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USPS 우체통, 왜 전부 비슷하게 생겼을까 - Staten Island - 1

뉴욕에서 아침마다 걷다 보면 꼭 마주치는 물건이 하나 있습니다.

길모퉁이나 우체국 앞에 서 있는 파란색 USPS 우체통입니다.

요즘 세상에 누가 편지를 그렇게 많이 보낸다고 아직도 저 큰 철제 우체통이 길거리에 있을까 싶습니다.

이메일도 있고 문자도 있고, 은행 고지서까지 전부 온라인으로 받는 시대인데 말입니다.

저도 마흔이 되도록 별생각 없이 지나쳤는데 어느 날 자세히 보니 묘하게 오래된 물건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파란색 철제 몸통에 USPS 표시가 붙어 있고, 편지를 넣는 입구가 있습니다. 디자인도 상당히 단순합니다.

그런데 이 우체통의 역사를 찾아보니 미국 우편 역사와 거의 같이 움직여온 물건이었습니다.

미국에서는 19세기부터 사람들이 우체국까지 직접 가지 않고 길거리에서 편지를 보낼 수 있도록 우편 수거함을 설치하기 시작했습니다. 뉴욕 같은 대도시에서는 특히 필요한 시설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출근하면서 편지를 넣고, 우체국 직원이 정해진 시간에 돌아다니면서 우편물을 수거하는 방식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별것 아닌 시스템인데 인터넷도 휴대전화도 없던 시절에는 이것 자체가 거대한 통신망이었습니다.

사업 계약서도 들어갔을 것이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도 들어갔을 겁니다.

세금 서류와 청구서, 생일카드와 크리스마스카드도 모두 저 통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우리가 익숙하게 보는 파란색 역시 처음부터 당연했던 것은 아닙니다.

미국의 거리 우편함은 시대에 따라 여러 색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다가 1970년대 초 우편 시스템의 이미지가 정비되면서 지금처럼 USPS의 파란색 collection box가 미국 거리의 대표적인 모습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래서 미국 영화를 오래 보다 보면 시대에 따라 길거리 우체통의 모습이나 색깔이 조금씩 다른 것도 볼 수 있습니다.

뉴욕에서 이 파란 우체통이 특히 눈에 들어오는 이유는 도시 자체가 오래됐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주변은 계속 바뀝니다. 예전에 있던 가게가 사라지고 새로운 카페가 들어옵니다.

오래된 건물을 리모델링하고 전광판은 더 커지고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보면서 걸어갑니다.

그런데 그 한쪽에 파란 우체통은 여전히 서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시대에 뒤떨어진 물건입니다.

편지 한 장 보내려고 종이에 글을 쓰고 봉투에 넣고 우표를 붙인 다음 길거리 우체통에 넣습니다.

누군가 와서 그것을 수거하고 분류한 다음 비행기나 트럭에 실어 다른 도시로 보냅니다.

버튼 한번 누르면 1초도 안 돼 메시지가 지구 반대편까지 가는 세상에서 이렇게 느린 통신 방법이 아직 존재한다는 게 신기합니다.

그렇다고 USPS 우체통이 쓸모없어진 것도 아닙니다.

여전히 수표나 각종 서류, 카드, 일반 우편물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고 온라인에서 우편요금을 지불한 소형 우편물을 넣는 데 이용하기도 합니다.

우체국 창구에 줄을 설 필요 없이 지나가는 길에 넣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다만 예전만큼 많이 필요하지 않은 것은 분명합니다.

USPS도 우편 이용량과 수거량 등을 고려해 collection box를 관리합니다.

그래서 오래 산 사람들은 "예전에는 저쪽에도 파란 우체통이 하나 있었는데 없어졌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뉴욕에서는 그럼에도 이 파란 상자가 도시 풍경과 묘하게 잘 어울립니다.

노란 택시나 소화전처럼 화려하지도 않고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는 물건도 아닙니다.

그냥 묵묵히 서 있습니다.

가끔 보면 낙서가 되어 있기도 하고 페인트가 벗겨진 것도 있습니다. 겨울에는 눈을 뒤집어쓰고 여름에는 뜨거운 햇볕을 그대로 받습니다.

그래도 누군가는 그 안에 편지를 넣습니다.

저는 그게 재미있습니다.

파란 철제 상자 하나만 놓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생각해보면 그 안에는 매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어갑니다.

누군가에게 보내는 생일카드일 수도 있고, 중요한 서류일 수도 있고, 아직도 손으로 쓴 편지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정해진 시간이 되면 USPS 직원이 와서 그것들을 한꺼번에 가져갑니다.

인터넷 시대에도 100년 넘게 이어져온 방식이 아직 작동하고 있는 겁니다.

오늘 아침에도 길을 걷다가 파란 USPS 우체통 하나를 지나쳤습니다.

예전에는 그냥 길거리 시설물로만 보였는데 역사를 알고 나니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뉴욕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으로 바뀌는 도시지만, 한편에는 이렇게 오래된 시스템도 조용히 살아남아 있습니다.

어쩌면 저 파란 우체통은 편지를 담는 상자라기보다 미국 사람들이 한 세기가 넘도록 사용해온 통신 시스템의 작은 흔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그 옆을 지나가는 풍경.

그 두 가지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이 오히려 뉴욕답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