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말이 되면 교회 바자회나 굿윌 기증함 앞에서 헌 옷 상자를 내려놓는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된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직원이 건네는 영수증을 지갑이나 서랍 속에 꼬박꼬박 챙겨 넣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점이다.
정작 세금 신고할 때는 그 영수증을 써먹지도 않는 경우가 태반인데도 말이다.
그래서 도대체 왜들 그렇게 열심히 모아두는지 한번 들여다봤다.
우선 세금 얘기부터 정리해보자면, 요즘 미국에서 항목별 공제, 그러니까 itemize를 하는 가구는 전체의 10% 정도밖에 안 된다.
2017년 세법 개정으로 기본공제가 크게 뛰면서, 웬만큼 기부해서는 영수증을 아무리 모아도 세금에서 차이가 나지 않게 됐기 때문이다.
2026년 기준 기본공제는 독신 16,100달러, 부부 합산 신고는 32,200달러라, 이 문턱을 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올해부터 재미있는 변화가 하나 생겼다.
항목별 공제를 안 받는 사람도 현금 기부에 한해 독신은 1,000달러, 부부는 2,000달러까지 별도로 공제를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반대로 항목별 공제를 받는 쪽은 오히려 조건이 까다로워졌는데, 한 해 총 기부액이 조정총소득의 0.5%를 넘는 부분부터만 인정받는다.
그러니까 250달러가 넘는 기부는 자선단체가 써주는 서면 확인서가 있어야 공제를 받을 수 있다는 오래된 규정이 여전히 핵심이다.
250달러 밑으로는 은행 명세서나 카드 내역서만으로도 충분해서, 사실 영수증 한 장 한 장을 다 모아둘 필요까지는 없는 셈이다.
옷이나 가구처럼 물건으로 기부했을 때는 한 해 동안 기부한 물건 값을 다 합쳐서 500달러가 넘으면 Form 8283이라는 서류를 따로 작성해야 하고, 5,000달러를 넘으면 전문 감정까지 받아야 한다.
굿윌이나 Salvation Army에 옷 몇 벌 갖다준 정도로는 이 서류까지 갈 일은 사실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영수증을 받았다고 그걸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국세청 감사 시효가 원칙적으로 신고 마감일이나 실제 신고일 중 늦은 날로부터 3년이기 때문에, 그 기간 동안은 서랍 속에 고이 모셔둬야 한다.
만약 소득을 25% 이상 축소 신고한 것으로 의심받으면 그 기간이 6년까지 늘어나니, 어설프게 버렸다가는 곤란해질 수 있다.
그러다 보니 4월 세금 신고철이 다가오면 한 해 동안 모아둔 영수증 뭉치를 꺼내서 하나하나 정리하는 풍경도 낯설지 않다.
요즘은 아예 앱이나 스프레드시트에 기부 내역을 그때그때 입력해두는 사람도 많아졌다.
한국에서는 현금, 카드 내역이 국세청 시스템에 자동으로 잡히는 경우가 많다 보니, 개인이 일일이 챙겨야 하는 방식이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런데 미국은 누가 대신 챙겨주는 시스템이 아니라 각자 알아서 증명해야 하는 구조라, 습관이 안 되어 있으면 나중에 곤욕을 치른다.
연말이 되면 기부가 몰리는 것도 이런 맥락과 무관하지 않은데, 세제 혜택을 챙기려는 계산과 베풀고 싶은 마음이 겹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영수증을 꾸준히 챙기는 진짜 이유는 세금보다 다른 데 있는 것 같다.
나중에 국세청에서 뭐라도 물어볼 때 "내가 이만큼 냈다"는 증거가 되어준다는 안도감이 의외로 크다.
공제를 받든 안 받든 만약을 대비해 증빙을 남겨두는 습관, 이게 은근히 세대를 타는 것 같기도 하다.
거기다 한 해 동안 어디에 얼마를 냈는지 스스로 기록해두고 싶어하는 마음도 무시할 수 없다.
연말에 영수증을 죽 모아보면 올해 이만큼은 나눴구나 싶은 뿌듯함이 생기는데, 이건 숫자로 확인받고 싶은 사람 마음에 가깝다.
나 역시 서랍 한켠에 영수증 봉투를 따로 두고 사는데, 막상 세금 신고 때 별 쓸모가 없더라도 그 봉투가 두툼해지는 걸 보면 괜히 뿌듯한 게 사실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태도가 꽤 괜찮다고 본다.
정부가 공제를 얼마나 해주든 말든, 내가 낸 것은 내 손으로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자세가 결국 스스로에게 책임지는 습관 아니겠는가.
영수증 한 장이 별거 아닌 것 같아도, 그 안에는 이런 자기 관리의 습관이 꽤 진하게 배어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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