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이민 온 지도 벌써 30년이 넘었네요. 영주권 신청하고 기다릴때 보험이 없어서 병원 한번 다녀오면 300불정도는 그냥 휙 날아가요.

그래서 어지간한 건 참아버릇하게 됐어요. 그러다가 오바마 대통령이 집권 당시 도입한 이른바 오바마케어(정식명칭은 Affordable Care Act)는 그런 제도적인 한계에 대한 응답이었어요. 특히 중산층, 그러니까 돈이 엄청 많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정부 보조를 받을 만큼 가난하지도 않은 계층을 위해서 말이에요.

당시 미국에는 약 4,700만 명이 의료보험이 없었는데, 그중 대부분이 바로 이 '차상위 계층'이었어요. 이 사람들은 딱히 복지 대상도 아니고, 자력으로 민간 보험을 들자니 보험료가 너무 비쌌던 거죠. 그러니까 한 번 암이나 심장병 같은 중병이 오면, 집이 날아가는 건 시간문제였고요. 오바마 대통령은 이 현실을 바꾸고 싶었던 겁니다.

이런 점에서 오바마케어는 단순히 "모든 사람에게 보험을!"이라는 슬로건을 넘어선 의미가 있어요. 보편적 의료보험이라기보다, 불균형한 구조 속에 놓인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보호막을 씌워주자는 거였죠. 사실 이 개념은 이미 유럽 일부 국가에서 먼저 시도됐어요. 대표적으로 네덜란드와 스위스가 있죠.

네덜란드는 정부가 표준 급여 항목을 지정하고, 국세청이 직접 보험료를 정률로 걷어서 보조하는 식이에요. 그래서 민간 보험사에 가입은 하더라도 정부의 개입이 아주 강합니다. 스위스는 좀 더 시장 친화적이에요. 한국의 자동차보험처럼, 누구나 의무적으로 기본 보험에만 가입하면 되고, 나머지는 선택적으로 보장 범위를 넓히는 구조죠. 정부가 최소한의 안전망만 설정해놓고 시장에 맡기는 거예요. 오바마케어는 이 두 나라 제도의 중간 어딘가에 위치한 셈이죠.

물론, 반대 의견도 많았어요. "세금만 올리고 실효성은 없다", "기존 주정부 복지 시스템과 충돌한다"는 말이 많았고, 실제로 뉴욕 같은 곳에서는 'Child Health Plus', 'Family Health Plus' 같은 지역 프로그램을 이용하던 사람들이 오바마케어 때문에 그걸 못 쓰게 되었다고 불만을 토로했죠.

하지만 팩트는 좀 다릅니다. 오바마케어는 기존에 메디케이드(빈곤층을 위한 공공보험)를 확장한 제도예요. 단지 기존 복지 대상만이 아니라, 경제적으로 애매한 위치에 있던 중산층에게도 혜택이 돌아가게 만든 거죠. 뉴욕 주의 경우에는 연방정부 지원을 받아 메디케이드 소득 기준을 빈곤선의 200%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약 28만 명이 새롭게 의료보장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기존 프로그램보다 더 많은 사람이 혜택을 받게 된 거예요.

또 하나 중요한 점. 오바마케어는 단지 "세금을 걷어서 나눠준다"는 차원을 넘어서, 정부 재정을 보다 효율적으로 쓰게 한 제도이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무보험자들이 병이 악화된 상태로 병원을 찾다 보니, 치료비가 엄청나게 불어났고, 이게 고스란히 메디케어나 정부 부담으로 이어졌죠. 그런데 오바마케어가 시행되면서, 조기 치료가 가능해졌고, 이로 인해 중증 질환 발생 자체가 줄어들게 된 거예요.

실제로 이로 인해 병원과 정부는 타협해서 메디케어 지출을 3,350억 달러 줄이기로 했고, 제약회사에도 추가로 1,070억 달러를 부담시키는 등 협상을 통해 큰 재정 절감 효과도 만들어냈죠. 게다가 추가 세금도 상위 5%에게 집중됐으니, 일반 서민 입장에서는 큰 부담이 아니었어요.

