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댈러스(Dallas)'라는 이름을 미국에서 대중문화에 각인시킨 TV 드라마가 있었으니 바로 1978년부터 1991년까지 무려 14년 동안 방영된 미국의 장수 TV 드라마 Dallas 입니다.

이 드라마는 당시 미국에서 막장이라 부를 만한 수준의 권력 싸움, 로맨스, 음모, 배신을 모두 한 스튜에 넣고 끓여낸 작품으로, 텍사스 석유 재벌 유잉(Ewing) 가문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가족 스캔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주인공 J.R. 유잉이라는 캐릭터는 '악랄하지만 매력적인 인물'의 정석으로 시청자들이 욕하면서도 빠져들게 만드는 묘한 매력을 지녔습니다.

J.R. 유잉은 단순한 악역이 아니라 악랄하지만 매력적인 인물이라는 점이 핵심이었습니다. 그의 능글맞은 웃음, 부드러운 억양, 상대를 들었다 놨다 하는 협잡 능력은 시청자들을 분노하게 하면서도 빠져들게 만들었습니다.

이 인기가 얼마나 강했냐면, J.R. 스타일 모자를 쓰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헤어스타일을 따라 하는 사람들까지 생겼습니다.

또 '악역이 이렇게 사랑받을 수 있구나'라는 인식을 바꿔, 이후 미드에서 입체적인 악역들이 쏟아지는 데 큰 영향을 줬습니다. 지금 우리가 보는 매력악당 캐릭터의 조상님이 바로 이 J.R.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입니다.


권력, 욕망, 돈, 그리고 석유라는 배경이 결합되면서, 시청자들은 매주 금요일 저녁 TV 앞에 모여 다음 이야기를 기다릴 정도로 열광했는데, 이 덕분에 댈러스는 단순한 드라마가 아니라 미국 TV 문화의 상징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중 가장 유명한 장면은 바로 "누가 J.R.을 쐈는가? (Who shot J.R.?)"라는 미스터리 사건입니다.

시즌 마지막 회에서 J.R.이 총에 맞으며 끝나는 바람에 그다음 시즌을 기다리는 동안 전 세계 시청자들이 범인을 추리했고, 이 드라마 한 편 때문에 미국 주식시장 뉴스보다 J.R. 소식이 더 화제가 되는 웃지 못할 현상까지 벌어졌다고 하니, 당시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댈러스 드라마가 단순한 막장 오락물이 아니라 미국 남부 문화와 텍사스의 경제적 이미지에도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입니다. 석유, 카우보이 부츠, 대저택, 대규모 목장, 우아한 파티와 동시에 치열한 싸움까지, 이 드라마는 '돈이 지배하는 텍사스 귀족 세계'라는 판타지를 만들어냈습니다.

실제로 드라마의 배경이 되었던 사우스포크 목장(Southfork Ranch)은 방영 이후 관광 명소가 되었고 지금도 많은 여행객들이 찾고 있습니다.

미국 관광객들만 가는 곳이 아니라 해외 관광객까지 찾아오는 관광지가 되었고, 내부 투어, 결혼식, 이벤트 대관까지 가능한 문화 공간으로 변신했습니다. 그리고 텍사스를 석유 부자 도시라는 이미지로 전 세계에 각인시킨 것도 이 목장이 가진 상징성 덕분이었습니다.


'댈러스(Dallas)'가 미국에서만 난리였을까?

한국에서도 은근히 큰 인기를 누렸던 드라마였습니다. 지금처럼 해외 드라마가 넷플릭스나 유튜브로 쉽게 들어오던 시절이 아니었는데도, 이 작품은 1980년대 대한민국 안방까지 묘하게 파고들었습니다. 당시 한국 TV는 외국 드라마 방영이 꽤 제한적이었고 가족 드라마나 역사극 중심이었는데, 댈러스는 그 틈 사이에서 '기묘한 사치와 막장 스캔들'을 보여주는 신선한 콘텐츠였기 때문입니다.

텍사스 석유 재벌 가문이 등장하자마자, 한국 시청자들은 처음 보는 초호화 저택과 말도 안 되게 큰 목장, 끝없이 흘러나오는 부자들의 사건사고에 눈을 크게 뜨고 따라가기 시작했습니다. 한국 드라마에서는 보기 힘든 "돈으로 싸우고 사랑으로 배신하는 막장 세계"가 너무 낯설면서도 재밌었던 겁니다.

당시에는 경제 성장기였던 터라, 한국 사회는 '부자가 되면 저렇게 사는 걸까?'라는 묘한 상상과 동시에 '저건 잘못된 거야!'라는 도덕적 판단을 둘 다 즐기던 시대였는데, 댈러스는 그런 감정을 자극하는 데 딱 맞는 드라마였습니다.

더 흥미로운 건, 댈러스가 한국 막장 드라마의 초기 감성에도 은근히 영향을 주었다는 점입니다. 재벌, 가문 싸움, 불륜, 음모, 폭탄 같은 가족 스캔들 이야기가 지금은 흔하지만 당시에는 보기 쉽지 않았고, 시청자들은 이런 외국 드라마를 통해 새로운 구조를 경험하게 됐습니다. 나중에 국내 드라마에도 재벌가 스토리가 쏟아지기 시작하면서, 댈러스 같은 서사 구조가 자연스럽게 익숙해진 셈이죠.

2012년에는 오리지널 시리즈의 후속 격인 리부트 시즌이 방영되면서, 과거의 캐릭터와 새로운 세대가 함께 등장해 또 한 번 팬들의 향수를 자극했습니다. 비록 예전만큼의 폭발적인 인기는 아니었지만, 오리지널 팬들에게는 J.R.과 유잉 가문의 이야기가 다시 돌아온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었고, 그 덕분에 댈러스라는 이름은 다시 한 번 세대 간에 회자되었습니다.

'댈러스'는 단순한 드라마가 아니라, 텍사스라는 지역을 전 세계 대중문화 속에 강력하게 각인시키고, 막장 드라마의 원조격으로 자리 잡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텍사스 하면 떠오르는 웅장한 석유 왕국의 이미지 뒤에는 이 드라마가 만들어낸 강렬한 상징이 여전히 자리하고 있는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