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들이 술 마실 때 '위하여'를 안 외치는 진짜 이유 - Federal Way - 1

미국 사람들 모임에 가보면 다들 잔 들고 "Cheers!" 한마디 하고 가볍게 부딪힌 다음 바로 마셔버린다.

한국에서처럼 누가 일어나서 한마디 던지고 다 같이 "위하여!" 외치는 그 장면은, 미국에서는 거의 본 적이 없다.

처음 이런 자리에 갔을 때 나는 살짝 당황했다.

건배사를 준비해 간 것도 아닌데 다들 너무 자연스럽게 각자 알아서 마시길래, 나만 타이밍을 놓친 건가 싶었다.

선창하는 사람도 없고 복창하는 구호도 없으니 언제 잔을 부딪혀야 할지부터 애매하더라.

몇 번 더 겪어보고 나서야 이게 미국 술자리의 구조 자체가 한국과 다르기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됐다.

한국의 건배사는 그 자리에서 제일 윗사람이나 그날의 주인공이 먼저 한마디를 던지고, 나머지 사람들이 그 말을 그대로 복창하는 방식이다.

때로는 누구를 지목해서 즉석으로 멘트를 시키기도 하는데, 그 순간 잘 맞는 말을 못 내놓으면 은근히 진땀이 나기도 한다.

이 의식 자체가 이 자리에 위아래가 있고, 다 같이 한 팀이라는 걸 확인하는 절차에 가깝다.

반면 미국 술자리는 회식이라기보다 개인과 개인이 자유롭게 대화하는 자리에 훨씬 가깝다.

한 사람이 대표로 선창하고 나머지가 복창하는 위계 구조 자체가 애초에 잘 없다.

그러다 보니 정해진 구호 없이 각자 원할 때 잔을 들고 짧게 "Cheers"라고만 하고 넘어가는 거다.

사실 "Cheers"라는 말 자체 유래도 꽤 흥미롭다.

이 단어는 원래 얼굴이나 표정을 뜻하던 옛 프랑스어 계열 단어에서 나왔고, 시간이 지나며 기분이나 태도를 가리키는 말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잔을 부딪히는 행동 자체의 뿌리는 훨씬 더 오래됐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신들에게 술을 바치는 의식에서 잔을 들어 올리는 관습이 있었고, 여기서 오늘날의 건배 문화가 시작됐다고 알려져 있다.

중세 유럽에서는 정적을 독살하는 일이 잦다 보니, 잔을 세게 부딪혀 서로의 술이 살짝 섞이게 하는 방식으로 안전을 확인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다만 역사학자들은 이 독살 방지설을 실제 증거보다는 후대에 상징적으로 굳어진 이야기에 가깝다고 본다.

유럽 쪽에는 건배할 때 눈을 마주치지 않으면 7년간 운이 나빠진다는 미신도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런데 미국은 이 정도 격식조차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다.

눈을 맞추든 안 맞추든, 잔을 세게 부딪히든 살짝 대든, 딱히 지켜야 할 규칙처럼 여기지 않는다.

흥미로운 건 미국도 예전엔 지금보다 훨씬 격식 있는 건배 문화가 있었다는 점이다.

18세기와 19세기 미국의 공식 만찬에서는 건국 초기 지도자들도 참석해 순서대로 건배를 올리는 자리가 흔했다고 한다.

그러던 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개인화되고 캐주얼해진 셈이다.

스포츠 경기를 보러 갔을 때도 이 차이가 확실히 느껴진다.

다 같이 좋아하는 팀을 응원하다가도 골이 터지거나 홈런이 나오면 그 순간 옆 사람과 자연스럽게 잔을 부딪히지, 누가 미리 신호를 주거나 구호를 맞추지는 않는다.

그 자리 분위기에 따라 알아서 반응하는 게 자연스러운 거지, 정해진 절차를 따르는 느낌은 아니다.

결국 지금의 미국식 건배가 이렇게 가벼운 이유는, 술자리 자체를 조직의 의식이 아니라 각자의 순간으로 보는 문화 쪽으로 옮겨갔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이 자유로운 분위기가 편할 때가 훨씬 많다.

그럴듯한 건배사를 미리 준비할 필요도 없고, 누가 먼저 말을 꺼낼지 눈치 볼 필요도 없으니까.

그래도 가끔은 다 같이 목청껏 "위하여!"를 외치던 그 순간의 에너지가 은근히 그리워지기도 한다.

다 같이 한목소리로 외치고 나면 그 짧은 순간에 없던 활기까지 생기는 느낌이 있었으니까.

어느 쪽이 더 낫다기보다는, 그 순간 그 자리 사람들이 서로를 어떻게 대하고 싶은지가 잔 부딪히는 방식에 그대로 묻어나는 게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