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음식 싸 가는 도기 백, 정말 개 주려고 생긴 말일까 - Lexington - 1

식당에서 밥 먹고 남은 걸 포장해 달라고 할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어요. 미국 사람들은 이걸 왜 하필 도기 백이라고 불렀을까요.

개를 안 키우는 집도 도기 백을 들고 나오고, 다음 날 점심에 그걸 먹는 것도 결국 사람입니다. 이름과 실제 용도가 이렇게 따로 노는 말도 드물죠.

이민 와서 처음 이 단어를 들었을 때는 농담인 줄 알았습니다. 고깃집에서 개 준다며 갈비뼈를 챙기시던 한국 어른들 모습이 떠올라서 혼자 웃었어요.

그래서 찾아봤는데, 이 이름에 개가 아무 근거 없이 들어간 건 아니더군요. 다만 어원이 깔끔하게 정리된 이야기도 아닙니다.

남은 음식을 싸 가는 습관 자체는 훨씬 오래됐습니다. 고대 로마에서는 손님들이 남은 음식을 냅킨에 싸서 가져가 다음 날 먹었다고 해요.

그걸 되파는 사람까지 있었다니, 장사 감각은 로마 사람들이 저보다 확실히 낫습니다. 저는 남은 갈비 챙기는 데서 끝났거든요.

그럼 개는 언제 등장하느냐. 지금 같은 도기 백은 보통 1940년대에 나온 걸로 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식량이 부족해지면서 음식 낭비를 줄이자는 분위기가 강했고, 반려동물 먹이도 귀했어요. 이름이 이때 생겼다는 말이 있는데, 어디까지나 추측으로 소개되는 이야기입니다.

구체적인 기록으로 꼽히는 건 1943년 샌프란시스코입니다. 그곳 카페들이 손님에게 펫 파킷(Pet Pakits)이라는 상자를 내줬어요.

남은 음식을 담아 집에 가져가라는 상자였고, 동물 학대를 막자는 취지였다고 합니다. 이름부터 대놓고 반려동물용이죠.

이 기록만 보면 처음엔 정말 개를 위한 물건이었던 셈입니다. 적어도 명분은 그랬어요.

프랑스어 자료에도 전쟁 중 남은 음식을 개에게 주도록 권장했고, 뼈와 남은 음식을 손님에게 챙겨 준 식당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정확한 연도까지 남아 있는 얘기는 아니고요.

재미있는 건 그다음입니다. 제가 보기에 이 이름은 개보다 사람 체면 덕분에 오래 살아남았어요.

영어권에서는 이 말을 완곡어법으로 보는 해석이 있습니다. 제가 먹을 건데 개 주는 척하는 거죠. 쩨쩨해 보이기 싫은 마음이 단어에 그대로 남은 겁니다.

낚시꾼으로서 이 심리는 아주 잘 압니다. 손바닥만 한 놈 잡아 놓고 고양이 줄 거라 둘러대면서 실은 제가 구워 먹는 것과 똑같아요. 바다 구경도 어려운 내륙 낚시꾼의 체면이란 게 그렇습니다.

이 단어가 널리 퍼진 건 1970년대 신문 에티켓 칼럼의 영향이 컸다고 합니다. 신문에서 따로 다룰 만큼 어색한 주제였다는 뜻이겠죠.

식당 쪽 대응도 웃깁니다. 어떤 식당은 남은 음식을 알루미늄 포일로 백조나 해마 모양으로 접어 줬대요. 개 준다면서 백조를 들고 나오는 겁니다.

지금은 어떨까요. 미국에서 도기 백이라는 말은 유행이 꽤 지났습니다. 요즘 식당에서는 박스 달라고 하면 그만이에요.

말만 밀려났을 뿐 포장은 완전히 당연한 일이 됐죠. 서버가 먼저 박스 드릴까요 하고 묻는 경우도 많습니다. 개를 핑계 댈 필요가 없어진 거예요.

다른 나라는 사정이 달랐습니다. 영국에서는 2010년까지도 도기 백을 달라는 게 미국식 표현이자 드문 요청으로 여겨졌어요.

프랑스는 아예 법이 움직였습니다. 2016년 음식물 낭비 방지법은 이 서비스를 강하게 권장하는 수준이었고 의무까지는 아니었어요.

그러다 2018년 법으로 2021년부터 식당과 음료 판매점이 요청하는 손님에게 용기를 제공하도록 바뀌었습니다. 싸 달라는 말이 손님의 권리에 가까워진 셈이죠.

이름도 재미있어요. 프랑스에서는 고메 백, 낭비 방지 상자처럼 부르는 말이 제각각입니다. 개를 빼고 미식가를 넣었으니, 말 포장 하나는 역시 잘합니다.

사실 한국 사람에게 이건 체면보다 아까움의 문제죠. 미국 식당은 양이 워낙 많으니 이민자 입장에선 박스 달라는 말이 제일 먼저 입에 붙는 영어이기도 합니다.

챙겨 온 음식에서 하나 짚고 갈 게 있습니다. CDC 기준으로 남은 음식은 2시간 안에 냉장해야 하고, 화씨 90도가 넘는 더운 차 안 같은 곳이면 1시간입니다.

다시 데울 때는 내부 온도를 화씨 165도까지 올리라고 해요. 저는 김 나는 걸로 대충 판단해 왔는데, 이건 반성할 일입니다.

식당 나와서 장 보고 낚시 용품점까지 들르면 2시간은 금방이에요. 박스 챙겼으면 집부터 가는 게 맞습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도기 백은 정말 개 주려고 생겼느냐. 1943년 기록을 보면 명분은 개가 맞고, 이름의 정확한 기원에는 아직 추측이 섞여 있습니다.

그래도 이 말이 오래간 이유는 개보다 사람 쪽에 있다고 봅니다. 남은 음식 챙기는 건 로마 때부터 해 온 일인데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죠.

저는 앞으로도 당당하게 박스 달라고 할 겁니다. 언젠가 진짜 바닷가 식당에서 먹다 남은 랍스터를 싸 달라는 날이 와도, 개 핑계는 안 댈 생각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