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는 결혼하면서 부터 내 자신만의 공간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누가 뭐래도, 남자에게는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이건 단순히 취미생활이나 놀이가 목적이 아니다.
말 그대로 정신적 은신처, 스트레스를 잠시라도 벗어던질 수 있는 곳, 그리고 내안의 ‘소년감성’이 다시 살아 숨쉬는 공간이다.
누가 뭐래도 그게 바로 ‘맨 케이브(Man Cave)’ 아닌가.
요즘 들어 이 맨 케이브에 대한 갈망이 점점 커지고 있다.
여러가지 일로 치이는 와중에 나만의 쉼터가 필요하단 생각이 강해졌다.
지난주 아내가 말하길, “차고 좀 정리 좀 해봐. 창고냐고?”그 말에 나도 모르게 머릿속에 번개처럼 떠오른 단어 하나.
“Man Cave.”
원시 시대부터 시작된 남자의 공간 본능
생각해 보면 맨 케이브는 원시시대 동굴에서 시작된 본능에 가깝다.
사냥을 마친 남자들이 무리에서 살짝 벗어나 동굴 안 모닥불 앞에 둘러앉아 숨 돌리던 그 순간.
가족을 위해 다시 출발하기 전, 짧은 회복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
그게 지금의 맨 케이브로 이어졌다고 생각하면 납득이 된다.
시대는 바뀌었지만 남자의 피로감은 여전하고, 그걸 푸는 방식은 여전히 혼자만의 공간이다.
미국의 한 조사(Joybird)에 따르면 남성의 65% 이상이 맨 케이브를 원한다고 한다.
단순히 TV와 소파가 있는 공간이 아니라, 자신만의 정체성을 표현할 수 있고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개인의 은신처”다.
전통적으로는 지하실이나 차고 한켠을 개조해 당구대, 바, 사운드 시스템을 갖추는 식이었는데, 요즘은 훨씬 더 세련되게 진화 중이다.
LED 조명, 스마트 TV시스템, 취미에 맞춘 테마형 디자인까지.
그야말로 현대식 동굴이 탄생하고 있는 셈이다.
나도 드디어 결심했다.
차고를 개조해 진짜 나만의 맨 케이브를 만든다.
내가 꿈꾸는 맨 케이브
일단 첫 번째는 공구 정리대다. 지금은 나사, 드라이버, 연장들이 여기저기 굴러다니는데, 이걸 딱 보기 좋게 정리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아무리 맨 케이브라도 정리된 혼돈은 필요하니까. 정돈된 벽걸이 공구 정리대를 보고 있자면 이미 장인의 기분이다.
두 번째는 넉넉한 쇼파. 집안 거실 소파는 언제나 아이들의 점령지다. 아내도 리모컨을 지휘하는 여왕이시고. 나만의 쇼파에 몸을 던지고, 다리를 쭉 뻗고, 리모컨도 독점하고 싶은 꿈이 있다.
세 번째는 전기 자전거 거치 공간. 주말마다 라이딩 다녀오고 세차할 곳이 마땅치 않아 애매했는데, 이 공간에 딱 자리 잡으면 퍼펙트하다. 충전기까지 벽에 딱!
그리고 뭐니 뭐니 해도 핀볼 머신 한 대. 불빛 반짝이고 ‘땡땡땡’ 소리 울릴 때마다, 어린 시절 동네 오락실의 향수가 몰려온다. 게임보다 그 감성이 좋다. 아내는 ‘쓸데없는 짓’이라 하지만, 이건 남자의 감성 투자다.
마지막은 역시 맥주가 들어있는 냉장고. 하루를 끝내고 딱 하나 꺼내 들고, 쇼파에 앉아 핀볼 한 판, 아니면 넷플릭스 한 편. 이게 바로 40대 아저씨의 진짜 힐링이다.
물론 당장 한 번에 완성하진 못한다.
중고 사이트에서 괜찮은 쇼파부터 보고 있고, 다음은 냉장고, 스마트 TV 와 스피커, 전기자전거 충전대와 여유가 되면 중고 핀볼 머신까지
가끔 누군가는 말한다.
“그런 공간 만들어서 뭐해?”, “그 돈이면 가족 여행이나 더 가지.”
하지만 맨 케이브는 도피처가 아니라 충전소다.
가족과 더 잘 지내기 위해, 일터에서 더 오래 버티기 위해, 그리고 다시 ‘나’로 돌아가기 위해 필요한 장소다.
나는 오늘도 퇴근 후 차고 문을 열고, 바닥 청소부터 시작한다.
망치 하나 들고, 음악 틀어놓고, 천천히 내 공간을 그려본다.
이게 40대 남자의 로망이고, 회복이고,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