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풀러튼에서 살다 보면 개 키우는 집이 정말 많습니다.
동네 산책 나가면 사람보다 개를 먼저 아는 경우도 있어요.
이름은 몰라도 "아, 저 집 골든리트리버", "저기 맨날 짖는 말티즈하고 뽀메 듀오" 이런 식입니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사진 하나를 보고 한참 웃었습니다.
치와와 한 마리가 주인을 보고도 반응 없이 있으니까 주인이 실명한 줄 알고 병원에 데려갔는데, 알고 보니 그냥 주인한테 삐져서 무시했다는 겁니다.
이제 개도 정신건강을 챙겨줘야 하는 시대가 온 건가 싶습니다.
사실 개도 사람처럼 스트레스나 불안, 무료함을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특히 하루 종일 혼자 집에 있는 개들은 분리불안을 보이기도 하고 생활환경이 갑자기 바뀌거나 주인과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면 행동이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풀러튼에서 개 팔자도 참 다양합니다.
어떤 집 개는 아침부터 주인하고 힐크레스트 파크를 산책하고, 오후에는 강아지 데이케어 갔다가 저녁에는 유기농 간식 먹습니다.
여름에는 에어컨 빵빵하게 틀어주고 생일 되면 케이크까지 사줍니다.
나 어릴 때 한국에서 키우던 개하고 비교하면 거의 재벌집 막내아들 수준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잘해줘도 개 입장에서는 불만이 있을 수 있나 봅니다.
주인이 며칠 바빠서 산책을 대충 한다든지, 집에 새로운 강아지가 들어왔다든지, 예전처럼 자기를 안아주지 않는다든지 하면 행동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밥을 잘 안 먹고 축 처져 있거나 평소 좋아하던 장난감에도 관심이 없어질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개가 말을 못 한다는 겁니다.
사람 같으면 "요즘 당신이 나한테 너무 무관심한 것 같아"라고 카톡이라도 보내겠지만 개는 그냥 소파 구석에 누워서 눈으로 욕합니다.
특히 치와와 같은 애들은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면 내가 뭘 잘못했나 싶을 정도로 표정이 심각합니다.
그렇다고 개가 축 처져 있다고 무조건 "우리 개 우울증 걸렸다"라고 생각하는 것도 위험합니다.
식욕이 갑자기 떨어지거나 계속 잠만 자고 움직이지 않는다면 통증이나 다른 질환 때문일 수도 있으니 먼저 수의사에게 확인하는 게 맞습니다.
몸에 이상이 없는데 행동 변화가 계속될 때 스트레스나 불안 같은 원인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거죠.
결국 개 정신건강 관리라고 해서 거창한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매일 적당히 산책시키고, 같이 놀아주고, 혼자 있는 시간을 너무 길게 만들지 않고, 생활 패턴을 어느 정도 일정하게 유지해 주는 겁니다.
옛날 한국에서는 개한테 밥 주고 물 주면 다 키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미국 와서 보니 개도 치과 가고, 보험 들고, 데이케어 다니고, 이제는 마음까지 살펴줘야 합니다.
이러다 강아지 전문 심리상담소 생겨서 주인이 옆에 앉아 "선생님, 얘가 요즘 저하고 눈을 안 마주쳐요" 하고 상담받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사진 속 치와와 표정을 다시 보니까 웃을 일이 아닙니다.
저 정도 표정이면 주인이 뭘 잘못하긴 한 것 같습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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