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워싱턴 DC에 살면서 요즘 미국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한숨이 나올 때가 많습니다.
정치 뉴스에서는 맨날 민주당이 어떻고 공화당이 어떻고, 트럼프가 어떻고 하면서 싸우는데 정작 평범한 사람들이 관심 있는 건 따로 있거든요.
당장 장 보러 가면 얼마가 나오는지, 자동차에 기름 한 번 넣으면 얼마가 드는지, 월급 받아서 렌트비 내고 나면 얼마나 남는지. 사실 이런 게 훨씬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번 미국 중간선거 결과를 보니 역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민주당이 연방 상하원 선거뿐 아니라 주지사 선거에서도 크게 승리했다는 소식입니다.
보도에 따르면 민주당 소속 주지사가 최소 28명으로 늘어나면서 2006년 이후 20년 만에 과반을 확보하게 됐다고 합니다.
특히 놀라운 건 텍사스입니다.
공화당의 텃밭이라고 불리던 텍사스에서 민주당 후보가 현역 그레그 애벗 주지사를 꺾었다는 겁니다.
오하이오와 조지아, 아이오와에서도 민주당이 승리했다는 소식이고요.
이 정도면 단순히 어느 후보가 인기가 많아서 벌어진 일이라고 보기는 어렵겠죠.
저는 이번 선거에서 경제 문제가 상당히 크게 작용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미국 사람들도 이제 생활비에 지쳤다
워싱턴 DC는 원래 물가가 비싼 도시입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동안 생활비가 올라가는 걸 보면 정말 예전과 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트에 가서 특별히 비싼 물건을 산 것도 아닌데 계산대에서 100달러가 훌쩍 넘어갑니다.
외식 한 번 하려면 팁까지 생각해야 하고, 자동차 보험료며 전기요금이며 부담스럽지 않은 게 없습니다.
기름값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은 자동차 없이는 생활하기 어려운 지역이 많습니다.
출퇴근하는 데 매일 차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휘발유 가격은 단순한 경제지표가 아닙니다. 매주 지갑에서 빠져나가는 돈입니다.
기름값이 오르면 운송비가 오르고, 운송비가 오르면 결국 식료품과 각종 생활용품 가격에도 영향을 줍니다.
월급은 조금 올랐다고 하는데 생활은 별로 나아진 게 없는 겁니다.
물론 모든 물가 상승을 대통령이나 특정 정당 탓으로 돌릴 수는 없습니다. 국제유가도 있고, 공급망 문제도 있고, 기업들의 가격 정책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유권자들은 경제학 강의를 듣고 투표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자기 생활이 나아졌는지, 아니면 더 어려워졌는지를 보고 판단합니다.
텍사스까지 바뀌었다면 그건 상당한 신호다
제가 이번 선거 보도에서 가장 눈여겨본 부분은 텍사스입니다.
텍사스는 오랫동안 공화당이 강세를 보여온 주입니다.
그런 곳에서 민주당 주지사가 탄생했다면 그만큼 유권자들의 불만이나 변화에 대한 요구가 컸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오하이오와 아이오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지역마다 선거에 영향을 미친 요인은 다를 겁니다. 후보 개인의 능력이나 지역 현안, 낙태 문제, 이민 정책 등도 중요했겠죠.
그렇지만 여러 지역에서 비슷한 정치적 변화가 나타났다면 전국적으로 공통된 불만이 있었는지도 살펴봐야 합니다.
저는 그 중심에 생활비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정치인들은 경제가 좋다고 하는데
뉴스를 보면 미국 경제가 견고하다느니, 고용이 좋다느니, 주식시장이 상승했다느니 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그런 뉴스가 모든 사람에게 위로가 되는 건 아닙니다.
주식이 없는 사람에게 주가 상승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집이 없는 사람에게 부동산 가격 상승은 오히려 부담일 수 있습니다.
실업률이 낮다고 해도 월급으로 생활비를 감당하기 어렵다면 그 사람에게 경제가 좋다고 말하기는 힘들겠죠.
워싱턴 DC에서 살다 보면 정치 이야기를 정말 자주 접합니다.
그런데 저는 요즘 정치인들이 숫자로 설명하는 경제와 사람들이 실제로 체감하는 경제 사이에 상당한 거리가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결국 투표는 생활에서 시작된다
이번 선거 결과가 경제 문제 하나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생활비 부담이 커질수록 집권 세력에 대한 평가가 냉정해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유권자들은 거창한 정치 구호보다 내년에는 생활이 조금 더 나아질 수 있을지를 궁금해합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마트에서 장을 볼 때 가격표를 덜 신경 쓰고, 자동차에 기름을 넣으면서 한숨을 덜 쉬고, 월급을 받아서 조금이라도 저축할 수 있는 생활.
사실 우리가 바라는 게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니잖아요.
이번 선거 보도를 보면서 이럴 줄 알았다고 생각한건 저만 그런것이 아닐꺼 같네요.
정치인들은 서로 이념과 정책을 놓고 싸우지만, 결국 평범한 미국인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매일 마주하는 생활의 현실이라는 것을요.


Forest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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