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인 스트리트 역에서 나와서 몇 블록만 걸으면 Bowne Street라는 길이 나와요. 버블티 가게랑 한국 빵집, 중국 마트가 줄지어 있는 그 동네 한복판에 작은 나무 집이 하나 서 있어요.
처음 지나갈 땐 그냥 오래된 집이구나 했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집이 미국 종교 자유 이야기의 출발점 중 하나더라고요.
이야기는 165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요. 그때 이 동네는 플러싱이 아니라 네덜란드식 이름인 블리싱엔(Vlissingen)으로 불렸고, 뉴네덜란드 식민지의 일부였어요.
식민지 총독은 피터 스타이브선트(Peter Stuyvesant)였어요. 그는 네덜란드 개혁교회 외의 예배를 강하게 막았고, 특히 퀘이커 교도들을 눈엣가시처럼 여겼어요.
그해 영국에서 건너온 퀘이커 전도자 로버트 호지슨(Robert Hodgson)이 체포됐어요. 자료마다 표현은 조금 다르지만, 그는 자기가 알아듣지도 못하는 네덜란드어로 재판을 받고 혹독한 처벌을 받았다고 전해져요.
스타이브선트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어요. 퀘이커 교도를 집에 재워주기만 해도 벌금을 물리는 법을 만들고, 신고하는 사람에게는 보상을 주는 식으로 마을 사람들끼리 서로 감시하게 만들었죠.
솔직히 이 대목 읽으면서 좀 소름 돋았어요. 종교 문제를 넘어서, 이웃끼리 서로를 의심하게 만드는 구조 자체가 무섭잖아요.
그리고 1657년 12월 27일, 플러싱 주민들이 마을 서기 에드워드 하트(Edward Hart)의 집에 모여 총독에게 보내는 항의서에 서명해요. 이게 바로 플러싱 항의서(Flushing Remonstrance)예요.
서명자 수는 자료에 따라 30명 또는 31명으로 적혀 있어요. 누가 초안을 썼는지도 하트라는 기록과 보안관 토비아스 피크(Tobias Feake) 쪽이 주도했다는 기록이 엇갈려요.
제가 제일 놀랐던 건 따로 있어요. 서명한 사람들 대부분이 퀘이커 교도가 아니었다는 점이에요.
자기 신앙이 공격받은 게 아닌데도, 남의 신앙을 지켜주겠다고 이름을 걸고 나선 거예요. 요즘 말로 하면 진짜 ally였던 셈이죠.
항의서 내용도 꽤 과감해요. 사랑과 평화와 자유가 유대인, 튀르크인, 이집트인에게까지 미쳐야 한다는 취지의 문장이 들어 있어요.
그러니까 기독교 안의 다른 종파만이 아니라, 아예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까지 품어야 한다고 본 거예요. 17세기 식민지 농촌 마을에서 나온 말이라고 생각하면 정말 앞서간 생각이었죠.
주민들이 기댄 근거는 1645년에 받은 마을 특허장이었어요. 여기에 양심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내용이 있었고, 항의서는 그 약속을 지키라고 요구한 거였어요.
결과는 해피엔딩이 아니었어요. 스타이브선트는 항의서를 전달한 사람들을 체포했고, 마을 행정을 맡던 사람들을 갈아치웠어요.
그런데 이야기는 몇 년 뒤 다시 이어져요. 1662년, 아까 말한 그 나무 집의 주인 존 바운(John Bowne)이 자기 집에서 퀘이커 모임을 열었다는 이유로 체포돼요.
바운은 벌금도 안 내고, 잘못했다고 인정하지도 않았어요. 결국 스타이브선트는 그를 네덜란드 본국으로 추방해 버려요.
여기서 반전이 있어요. 1663년 암스테르담에 도착한 바운은 식민지를 운영하던 네덜란드 서인도회사에 직접 자기 사정을 호소했어요.
회사는 결국 바운의 손을 들어주고, 스타이브선트에게 종교 박해를 그만두라고 지시해요. 이유가 순수한 인권 의식이었다기보다는 사람이 와야 식민지가 돌아간다는 계산도 있었다고 보는 시각이 많아요.
저는 그 부분이 오히려 현실적이라 좋았어요. 관용이 꼭 거창한 철학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라, 다양한 사람이 함께 살아야 굴러가는 사회라는 현실에서도 나온다는 거니까요.
그래서 플러싱 항의서는 지금 미국 수정헌법 제1조의 종교 자유 조항을 미리 보여준 선구적인 문서로 자주 언급돼요. 직접적인 법적 연결이라기보다는 정신적인 뿌리에 가깝다고 보는 게 정확할 거예요.
원본의 운명도 드라마틱해요. 이 문서는 1911년 3월 29일 뉴욕 주 의사당 화재 때 불길에 그을렸고, 그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어요.
현재 원본은 올버니의 뉴욕 주 기록보관소(New York State Archives)가 보관하고 있어요. 워낙 약해서 전시되는 일이 아주 드물어요.
대신 플러싱에 가면 그 흔적을 직접 밟아볼 수 있어요. 바운 하우스는 1661년 무렵 지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고, 주소는 37-01 Bowne Street예요.
이 집은 1947년부터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어요. 방문 전에는 공식 웹사이트에서 운영 시간과 투어 일정을 꼭 확인하고 가세요.
저라면 이렇게 돌아볼 것 같아요. 메인 스트리트에서 점심을 먹고, 바운 하우스를 보고, 근처 퀘이커 예배당까지 천천히 걸어보는 코스요.
지금 플러싱은 한국어, 중국어, 스페인어가 한 블록 안에서 다 들리는 동네잖아요. 360년도 더 전에 이 땅에서 남의 신앙을 지켜주자고 서명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걸 알고 나니, 같은 거리가 좀 다르게 보이더라고요.
이민자로 살다 보면 내가 소수자라는 걸 느끼는 순간이 꼭 와요. 그럴 때 나를 위해 목소리를 내준 사람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보게 돼요.
그래서 이 항의서가 저한테 남긴 질문은 단순해요. 내가 직접 당하는 일이 아닐 때도 나는 이름을 걸 수 있을까, 하는 거요.

Redwo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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