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학교 연극이나 뮤지컬 공연 전에 무대 뒤를 지나가다 보면 재미있는 장면을 볼 수 있어요.
배우가 무대로 올라가기 직전, 동료들이 등을 두드리며 던지는 말이 "굿럭"이 아니라 "브레이크 어 레그"거든요.
직역하면 "다리 부러지세요"인데, 격려한다면서 왜 하필 다치라는 말을 건네는 건지 처음 들으면 다들 고개를 갸웃하게 돼요.
사실 이건 저주가 아니라 미국 공연계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응원 인사랍니다.
이유를 알고 보면 여기엔 재미있는 미신이 하나 깔려 있더라고요.
무대에 서는 사람들 사이에는 "굿럭"이라고 대놓고 말하면 오히려 그 행운이 달아난다는 믿음이 있었어요.
좋은 말을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운이 그 말을 듣고 심술을 부린다고 여긴 거죠.
그래서 반대로 나쁜 말을 던져서 액땜을 하듯 안전하게 행운을 부르는 방식이 자리를 잡았대요.
말로 짓궂게 굴어야 진짜 좋은 일이 온다니, 묘하게 논리적인 미신 아닌가요.
이 표현이 언제부터 쓰였는지도 찾아봤는데, 생각보다 최근이라 좀 놀랐어요.
옥스퍼드 영어사전 기준으로 가장 오래된 기록은 1925년이고, 공연과 관련된 뜻으로 신문 지면에 등장한 건 1948년 웨스트버지니아의 한 신문이 처음이에요.
수백 년 내려온 전통일 줄 알았는데 20세기 들어서야 자리 잡은 표현이라니 살짝 의외였답니다.
기원에 대한 설도 한두 개가 아니에요.
무대 양옆에 세로로 걸린 커튼을 영어로 legs라고 부르는데, 그 커튼 사이를 뚫고 무대로 걸어 나가는 행위 자체를 이렇게 표현했을 거라는 설이 있어요.
경마장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고요.
경마에서도 대놓고 행운을 빌면 부정 탄다고 여겨서 일부러 험한 말을 주고받던 문화가 있었는데, 이게 공연장으로 옮겨왔을 거라는 이야기예요.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조종사들이 서로에게 "할스 운트 바인브루흐", 그러니까 "목과 다리가 부러지길"이라는 말로 무사 비행을 빌었다는 기록도 있더라고요.
나라와 시대는 달라도 좋은 말을 아끼고 험한 말로 운을 부르는 심리 자체는 비슷했다는 게 흥미로워요.
비슷한 미신은 프랑스 공연계에도 있는데, 프랑스 배우들은 "굿럭" 대신 "메르드"라고 말해요.
직역하면 똥이라는 뜻인데, 19세기에 관객이 마차를 타고 극장에 왔던 시절 손님이 많을수록 극장 앞에 말똥이 많이 쌓였다는 데서 나온 표현이라고 하네요.
그러니까 "메르드"라는 인사는 결국 "오늘 객석이 꽉 차길"이라는 뜻을 에둘러 표현한 말이었던 셈이죠.
미국 극장에는 이거 말고도 말 자체를 피하는 미신이 하나 더 있어요.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라는 작품 이름을 극장 안에서 직접 말하면 안 된다는 규칙이 그거예요.
그래서 배우들은 이 작품을 "스코티시 플레이"라고 돌려 부르고, 실수로 이름을 말한 사람은 극장 밖으로 나갔다가 제자리에서 세 바퀴를 돌고 침을 뱉는 식의 의식을 치러야 한다는 전통도 있대요.
이렇게 보면 미국 공연계는 유독 말 한마디에 예민한 동네 같지 않나요.
참고로 이 표현이 링컨 대통령 암살 사건과 관련 있다는 이야기도 인터넷에 종종 떠도는데, 이건 근거가 없는 낭설이에요.
범인이 극장 무대에서 뛰어내리다 다리를 다쳤다는 사실과 이 표현을 억지로 엮은 것일 뿐, 시기상으로도 전혀 맞지 않거든요.
이렇게 여러 설을 다 찾아봐도 언어학자들조차 정확한 기원 하나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 표현을 두고 뿌리를 도저히 찾을 수 없는 "죽은 은유"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답니다.
요즘은 이 표현이 극장을 넘어서 오디션이나 중요한 면접, 큰 발표를 앞둔 사람에게도 자연스럽게 쓰여요.
미국에서 지내다 보면 학교 발표회나 회사 프레젠테이션 전에 이 말을 듣는 순간이 생각보다 자주 오더라고요.
처음 들었을 때는 좀 섬뜩했는데, 유래를 알고 나니 이제는 저도 누군가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으면 괜히 이 말을 써보고 싶어져요.
정확한 기원은 몰라도 좋은 뜻으로 쓰는 말이라는 것만 기억해두면, 미국 생활에서 은근히 쓸모 있는 표현이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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