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C에 살다보니 선거철이 코앞인 지금은 오직 트럼프 이야기, 민주당 이야기, 공화당 이야기 뿐입니다.
그리고 여기저기 정치인들이 유권자들에게 열심히 하는 일이 있습니다. 바로 "돈좀 기부해 달라"는 겁니다.
이메일 보면 5달러만 후원해 달라, 25달러를 보내 달라, 이번 선거가 미국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식의 호소가 끊이지 않습니다.
공화당이나 민주당이나 똑같습니다. 양당 정치국가다 보니 둘 다 난리죠.
서로 나라를 구하겠다고 하는데 ㅋㅋ 도대체 미국 정치인들은 이렇게 모은 돈을 어디에 쓰는 걸까요?
한국에서 국회의원 선거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옛날 선거판을 떠올릴 수도 있습니다.
동네 사람들 모아놓고 막걸리 돌리고, 선물 주고, 밥 사주면서 표를 부탁하던 시절 말입니다.
그런데 미국 선거에 들어가는 돈은 그런 수준이 아닙니다.
2024년 미국 연방선거에서는 대통령 선거와 연방 상·하원 선거를 합쳐 정치자금 지출이 수십억 달러에 달했습니다.
원화로 계산하면 몇 조 원을 훌쩍 넘는 돈입니다.
그렇다면 미국 정치인들은 유권자들에게 도대체 무엇을 그렇게 많이 사주는 걸까요?
미국 선거비용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광고입니다
미국 선거에서 가장 돈이 많이 들어가는 분야 중 하나가 광고입니다.
TV를 켜면 후보자 광고가 나오고, 유튜브를 봐도 정치 광고가 나옵니다. 휴대전화 문자,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구글 광고까지 동원됩니다.
특히 펜실베이니아, 조지아, 애리조나처럼 선거 결과가 박빙인 지역에서는 광고 경쟁이 엄청납니다.
한 후보가 상대방을 비판하는 광고를 내보내면 다른 후보도 가만히 있을 수 없겠죠. 곧바로 반박 광고를 내보냅니다.
이런 식으로 광고비가 계속 올라갑니다.
여기에 선거운동 직원들의 급여, 여론조사 비용, 선거사무실 임대료, 후보자의 이동 경비, 행사장 대여료, 법률 및 회계 비용까지 들어갑니다.
미국은 땅덩어리가 크고 선거구도 넓습니다. 유권자들에게 이름을 알리는 것 자체가 상당한 비용이 드는 일입니다.
한국처럼 비교적 짧은 공식 선거운동 기간에 집중적으로 움직이는 방식과도 차이가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선거가 끝나자마자 다음 선거를 준비하는 정치인도 많습니다.
그러니 돈이 계속 필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후원금은 투명하게 관리될까요?
미국에는 연방선거위원회(FEC)라는 기관이 있습니다.
대통령과 연방 상·하원 선거에 사용되는 정치자금을 감독하는 곳입니다.
후보자와 정당은 누가 돈을 냈고 어디에 사용했는지 정기적으로 보고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개인이 한 선거 주기에 200달러를 초과해 후원하면 이름과 직업, 고용주 등의 정보도 공개됩니다.
우리 같은 일반인도 FEC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후보자가 광고회사에 얼마를 지급했는지, 직원 급여로 얼마를 사용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모든 돈의 출처가 완벽하게 드러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미국에는 슈퍼팩(Super PAC)이라는 정치자금 단체가 있습니다. 후보자에게 직접 기부하는 대신 독립적으로 선거 광고를 제작하고 정치활동을 지원하는 조직입니다.
이들은 개인이나 기업 등으로부터 거액의 후원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법적으로 후보자 캠프와 지출을 조율해서는 안 됩니다.
게다가 일부 비영리단체를 거쳐 정치자금이 들어오면 실제 돈을 댄 사람이 누구인지 알기 어려운 경우도 있습니다. 이른바 다크머니(Dark Money)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미국 정치자금은 공개제도가 상당히 발달해 있지만, 모든 자금의 최종 출처까지 투명하게 밝혀지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선거비용은 얼마나 들까요?
정치자금 감시단체 OpenSecrets에 따르면 2024년 미국 대통령과 연방의회 선거에 들어간 돈은 약 148억 달러였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돈의 사용처입니다.
2024년 선거 지출 분석에서 광고를 포함한 미디어 비용이 약 51.7%를 차지했습니다.
모금 활동 자체에도 약 11.3%가 들어갔고, 직원 급여에도 7%가 사용됐습니다.
돈을 모으기 위해 또 돈을 쓴다는 이야기입니다.
후원금을 모으는 이메일 발송, 온라인 광고, 모금행사 운영에도 비용이 들어갑니다.
선거가 거대한 산업이 된 셈입니다.
한국처럼 막걸리 돌리고 선물 주는 건 아닐까요?
여기서 한국의 옛날 선거판과 비교해 보면 재미있는 차이가 있습니다.
과거 한국에서는 유권자들에게 음식이나 선물을 제공하는 금권선거가 문제가 됐습니다. 지금은 한국에서도 이런 행위가 엄격하게 금지됩니다.
미국 역시 표를 얻기 위해 유권자에게 현금이나 선물을 제공하는 행위는 불법입니다.
물론 선거 유세장에서 음식을 제공하거나 기념품을 나눠주는 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이 투표의 대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미국 선거에서 돈을 쓰는 핵심은 유권자에게 직접 무엇을 사주는 것이 아니라 유권자의 생각과 선택에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TV 광고를 수천 번 내보내고, 상대 후보의 약점을 집중적으로 공격하고, 특정 지역 유권자들에게 반복해서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돈을 쓰는 것이죠.
옛날 한국 선거가 막걸리 한 사발로 표를 얻으려 했다면, 요즘 미국 선거는 수백만 달러짜리 광고로 유권자의 마음을 얻으려 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결국 돈 많은 후보가 이기는 걸까요?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돈을 많이 쓰고도 낙선하는 후보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후보자의 정책, 이미지, 정당 지지율, 경제 상황도 선거 결과에 큰 영향을 줍니다.
하지만 돈이 부족하면 자신의 이름조차 제대로 알리기 어려운 것이 미국 선거의 현실입니다.
워싱턴 DC에서 정치 뉴스를 보다 보면 가끔 이런 생각이 듭니다.
미국은 민주주의를 세계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라 중 하나인데, 정작 선거를 치르려면 천문학적인 돈이 필요합니다.
공화당은 민주당을 비판하면서 후원금을 모으고, 민주당은 공화당을 막아야 한다면서 후원금을 모읍니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서로를 공격하는 광고를 내보냅니다.
결국 가장 확실하게 돈을 버는 곳은 방송국, 광고회사, 정치 컨설팅 업체가 아닐까 싶습니다.
옛날 한국 선거판에서는 막걸리라도 한잔 얻어먹었다는데, 미국 유권자들은 자기 돈으로 후원까지 하고 TV에서는 상대방 욕하는 광고를 계속 봐야 합니다.
가만히 생각하면 참 희한한 민주주의입니다.
정치인들은 선거가 끝나면 국민을 위해 일하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런데 선거가 끝난 뒤에도 다음 선거를 위한 모금 이메일은 계속 날아옵니다.
미국 정치에서 가장 끝나지 않는 선거운동은 어쩌면 투표가 아니라 후원금 모금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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