)는 과도한 음주가 간경변을 일으키고, 이것이 간암의 대표적인 위험요인이 된다고 설명한다. 특히 과음하면서 이미 간경변이 있는 사람은 간경변이 없는 과음자보다 간암 위험이 크게 높아진다.

"나는 소주 안 먹고 와인만 마시니까 괜찮아" 하는 말도 별 의미가 없다. CDC는 맥주든 와인이든 양주든 알코올이 들어간 술은 암 위험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결국 간 입장에서는 술의 분위기나 가격표보다 들어온 알코올의 양이 중요한 셈이다. (CDC)

더 무서운 것은 간이 상당히 묵묵한 장기라는 점이다. 조금 손상됐다고 바로 비명을 지르는 장기가 아니다. 그래서 만성 간질환이 진행되는 동안 별다른 증상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특히 B형·C형 간염이나 간경변처럼 위험요인이 있는 사람이라면 "나는 멀쩡한데"라는 느낌만 믿을 일이 아니다.

간암 치료를 찾아보다 보면 간이식 이야기도 나온다. 처음에는 참 이상하게 들렸다. 암이 있는데 장기를 통째로 바꾼다고? 그런데 일부 간세포암에서는 상당히 중요한 치료법이다. 암이 있는 간을 제거하면서 동시에 간경변이 있는 간 자체도 새 간으로 교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간암이라고 누구나 이식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전통적으로 많이 알려진 Milan criteria를 보면 종양이 하나라면 5cm 이하, 여러 개라면 최대 3개이면서 각각 3cm 이하이고 혈관 침범이나 간 밖으로 전이된 증거가 없어야 한다. 실제 미국에서는 이것보다 훨씬 복잡한 기준과 환자 상태를 함께 평가한다. 처음에는 종양이 기준보다 크더라도 색전술이나 방사선치료 같은 방법으로 종양을 줄이는 downstaging을 거쳐 이식 대상이 되는 경우도 있다.

간이식 수술 자체도 보통 수술이 아니다. 병든 간을 제거하고 기증자의 건강한 간을 이식하는 대수술이고, 이후에는 새 간을 몸이 공격하지 않도록 면역억제제를 계속 복용해야 한다. 감염과 거부반응 등을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하니 수술했다고 모든 것이 끝나는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미국에서는 기증 장기가 제한돼 있어 이식센터에서 암의 상태, 간 기능, 전신 건강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그래도 간암 환자에게 간이식이 주는 의미는 상당하다. 적절하게 선별된 환자라면 완치를 목표로 할 수 있는 치료법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45세를 넘어서면서 건강 이야기를 들으면 예전과 느낌이 달라진다. 젊을 때는 술 마시고 다음 날 머리 아픈 것만 걱정했는데 이제는 그 술이 10년, 20년 쌓였을 때 몸에 무엇을 남기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간은 웬만하면 참고 버텨주는 장기다. 문제는 그걸 우리가 "내 간은 튼튼하다"고 착각하기 쉽다는 것이다.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이라면 간수치 몇 개만 보고 안심하기보다 자신의 음주량과 간염 여부, 지방간과 간경변 위험을 한번 제대로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간이식이라는 대단한 의학기술이 있기는 하지만, 가능하다면 내 간을 끝까지 가지고 사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