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 전 점심에 먹다 남은 피자 두 조각을 싸 들고 포트리 히스토릭 파크 벤치에 앉았어요. 강 건너로 업타운 맨해튼이 코앞이고, 조지 워싱턴 브리지 위로는 차들이 끝도 없이 흘러가더라고요.
피자 씹다가 문득 달력을 봤는데, 이달 20일이면 미군이 여기서 허겁지겁 빠져나간 지 딱 250년이 됩니다. 평화로운 산책로에서 그런 생각을 하니까 기분이 좀 묘했어요.
"These are the times that try men's souls." 인간의 영혼을 시험하는 때라는 그 문장, 한 번쯤 들어보셨을 거예요.
토머스 페인의 '아메리칸 크라이시스' 첫 줄인데, 이 글에 바로 이 절벽이 나옵니다. 페인은 자기가 포트리에서 부대와 함께 있었고 펜실베이니아 경계까지 같이 행군했다고 직접 적었거든요.
요새 자체는 1776년 7월에 짓기 시작했어요. 처음 이름은 포트 컨스티튜션이었고, 그해 9월 말에 찰스 리 장군 이름을 따서 포트 리로 바뀌었습니다.
강 건너편 맨해튼에는 짝꿍 격인 포트 워싱턴이 있었어요. 둘이 마주 보고 허드슨강 하류를 지키는 구도였죠.
그런데 11월 16일, 영국군과 헤센 용병이 포트 워싱턴을 덮칩니다. 미군 2,800명이 포로로 잡혔다는 기록을 보고 저는 잠깐 멍해졌어요.
건너편이 무너지니까 포트리는 혼자 남은 꼴이 됐습니다. 지킬 이유도, 지킬 힘도 같이 사라진 거예요.
나흘 뒤인 19일 밤에서 20일 사이, 콘월리스 부대가 북쪽에서 강을 건넜어요. 상륙 지점은 Huyler's Landing, 옛 이름 Lower Closter Landing으로 보는데, 오랫동안 알파인 쪽 Upper Closter Landing으로 잘못 알려져 있었다고 하네요.
병력 숫자는 자료마다 달라요. American Battlefield Trust는 미군 2,000명, 영국군 4,000명으로 잡고, 영국군을 5,000명으로 적은 자료도 있습니다.
페인의 기록이 제일 생생해요. 장교 한 명이 달려와서, 적이 보트 200척으로 7~8마일 위쪽에 상륙했다고 알렸다는 겁니다.
문제는 지형이었어요. 포트리는 허드슨강과 해켄색강 사이의 좁은 땅이라, 다리를 뺏기면 그대로 갇히는 자리였거든요.
페인 계산으로 해켄색강 다리는 요새에서 6마일, 적에게서는 3마일이었대요. 숫자만 봐도 식은땀 나는 달리기 시합이죠.
나다니엘 그린 장군이 곧바로 철수를 명령했습니다. 해켄색에 있던 워싱턴은 페인 표현으로 45분 만에 도착해서 부대를 다리 쪽으로 이끌었고요.
그렇게 떠나면서 텐트, 참호 파는 도구, 중포, 그리고 많은 식량을 두고 갔다고 해요. 먹는 거라면 넉넉해야 마음이 놓이는 사람이라 그런지, 저는 이 대목이 제일 아프더라고요.
재밌는 건 페인의 서술이에요. 그는 탄약과 경포, 물자 대부분은 미리 옮겼고 수레에 실을 수 있는 짐은 챙겼으며, 나머지만 잃었다고 씁니다.
어느 쪽이 거짓말이라고 보긴 어려워요. 다만 같은 날을 두고 후대 기록은 다급한 철수로, 페인은 질서 있는 퇴각으로 적은 거죠.
부대는 해켄색을 지나 New Bridge로 강을 건넜고, 21일에는 Acquackanonk 다리에 닿았어요. 뉴어크에서는 나흘을 머물렀습니다.
그다음은 뉴브런즈윅, 프린스턴을 거쳐 12월 2일 트렌턴이었어요. 병력과 물자가 델라웨어강을 건너는 데만 닷새가 걸렸다고 합니다.
페인은 이 길을 거의 3주, 100마일 가까운 거리에 건너야 할 강이 넷이었다고 적었어요. 겨울 초입에 그 길을 걸었다고 생각하면 와, 저는 하루도 못 버텼을 겁니다.
글은 Common Sense라는 필명으로 나왔어요. 1776년 12월 19일 Pennsylvania Journal에 처음 실렸다는 자료가 있고, 12월 23일로 적은 곳도 있어서 날짜는 조금씩 엇갈립니다.
워싱턴은 이 글을 델라웨어 도하를 앞둔 병사들에게 읽어주게 했다고 전해져요. 그리고 12월 26일 트렌턴, 이듬해 1월 3일 프린스턴에서 이깁니다.
같은 글에 '여름 군인과 햇볕 애국자'라는 표현도 나와요. 날씨 좋을 때만 군인이고 볕 좋을 때만 애국자인 사람들을 콕 집어 비꼰 말이죠.
제가 이 글에 끌리는 건 이겼을 때 쓴 글이 아니라서예요. 다 잃어가는 와중에 지금이 제일 힘든 때라고 먼저 인정하고 시작하잖아요.
물론 사람들을 다시 불러 모으려고 쓴 글이니 미화가 섞였다고 볼 수도 있어요. 그래도 패배를 숨기지 않고 정면으로 꺼낸 덕에 그 문장이 250년을 버틴 거라고, 저는 그렇게 읽습니다.
공원은 33에이커 규모고, 복원한 포대와 병사 오두막, 강 전망대가 있어요. 공원 안내로는 비지터센터가 수~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야외는 오전 8시부터 해 질 때까지 엽니다.
다만 시간이 달라질 수 있으니 전화로 확인하라는 안내도 있고, 1~2월은 쉰다는 자료도 있어요. 전화번호가 201-461-1776인데, 끝자리까지 1776인 건 좀 웃기죠.
Retreat Weekend라는 재현 행사가 2019년에는 11월 23~24일에 열렸어요. 올해 250주년 일정은 제가 확인하지 못했으니, 가실 분은 njpalisades.org/fortlee 쪽을 먼저 보시는 게 좋습니다.
시내 Monument Park도 같이 들러볼 만해요. 1908년에 미국혁명의 딸들(DAR)이 만든 곳이고, Rebelmen 동상이 한가운데 서 있습니다.
저라면 20일 전후로 해 좋은 날을 골라 피자 두 판을 넉넉하게 들고 가겠어요. 식량 두고 떠난 그날 병사들 생각하면서 절벽 위에서 한 조각 먹는 것, 나쁘지 않은 기념 방식 아닌가요.

KTV파도

Glow Yo | 
미시간 열공 대학생 | 
xylora | 
Tan Zoo | 
hot chocolate | 
runningon | 
butterfly | 
The Yellow | 


james choi |
solvix18 |
Massachusetts |
clouds 09 |
Dr. Kelso |
You Turn Me On |
seouljung |
Tomorrow Blog |
meadow |
compass |
Roman Pan |
citrus pop |
DO 메인 TODAY |
korvex |
tacobunny |
B.I.G. Victor |
콘푸라이트 선생님입니다 |
cyvera80 |
Springs Korea |
Runner Ki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