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 년 전에 알고 지내던 미국인 사업 파트너가 있었는데, 그 동네 집값이 꽤 올랐다는 얘기를 듣고 나도 모르게 "이 참에 파시죠?"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돌아온 대답이 의외였다. 팔 생각이 전혀 없다는 거였다.
사업하는 입장에서 보면 이해가 잘 안 갔다. 자산 가치가 올랐으면 현금화하거나 더 큰 자산으로 갈아타는 게 상식 아닌가 싶었으니까.
이유를 물었더니 돌아온 말이 더 인상적이었다. 아이들이 자란 방이고 매년 크리스마스트리를 세우는 구석이 정해져 있다는 얘기였다.
숫자로만 따지던 나에게는 낯선 계산법이었다. 그런데 미국에서 오래 지내다 보니 이 사람만의 특이한 사고방식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그렇다고 이 얘기가 순전히 감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미국에서 집을 팔 때는 중개 수수료와 세금, 각종 비용을 합쳐 매매가의 8퍼센트에서 10퍼센트 정도가 그대로 빠져나간다.
시세가 올랐다 해도 이사 비용과 이 비용을 다 빼고 나면 실제로 손에 쥐는 차익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계산이 나온다.
영어에는 집을 뜻하는 단어가 두 개 있다는 것도 이 대목에서 새삼 눈에 들어왔다. 건물을 가리키는 하우스와 그 안의 삶을 가리키는 홈이 따로 있는 것이다.
한국어에는 이런 구분이 없다 보니 미국 사람들이 왜 굳이 두 단어를 나눠 쓰는지 처음에는 잘 와닿지 않았다.
이런 사고방식에는 역사적인 배경도 있다. 1944년 제정된 제대군인 원호법, 이른바 GI 빌은 2차 대전에서 돌아온 참전 군인들에게 낮은 금리로 집을 살 수 있도록 지원했다.
그 결과 1944년에 11만 4천 채였던 신규 주택 건설이 1950년에는 170만 채까지 늘었다. 레빗타운 같은 교외 신도시들이 그 몇 년 사이에 통째로 생겨난 것도 이때다.
정부가 주택 보급을 밀어붙인 이유도 단순히 집이 부족해서만은 아니었다. 내 집을 가진 시민이 사회적으로 더 안정적이라는 판단이 깔려 있었다.
그렇게 지어진 교외의 단독주택과 하얀 말뚝 울타리는 곧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이 됐다. 집이 성공의 증표이자 동시에 정착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셈이다.
그런데 정작 투자 수익률로만 보면 집은 그렇게 매력적인 자산이 아니었다. 경제학자 로버트 실러의 분석에 따르면 189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물가상승률을 반영한 실질 주택 가격은 한 세기 넘게 거의 제자리걸음이었다.
비즈니스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솔직히 이 대목에서 좀 놀랐다. 백 년 넘게 실질 가격이 거의 안 올랐다는 자산을, 그것도 대출까지 받아가며 사는 게 합리적인 선택인가 싶어서다.
그런데도 미국 사람들이 계속 집을 사는 이유는 수익률 계산이 아니라 다른 데 있는 것 같다. 부동산 업체 레드핀의 최근 설문에서 주택 소유자의 74퍼센트가 집만큼 있고 싶은 곳이 없다고 답했다.
같은 조사에서 74퍼센트는 집이 자기 자신을 보여주는 공간이라고 답했고, 72퍼센트는 동네에 소속감을 느낀다고 답했다.
유니슨이라는 회사가 진행한 다른 조사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보인다. 응답자의 91퍼센트가 집을 소유하면서 안정감이나 성공했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답했고, 70퍼센트는 집에 정서적으로 애착을 느낀다고 답했다.
같은 조사에서 51퍼센트는 집이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숫자로만 보면 손해에 가까운 선택을 이 정도 비율의 사람들이 만족스럽다고 느낀다는 뜻이다.
나도 처음에는 집을 자산 항목의 하나로만 봤다. 그런데 이 동네에서 몇 년 지내다 보니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결국 집을 재산으로 보느냐 홈으로 보느냐는 계산기의 문제가 아니라 우선순위의 문제였다. 나는 여전히 숫자를 먼저 보는 사람이지만, 이 우선순위만큼은 이해할 만하다고 본다.

쥐약먹고멀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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