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주 카드 명세서를 열어보다가 손이 멈췄습니다. 평소 보던 금액보다 몇백 달러가 더 찍혀 있었는데, 들여다보니 연회비였습니다. 장 본 내역 사이에 끼어 있으니 더 눈에 띄더군요.
일 년에 한 번 나오는 돈이라 매번 잊고 지내다가 이렇게 명세서에서 마주치게 됩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냥 넘기지 않고 카드사에 전화를 걸어보기로 했습니다.
이른바 리텐션 오퍼라는 것이 있습니다. 해지하려는 고객을 붙잡기 위해 카드사가 내미는 혜택을 말합니다.
보통 연회비 일부를 돌려주는 크레딧이나 포인트 보너스, 또는 일정 금액 이상 쓰면 주는 추가 적립 형태로 나옵니다. 정해진 표가 있는 것은 아니고 카드 종류와 사용 이력에 따라 그때그때 다릅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습니다. 전화 한 통으로 무엇이 달라지겠나 싶었지요.
그런데 숫자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금융 비교 사이트 렌딩트리가 올해 9월에 발표한 설문에 따르면, 지난 1년 사이 연회비 면제나 감액을 요청한 카드 소지자의 94%가 성공했다고 합니다.
지난해 같은 조사에서는 95%였습니다. 해마다 열에 아홉 이상이 무언가를 받아냈다는 이야기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요청하는 사람 자체가 많지 않다는 점입니다. 같은 조사에서 올해는 오히려 요청한 사람이 줄었다고 하니, 가만히 있으면 손해 보는 구조라고 봐야 합니다.
전화하는 시점이 중요합니다. 연회비가 명세서에 실제로 청구된 뒤에 거는 것이 정석입니다.
청구 전에는 상담원 화면에 해지 방어 대상으로 잡히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이미 돈이 나간 상태여야 고객이 정말 떠날 수도 있다는 신호가 됩니다.
또 하나 알아둘 것은 환불 기간입니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는 연회비가 찍힌 명세서 마감일로부터 30일 안에 해지하면 연회비를 돌려준다는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다른 카드사들도 비슷한 유예 기간이 있지만 기간은 회사마다 다르고 바뀌기도 합니다. 본인 카드의 회원 약관이나 카드사 고객센터를 통해 먼저 확인해 두는 것이 안전합니다. 기간을 넘기면 해지하더라도 연회비를 못 돌려받을 수 있습니다.
말은 길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저는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연회비가 청구됐는데 요즘 이 카드를 예전만큼 쓰지 않아 계속 유지할지 고민 중이다. 혹시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혜택이 있는지 알고 싶다.
상담원이 잠시 기다리라더니 해지 담당 부서로 넘겨주었습니다. 여기서부터가 본 게임이고, 처음 받은 상담원이 바로 혜택을 찾아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 경우에는 일정 금액을 석 달 안에 쓰면 포인트를 더 주겠다는 제안이 나왔습니다. 연회비를 다 덮지는 못해도 평소 쓰는 생활비로 채울 수 있는 조건이라 받아들였습니다.
제안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선택지가 없는지 한 번 더 물어봐도 됩니다. 무례하게 굴 필요는 없고, 차분하게 묻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날 안 되면 몇 주 뒤 다시 걸었을 때 다른 제안이 나왔다는 경험담도 꽤 있습니다.
그래도 아무것도 없다면 다운그레이드를 물어보십시오. 같은 카드사의 연회비 없는 카드로 바꾸는 것입니다.
다운그레이드는 해지와 달리 계좌가 그대로 유지됩니다. 신용 기록 기간이 끊기지 않고 한도도 살아 있으니 신용점수 쪽에서도 부담이 적습니다. 그동안 모은 포인트를 지킬 수 있는지도 함께 물어보십시오.
카드를 아예 닫으면 전체 한도가 줄어 사용률이 올라갑니다. 오래된 카드일수록 이 영향이 커지니 해지는 마지막 카드로 남겨두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주의할 점도 있습니다. 같은 카드로 최근 1년 안에 리텐션 오퍼를 받았다면 다시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카드를 만든 지 얼마 안 된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입 보너스를 받자마자 혜택을 또 요구하면 카드사도 반기지 않습니다.
그리고 오퍼를 받았다면 조건을 꼭 받아 적어두십시오. 사용 기간과 금액, 적립 시점을 확인해 두지 않으면 나중에 말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통화 기록이 남는 앱 채팅으로 문의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다만 해지 방어 부서는 전화로 연결될 때가 더 많다는 이야기가 흔합니다.
돌이켜보면 통화는 15분이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 15분으로 연회비의 적지 않은 부분을 되찾을 길이 생겼으니, 시급으로 치면 이만한 일도 드뭅니다.
솔직히 이런 전화가 귀찮은 것은 사실입니다. 자동응답 안내를 몇 단계씩 거치다 보면 중간에 끊고 싶어집니다. 상담원과 실랑이하는 것 같아 망설여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흥정이 아니라 고객으로서 당연히 물어볼 수 있는 일입니다. 카드사도 새 고객을 데려오는 것보다 기존 고객을 지키는 쪽이 싸게 먹힌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라면 연회비가 찍힌 그 달에 바로 전화하겠습니다. 미루다 환불 기간을 넘기면 협상 카드 하나를 잃는 셈이니, 명세서를 열어 본 오늘이 가장 좋은 날입니다.

Trail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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