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왕을 뽑은 게 아니다. 트럼프 반대 43% - Los Angeles - 1

LA 살면서 미국 대통령 선거를 여러 번 지켜봤습니다.

민주당이 이길 때도 있었고 공화당이 이길 때도 있었습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마음에 드는 정책도 있고 이해할 수 없는 정책도 있었죠.

그런데 이번 중간선거 출구조사 결과를 보니 드는 생각이 우리는 왕을 뽑은 게 아니라는 겁니다.

3일 치러진 미국 중간선거에서 유권자의 43%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반대 의사를 표현하기 위해 투표했다고 답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반대로 트럼프를 지지하기 위해 투표했다는 사람은 16% 였습니다.

43% 대 16%.

물론 이 숫자가 전체 미국인의 지지율을 의미하는 건 아닙니다.

실제 투표에 참여한 유권자들이 자신의 투표 동기를 설명한 결과입니다.

그래도 상당히 의미 있는 숫자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을 지지해서 투표장에 나온 사람보다 대통령에게 반대한다는 의사를 표현하기 위해 나온 사람이 훨씬 많았다는 이야기니까요.

저는 이게 미국 민주주의의 중요한 기능이라고 봅니다.

대통령이 아무리 큰 권력을 가지고 있어도 국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선거를 통해 견제할 수 있다는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유의 강한 화법과 자신감으로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정치인입니다.

그걸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실제로 그가 내세운 이민 정책이나 경제 정책에 동의하는 미국인들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도 똑같은 미국 국민이라는 사실입니다.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다고 해서 자신을 지지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목소리까지 무시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미국 대통령은 왕이 아닙니다.

국민에게 일정 기간 권력을 위임받은 선출직 공무원입니다.

아무리 대통령이라도 헌법과 법률의 테두리 안에서 권한을 행사해야 하고, 의회와 법원의 견제를 받아야 합니다.

이건 민주당 대통령이든 공화당 대통령이든 똑같습니다.

이번 출구조사에서 또 하나 눈에 들어온 숫자가 있습니다.

유권자들이 가장 중요한 현안으로 꼽은 것이 경제 39%, 민주주의 32%였다는 점입니다.

저는 이 두 숫자가 상당히 흥미로웠습니다.

경제가 중요한 건 당연합니다. 여기 LA에서 생활하다 보면 집값, 렌트비, 자동차 보험료, 식료품 가격 때문에 스트레스받는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요즘 마트에서 장을 봐도 예전처럼 마음 편하게 물건을 집어 들기 어렵습니다. 기름값도 그렇고 외식비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경제 못지않게 많은 사람이 민주주의를 중요한 문제로 생각했다는 겁니다.

먹고사는 문제도 중요하지만 나라가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는지도 중요하다는 뜻이겠죠.

저는 미국의 가장 큰 장점이 대통령에게 무조건 복종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라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을 비판할 자유가 있고, 정책에 반대할 자유가 있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음 선거에서 다른 사람을 선택할 자유가 있습니다.

그게 미국이라는 나라의 기본적인 정치 시스템입니다.

물론 트럼프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선택도 존중받아야 합니다. 민

주주의라는 건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의 투표권까지 인정하는 제도니까요.

이번 선거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어떤 정치적 변화를 가져올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겠습니다.

공화당이 이번 결과를 어떻게 해석할지도 궁금하고요.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이 국민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대통령에게 권력을 맡긴다는 사실입니다.

선거에서 이겼다고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지지층의 박수만 듣고 국정을 운영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미국 유권자들은 필요하다면 중간선거에서도 분명한 메시지를 보낼 수 있습니다.

이번 출구조사 결과를 보면서 저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필귀정이 이거지 뭐.

권력을 가진 사람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반대편 정치인이 아니라, 자신에게 권력을 맡겼던 국민의 마음이 돌아서는 순간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