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잘 나가는 무협웹툰을 보다 보면 주인공이나 절세고수에게 유난히 기구한 체질이 붙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천살성(天煞星)과 구음절맥(九陰絶脈)이다.
하나는 태어날 때부터 세상을 어지럽힐 운명을 타고난 존재처럼 묘사되고, 다른 하나는 엄청난 음기를 가지고 태어났지만 그 때문에 오래 살지 못하는 체질로 등장한다.
물론 둘 다 실제 의학에 존재하는 체질은 아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옛사람들이 이런 설정을 완전히 아무 근거 없이 만들었다고 보기도 어렵다는 점이다.
현대 의학의 눈으로 보면 비슷하게 느껴질 만한 실제 현상들이 있기 때문이다.
천살성은 무협에서 보통 '살기를 타고난 사람'이다. 어릴 때부터 부모나 주변 사람이 죽거나 큰 사건에 휘말리고, 본인 역시 싸움과 죽음 속에서 살아간다.
현실에는 당연히 사람을 죽일 운명을 가지고 태어나는 천살성이라는 것은 없다. 하지만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기질이 서로 다르다는 것 자체는 사실이다.
충동 조절, 공포 반응, 공격성, 위험을 감수하는 성향 등에는 유전적 요인과 뇌의 발달, 성장 환경이 복합적으로 관여한다.
같은 위험을 만나도 어떤 사람은 극도로 겁을 먹고 피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비교적 침착하거나 오히려 위험을 향해 움직인다.
옛날 사람들이 이런 극단적인 기질을 가진 사람을 보았다면 '저 사람은 살성을 타고났다'고 설명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상상해볼 수 있다.
구음절맥은 조금 더 흥미롭다.
무협에서 구음절맥을 가진 사람은 대개 몸이 지나치게 차고 허약하다.
손발이 차며 추위를 심하게 타고, 얼굴이 창백하고 쉽게 지친다.
심하면 일정한 나이를 넘기지 못한다고 한다. 반대로 특별한 내공심법이나 영약을 만나면 엄청난 무공을 얻는 설정도 흔하다.
현실에도 '구음절맥'이라는 병은 없지만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사람은 분명히 있다.
예를 들어 갑상선기능저하증이 있으면 추위를 심하게 타고 피곤하며 몸의 대사가 느려질 수 있다.
빈혈이 심한 사람도 얼굴이 창백하고 손발이 차며 조금만 움직여도 쉽게 지친다.
더 극단적으로는 태어날 때부터 특정 효소나 대사 기능, 심장, 면역계 등에 문제가 있는 희귀 유전질환도 있다.
특히 옛 의학에서 말하는 '차가운 체질'은 현대 의학의 한 가지 질환과 정확히 대응하지 않는다.
빈혈, 영양 상태, 갑상선 기능, 혈액순환, 자율신경계 등 여러 현상이 한 사람에게 겹치면 실제로 다른 사람보다 추위를 훨씬 많이 타고 체력이 약한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무협의 천살성과 구음절맥을 현대적으로 바꾸어 생각하면 재미있다.

천살성이 인간의 극단적인 '기질'을 표현한 것이라면, 구음절맥은 선천적으로 약한 신체를 그냥 신비한 체질로 만들어낸 것에 가깝다.
다만 무협에서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더 붙인다.
약점이 너무 강하면 그것이 오히려 엄청난 능력의 씨앗이 된다는 것이다.
구음절맥 때문에 죽을 운명이었던 사람이 절세무공을 만나 천하제일인이 되고, 천살성 때문에 평생 피를 볼 운명이었던 사람이 그 살기를 통제하면서 최고의 고수가 된다.
현실에서는 그런 식으로 내공이 폭발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마다 유전적으로 체온 조절, 근육 구성, 통증 민감도, 스트레스 반응, 지구력과 회복력이 상당히 다르다는 것은 사실이다.
마무리를 조금 더 재미있고 여운 있게 다듬으면 이렇게 쓸 수 있습니다.
결국 무협의 재미는 현실에도 분명히 존재하는 인간의 '타고난 차이'를 아주 거창하게 뻥튀기하는 데 있는 것 같다.
똑같이 태어난 것 같아도 누구는 추위를 엄청 타고, 누구는 밤새워도 멀쩡하고, 누구는 겁이 많고, 누구는 위험한 상황에서도 이상할 정도로 침착하다.
현대인은 이런 차이를 보면 혈액검사를 하고 호르몬을 검사하고 유전자를 들여다본다. 그런데 옛날 사람들은 그걸 음양과 오행, 기와 경맥으로 설명했다.
그리고 무협작가는 거기에 상상력을 한 숟갈이 아니라 거의 국자로 퍼 넣었다.
손발이 유난히 차가운 사람은 구음절맥이 되고, 성격이 거칠고 살기가 느껴지는 사람은 천살성이 된다.
거기에 절세고수가 나타나 "이 아이는 스무 살을 넘기기 어렵다" 한마디 해주면 이야기는 완성된다.
물론 현실에서 천살성이나 구음절맥이라는 체질이 발견될 가능성은 없다.
병원에서 피검사를 했는데 의사가 심각한 얼굴로 "선생님, 구음절맥입니다"라고 말할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가 수백 년 동안 사람들에게 그럴듯하게 느껴졌던 이유는 있다.
사람은 실제로 태어날 때부터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현대 의학은 그것을 유전과 신경계, 호르몬과 대사라는 말로 설명하고, 무협에서는 그것을 천살성과 구음절맥이라고 불렀을 뿐이다.
그러고 보면 무협은 완전히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현실에 있는 작은 차이를 발견해서 거기에 내공 100년쯤을 더해 놓은 세계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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