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날마다 한 묘비에 I Voted 스티커가 쌓이는 진짜 이유 - Rochester - 1

어제부터 뉴욕주 사전투표가 시작됐어요. 올해 중간선거 본투표는 11월 3일이고, 사전투표는 10월 24일부터 11월 1일까지 이어진다고 하네요.

투표하고 나오면 손에 쥐어주는 그 작은 "I Voted" 스티커 있잖아요. 보통은 옷에 붙였다가 저녁쯤 떼서 버리게 되는데, 이 동네에는 그 스티커가 가는 특별한 곳이 하나 있어요.

바로 Mount Hope Cemetery에 있는 Susan B. Anthony의 묘비예요. 선거날이 되면 이 소박한 비석이 스티커로 빼곡하게 뒤덮여요.

처음 그 사진을 봤을 때는 솔직히 좀 의아했어요. 무덤에 스티커를 붙인다니, 미국 사람들은 참 독특하다 싶었거든요.

그런데 사연을 알고 나니까 생각이 완전히 바뀌더라고요. 이건 장난이 아니라 꽤 묵직한 인사였어요.

Anthony는 1872년 대통령 선거 때 로체스터에서 투표를 했어요. 수정헌법 14조가 시민의 권리를 보장하니 여성도 투표할 수 있다는 논리였죠.

그때 같은 구역에서 다른 여성 14명도 함께 등록하고 투표했다고 해요. 선거 담당자들과 헌법 조항을 두고 따진 끝에 등록을 받아낸 거예요.

결과는 체포였어요. 그해 11월 18일, 연방 보안관이 집으로 찾아와 불법 투표 혐의로 그녀를 데려갔어요.

재판은 이듬해인 1873년 6월에 열렸어요. 배심원은 전부 남성 12명이었고, 판사 Ward Hunt는 배심원에게 아예 유죄 평결을 내리라고 지시했다고 해요.

토론도 없이 유죄라니, 지금 기준으로 보면 정말 어이가 없죠. 판결은 벌금 100달러와 소송 비용이었어요.

여기서 제일 인상적인 대목이 나와요. Anthony는 그 벌금을 끝까지 한 푼도 내지 않았어요.

판사도 벌금을 안 냈다고 감옥에 보내지는 않겠다고 했대요. 감옥에 가두면 상급심으로 다툴 기회가 생기니까 그걸 피한 거라는 해석이 많아요.

Anthony는 1906년 3월 13일에 세상을 떠났어요. 여성 참정권을 보장한 수정헌법 19조는 그로부터 14년 뒤인 1920년에야 비준됐고요.

그러니까 평생 투표권을 위해 싸웠는데, 정작 본인은 합법적으로 투표하는 날을 보지 못한 거예요. 이 대목에서 괜히 마음이 찡하더라고요.

스티커 이야기는 여기서 이어져요. 2016년 대선 때 수천 명이 그녀의 묘를 찾아가 스티커를 붙이면서 크게 알려졌어요.

2018년 중간선거 때는 아예 전통처럼 자리를 잡았어요. 몇 시간씩 줄을 서는 사람들이 생기자 시에서 묘지 개방 시간을 밤 9시까지 늘렸다고 해요.

사람이 몰리니까 걱정도 생겼어요. 오래된 비석이 스티커 접착제 때문에 상할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 한때는 묘비 옆에 스티커를 붙일 수 있는 판을 따로 세웠고, 2020년에는 묘비 위에 투명 플렉시글라스 덮개를 씌웠어요. 비석은 지키면서 전통은 살리는 방법을 찾은 셈이에요.

덮개 위에 붙인 스티커는 나중에 정리하기도 훨씬 쉬울 거예요. 돈 들여 비석을 복원하는 것보다 투명판 하나로 해결하는 게 훨씬 합리적이죠.

저는 이 부분이 제일 마음에 들어요. 무작정 금지하지 않고 현실적인 타협점을 찾았다는 게 실속 있어 보였거든요.

2020년에는 수정헌법 19조 100주년이라 더 특별했어요. 당시 현장에는 아이 손을 잡고 온 부모들도 많았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Mount Hope Cemetery 자체도 역사가 깊은 곳이에요. 1838년에 문을 연 미국 최초의 시립 빅토리아풍 묘지로 알려져 있어요.

묘지가 생긴 배경에는 1830년대 초에 유행한 콜레라가 있었다고 해요. 갑자기 늘어난 사망자 때문에 매장할 땅이 급하게 필요했던 거죠.

Frederick Douglass도 이곳에 잠들어 있어요. 그래서 Anthony와 Douglass의 묘가 이 묘지에서 가장 많이 찾는 두 곳으로 꼽힌대요.

묘지는 언덕과 오솔길이 이어져 있어서 산책 삼아 걷기에도 좋아요. 입장료도 없으니 가볍게 들르기에 부담이 없는 편이에요.

저는 이 전통이 정치 성향과 상관없다는 점이 좋아요. 누구를 찍었는지는 묻지 않고, 그냥 투표했다는 사실 하나로 인사를 건네는 거니까요.

요즘처럼 선거 얘기만 나오면 서로 날이 서는 분위기에서, 이런 장면은 꽤 귀하다고 생각해요. 진보든 보수든 그 스티커는 똑같이 생겼잖아요.

다만 올해 묘지 운영 시간이나 덮개 설치 여부는 아직 공식 발표를 확인하지 못했어요. 가실 분들은 City of Rochester나 묘지 안내를 미리 보고 가시는 게 좋겠어요.

시민권이 있는 분이라면 사전투표장도 미리 확인해 두세요. 카운티 안 어느 사전투표소에서든 투표할 수 있어서 동선 짜기가 편해요.

투표소에서 공짜로 받는 스티커 한 장이 150년 전 벌금 100달러에 대한 대답이 된다는 게 신기해요. 저도 올해는 투표하고 나서 스티커를 버리지 않고 그 언덕까지 들고 가볼 생각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