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미국 정치판 돌아가는걸 보면 내가 뉴스를 보고 있는 건지 홈쇼핑을 보고 있는 건지 헷갈리네요 ㅎㅎㅎ
이번에 트럼프 대통령이 2026년 9월 9일 댈러스에서 열린 공화당 중간선거 전당대회에서 파격적인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공화당이 11월 중간선거에서 하원과 상원을 모두 지키면 미국 성인 시민들에게 1인당 5,000달러를 지급하겠다는 겁니다.
이름도 이미 지었더군요. 'Trump Dividend', 트럼프 배당금입니다.
말만 들으면 간단합니다. "공화당이 이기면 여러분도 우리와 함께 이긴다. 5,000달러를 지급하겠다."
아니 알래스카 살면 1년에 한번 Dividend 받는건 알겠는데 (빡센 지역에서 살아야 하니까 나는 엄두도 안납니다) 이건 또 뭔가요 ㅋㅋ.
일단 미국 성인들에게 5,000달러씩 지급하면 1조 달러를 훌쩍 넘는 돈이 필요합니다.
대통령이 자기 수표책 꺼내서 주는 돈도 아닙니다. 결국 연방정부 돈이고, 실제 지급하려면 의회의 입법과 예산 절차라는 산을 넘어야 합니다.
더 묘한 건 선거와 현금을 이렇게 노골적으로 연결했다는 점입니다.
미국 연방법은 돈이나 경제적 이익을 특정인의 투표에 대한 대가로 제공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그렇다고 이번 발언을 당장 불법 매표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당신이 공화당 찍은 것을 증명하면 5,000달러 주겠다"는 방식이 아니라 공화당이 승리하면 정부 정책으로 지급하겠다는 공약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참 절묘합니다.
"우리 찍으면 5천 달러"와 "우리가 이기면 5천 달러 정책을 시행하겠다" 사이에 법률적으로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묘책(?) 입니다.
하지만 상식이 통하는 미국 선거판에서 문제없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논란은 있었습니다. 이재명 정부 출범 후 민생회복 소비쿠폰이 지급됐습니다.
경기부양과 민생지원이라는 정책적 목적이 있었고 국회의 예산 절차를 거쳤다는 점에서 트럼프의 이번 선거 공약과 똑같은 사례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런 현금성 공약을 볼 때마다 팬데믹 시절이 떠오르는 이유가 있습니다.
당시 미국은 정말 어마어마하게 돈을 풀었습니다.
2020~2021년 미국 정부가 개인에게 지급한 Economic Impact Payments, 이른바 stimulus checks만 총 9,310억 달러에 달했습니다.
물론 당시 직장을 잃고 렌트비와 식비조차 걱정하던 사람에게 이 돈은 생명줄이었습니다.
문제는 지원이 워낙 광범위했다는 겁니다.
소득 기준은 있었지만 당장 경제적으로 궁핍한 사람만 골라 지급한 제도는 아니었습니다.
직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거나 집이 있고 연금이나 다른 안정적인 소득이 있는 사람 중에서도 자격 기준에 해당하면 돈을 받았습니다.
실제 연구에서도 소득 손실이 없었던 일부 가구는 지원금을 소비하지 않고 저축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사업체 지원은 규모가 더 컸습니다.
PPP만 약 8,000억 달러가 풀렸습니다. 급여를 유지하고 사업체 도산을 막겠다는 취지 자체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속도를 우선하다 보니 사기꾼들에게도 엄청난 기회가 열렸습니다.
2025년 Pandemic Response Accountability Committee 자료를 보면 PPP, EIDL, 팬데믹 실업급여에서 사기 및 부적정 지급 추정액이 거의 4,000억 달러에 이릅니다.
정부가 지금까지도 관련 사기사건을 수사하고 기소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니 팬데믹 때의 교훈은 "정부가 국민에게 돈을 주면 안 된다"가 아닙니다.
경제가 멈춰버린 비상상황에서는 정부가 돈을 풀어야 할 때가 분명히 있습니다.
실제로 당시 지원금은 수많은 가정의 경제적 어려움을 줄였고 사업체가 문을 닫는 것을 막는 역할도 했습니다.
문제는 규모와 타이밍, 그리고 누구에게 주느냐입니다.
경제 전체의 공급은 부족한데 정부가 수조 달러 규모의 구매력을 한꺼번에 집어넣으면 물가 압력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 연준 연구에서도 팬데믹 재정지원이 자동차 같은 상품의 수요를 끌어올렸고, 공급 부족 상황과 겹치면서 가격 상승에 기여했다고 분석했습니다.
물론 2021~2022년 인플레이션을 지원금 하나 때문이라고 하면 그것도 과장입니다.
공급망 붕괴, 반도체 부족, 노동시장 변화, 초저금리, 에너지 가격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여러 요인이 동시에 작용했습니다.
하지만 "돈을 풀어도 아무 부작용이 없다"는 주장 역시 당시 경험과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 와서 다시 "선거에서 이기면 국민에게 5,000달러씩 주겠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고개가 갸웃거려집니다.
한국에서는 소비쿠폰, 미국에서는 트럼프 배당금.
제도도 다르고 액수도 다르고 법적 구조도 다릅니다. 현금이나 현금성 지원정책 자체를 금권정치라고 부를 수도 없습니다.
그래도 정치의 언어가 점점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가"에서 "당신에게 얼마를 줄 것인가"로 이동한다면 한번쯤 경계할 필요는 있습니다.
더구나 정치인이 자기 돈을 주는 것도 아닙니다.
결국 국민이 낸 세금이거나 정부가 빚을 내서 마련한 돈입니다.
내 돈으로 나에게 돈을 돌려주면서 선거 승리의 배당금이라고 이름 붙이는 셈입니다.
민주주의가 발전한 건지, 선거 마케팅 기술이 발전한 건지는 각자가 판단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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