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우체통은 왜 하나같이 똑같은 모양일까 - Staten Island - 1

아침마다 걷는 길이 있다. 집집마다 마당의 색깔도 다르고 심어놓은 나무의 키도 제각각인데, 도로가에 늘어선 우체통만큼은 어느 집을 지나도 신기하리만치 닮아 있다. 새로 지은 집이든 오래된 집이든, 그 앞을 지키고 선 우체통의 몸집은 거의 한 틀에서 나온 것처럼 보인다.

둥근 지붕 아래 몸통이 터널처럼 완만하게 휘어 있고, 옆구리에는 작은 빨간 깃발이 하나씩 달려 있다. 편지가 들어 있으면 깃발을 세워두고, 비어 있으면 눕혀두는 그 방식은 이 골목이나 저 골목이나 다르지 않다. 매일 지나치던 풍경인데도 걷다 보면 그게 왜 그런지 문득 궁금해지는 날이 있다.

답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 보니, 이야기는 백 년도 더 전으로 이어져 있었다.

1915년, 미국 우체국은 시골 지역 배달 노선에 설치할 우편함의 표준 규격을 처음으로 정했다. 이 설계를 맡은 사람은 우체국 소속 엔지니어였던 로이 조롤먼이었고, 그가 그려낸 터널형 몸체에 빨간 깃발을 단 형태가 지금 우리가 떠올리는 우체통의 원형이 되었다. 1916년 7월부터는 이 규격에 맞지 않는 우편함은 시골 배달 노선에 설치할 수 없도록 했다고 하니, 생각보다 훨씬 이른 시기부터 통일된 셈이다.

흥미로운 대목은 따로 있다. 조롤먼은 이 디자인에 특허를 내지 않았다. 그 덕분에 어느 제조사든 이 형태를 가져다 쓸 수 있었고, 그렇게 한 세기 넘는 시간을 지나오면서 미국 어디를 가도 비슷한 실루엣의 우체통이 길가에 서 있게 되었다. 누군가 욕심을 부리지 않았기에 오히려 널리 퍼진 디자인이라니, 알고 나니 마음 한 켠이 조금 뭉클해지기도 한다.

지금이라고 크게 달라진 것은 아니다. 미국 우정공사는 우체통의 색이나 겉모양을 세세히 정해두지 않는다. 대신 문이 정확히 여닫히는지, 비바람에 잘 견디는지, 깃발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안쪽 공간이 우편물을 담기에 충분한지 같은 기능적인 최소 기준만 두고 있다. 그 기준만 통과하면 색을 칠하든 무늬를 새기든 자유인데도, 결국은 서로 닮은 모양으로 수렴하는 걸 보면 좋은 형태란 애초에 몇 가지로 정리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인지 동네를 걷다 보면 우체통마다 슬며시 얹힌 개성이 눈에 들어온다. 누구는 옆면에 작은 새 모양 장식을 붙여두었고, 누구는 받침대 아래 화분을 두어 계절마다 다른 꽃을 심는다. 몸통의 골격은 똑같은데, 그 위에 얹는 손길은 저마다 다르다는 게 오히려 정겹게 느껴진다.

정원을 손질할 때도 비슷한 순간을 마주한다. 화단의 경계선만 반듯하게 잡아두면 그 안에서 꽃들이 제멋대로 피어나도 전체는 어수선해 보이지 않는다. 라벤더 화분을 나란히 늘어놓았을 때도 그렇다. 화분의 모양은 다 똑같지만, 그 안에서 자라난 향과 색은 저마다 다르게 퍼진다. 우체통도 그런 그릇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형태라는 최소한의 틀만 정해두었을 뿐인데, 그 안을 오가는 사연은 매일 다르다.

향을 다루는 일을 좋아하다 보니, 이런 것들에 자꾸 눈이 간다. 라벤더든 로즈메리든 병에 담기는 순간 겉모습은 비슷해지지만, 뚜껑을 여는 순간 퍼지는 향은 결코 같지 않다. 통일된 그릇 안에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 어쩌면 그게 오래도록 사랑받는 것들의 공통점일지도 모르겠다. 우체통 역시 그렇게, 겉으로는 말이 없어도 안에는 늘 누군가의 사정이 담겨 있는 셈이다.

오늘 아침에도 깃발이 세워진 우체통 하나를 지나쳤다. 저 안에 어떤 소식이 담겨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백 년 전 누군가 조용히 그려둔 도면 한 장이 지금까지도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다정하게 느껴졌다. 화려한 티를 내지 않아도 오래가는 것들이 있다는 걸, 그런 소소한 장면에서 또 한 번 확인하는 아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