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를 보니 원로 배우 김지미(85)가 미국에서 별세했다고 한다. 대상포진에 감염된 후 저혈압 쇼크로 사망했다는 소식이다.
김지미라는 이름은 한국 영화 황금기를 통째로 통과한 상징 같은 존재다.
그런 그녀가 평생 여러 남자들과 엮이며 남긴 말이 유명하다. "남자는 다 어린애고, 부족하고, 불안한 존재다."
김지미의 삶을 들여다보면, 왜 그녀가 "남자는 다 어린애고, 부족하고, 불안한 존재다"라고 했는지 자연스럽게 이해가 된다. 단순 연예가 가십이 아니라, 정말 격동의 한국 영화사를 온몸으로 통과하면서 만난 남자들과의 관계가 그 말을 만들어냈다.
김지미가 겨우 18살이던 1958년, 무려 16살 연상의 영화감독 홍성기와 결혼한다.
당시엔 결혼이 빠른 편도 흔했지만, 그래도 미성년 나이에 업계 거물과 결혼한 건 꽤 충격적인 일이었다. 더 놀라운 건 결혼식도 촬영 스케줄 중간에 잠깐 들러서 치른 것. 식 올리고 바로 촬영장으로 복귀했다니, 지금 기준으로 보면 거의 드라마다. 딸과 아들을 두며 잘 사는 듯했지만, 홍성기의 잇따른 영화 실패와 외도가 겹치면서 결국 1962년에 이혼한다.
두 번째 결혼, 최무룡 (1963~1969)
여기서부터 이야기가 훅 복잡해진다. 홍콩에서 합작영화를 찍다 최무룡과 가까워졌는데, 사실 두 사람은 이미 톱스타였고 함께한 작품도 많아서 자연스럽게 친밀해졌다고 한다. 문제는 그 친밀함이 너무 순식간에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는 점.
1962년, 한국 최고 스타였던 최무룡과 간통 혐의로 구속까지 되었다. 두 사람이 수갑 차고도 서로 웃고 있던 사진은 지금 다시 봐도 파격적이다. 당시 언론은 연일 대서특필했고 최무룡은 아내 강효실과 이혼하는데, 여기서도 충격적인 장면이 하나 더 있다. 위자료 330만 원 + 채무 70만 원, 총 400만 원을 김지미가 대신 지급했다는 것.
결혼 후 두 사람은 딸 최영숙을 두었다. 그런데 흥행 실패가 이어지며 관계가 점점 틀어졌고 김지미는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명언을 남기고 결국 이혼한다. 참고로 이혼할 때도 위자료는 모두 김지미 몫이었다.
최무룡의 아들 최민수 이야기도 빠질 수 없다. 어린 시절 어머니 강효실과 떨어져 친할머니 손에서 자란 까닭에 김지미에 대한 원망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김지미가 잠시 그를 돌본 적도 있어서 오히려 어른이 된 뒤엔 존중을 표했다.

세 번째 결혼, 나훈아 (1976~1982)
그리고 또 한 번 세상을 들썩이게 만든 인연, 바로 나훈아. 둘은 혼인신고 없이 사실혼으로 지냈다. 원래 연애도 아니었는데, 언론이 오해로 "교제 중"이라고 먼저 써버렸고 김지미가 그 기사를 보고 오기가 생겨 진짜로 교제를 시작했다는 건 지금 들어도 드라마급 스토리다.
하지만 이 관계는 김지미가 훗날 "내 결혼은 셋뿐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마음의 상처가 남았다. 이유는 딸에게 미친 영향 때문. 게다가 나훈아 팬들 사이에서는 이 관계가 아직도 곱게 받아들여지지 않아, 유튜브에 남은 옛 영상 댓글만 봐도 그 감정이 그대로 드러난다.
네 번째 결혼, 심장 전문의 이종구 (1991~2002)
김지미의 마지막 결혼은 의사 이종구 박사였다. 8살 연상의 학자풍 남자로, 그녀는 여기서 "가정적인 삶"을 시도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성격 자체가 워낙 '보스 기질'이었던 그녀와 맞지 않아 결국 11년 만에 이혼한다. 이후 김지미는 "나는 남편이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 아내를 원하는 사람에게 맞는 여자였다"고 회고한다.
이 결혼 때문에 절친했던 신성일과도 사이가 멀어졌다는 뒷이야기가 있다. 신성일이 이종구에게 "네 번째 남편이 되는 건 자랑거리가 아니다"라고 말렸지만 결국 결혼했고 그 후 둘의 관계는 어색해졌다고.
김지미가 남긴 결론
2003년 인터뷰에서 그녀는 이렇게 정리했다. "나이 많은 남자, 어린 남자, 능력 있는 남자... 다 살아봤는데 남자는 다 별거 아니다. 결국 다 어린애고, 부족하고, 불안한 존재다." 이 말이 왜 지금까지 회자되냐면, 단지 '비판'이 아니라 수십 년 동안 네 번의 결혼과 숱한 인간 관계를 거치며 얻은 생생한 관찰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김지미는 남자라는 존재를 누구보다 많이 사랑해본 여자였고, 그래서 누구보다 잘 이해했던 사람인지도 모른다.
이제는 우리 곁에 없는 고인이 되신 김지미 선생님. 그 파란만장했던 삶과 눈부신 필모그래피가 오래도록 기억되기를 바란다.


하와이순두부
루지애나TIP
이시영포에버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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