오바마케어가 완벽한 제도는 아니에요. 저도 여전히 매달 보험료 빠져나갈 때면 한숨 나올 때가 있어요.

하지만 예전처럼 "혹시라도 큰 병 걸리면 어쩌나" 하는 공포에 휩싸여 살지 않아도 되는 지금, 그래도 조금은 안심이 돼요. 그리고 그 안심을 많은 사람들이 함께 누릴 수 있다는 것, 그게 이 제도의 가장 큰 가치라고 저는 믿어요.

그럼 지금은 어떠냐고요? 오바마케어가 시행된 지 10년이 훌쩍 넘었지만, 여전히 미국에는 의료보험이 없는 사람들, 즉 '무보험자'가 존재해요. 오바마 대통령이 열심히 제도는 만들었지만, 모든 사람이 자동으로 보험을 가지게 된 건 아니에요.

2024년 기준으로도 약 2600만 명이 여전히 무보험 상태라서 예전 4700만 명보다는 확실히 줄었지만, 생각보다 많은 숫자죠.

그럼 그 사람들은 지금 어떻게 병원에 가냐면, 응급실 치료는 법적으로 누구나 받을 수 있어요.

병원도 돈 없어 보인다고 무작정 안 받아주진 않아요. 미국의 EMTALA라는 법 때문에 응급 상황이면 보험 유무와 상관없이 응급실은 반드시 진료해야 하거든요.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이에요. 응급처치 한 번에 몇 천 불, 몇 만 불 청구서가 날아옵니다. 소득이 낮은 사람이라도 그 빚은 결국 본인이 감당해야 해요. 파산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여전히 많고요.

그럼 오바마케어로 가입하면 되지 않느냐, 맞는 말이죠. 하지만 현실은 좀 달라요. 보험료가 부담스럽거나, 제도 자체를 잘 몰라서 가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특히 서류미비 이민자들은 오바마케어 대상에서 아예 제외되기 때문에, 이분들은 사설 클리닉이나 무료 진료소를 이용하는 수밖에 없죠.

그리고 또 하나, 오바마케어는 '의무가입'이 더 이상 아니에요. 처음에는 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면 세금 벌금을 물도록 했는데, 트럼프 행정부 시절 그 조항이 폐지되면서 지금은 보험이 없어도 벌금을 내지는 않아요. 그러니까 보험료 부담되는 사람들 중에는 그냥 '나는 안 한다' 하고 아예 무보험으로 사는 사람들도 생긴 거죠.

이게 결국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악순환이기도 해요. 보험 없이 살다가 큰 병이 생기면 그땐 이미 늦고, 병원비는 또 수천, 수만 불. 국가적으로 봤을 땐 이게 또 다른 비용 부담이 되는 거예요. 예전처럼 병이 악화되기 전엔 병원에 안 가니까요.

그래서 지금도 미국 곳곳에서는 무보험자를 위한 무료 클리닉이나 슬라이딩 스케일 요금제(소득에 따라 진료비를 조정하는 제도)가 운영되고 있지만, 그 수요를 다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해요.

결국 지금 미국에서 보험이 없다는 건, 여전히 위험한 외줄 타기 같은 삶을 사는 거예요. 그리고 그 줄에서 떨어졌을 때, 누가 잡아줄지는 운에 맡겨야 하죠. 오바마케어가 그걸 막아보려던 시도였고, 지금도 그 흔적은 남아 있지만, 아직도 그늘 속에 남겨진 사람들은 많아요.

그래서 저는 항상 주변 사람들에게 말해요. "당신이 지금 건강하다면, 그건 행운이지만, 그 행운을 너무 믿진 말아요." 보험이란 건, 나중을 위해 미리 준비하는 안전망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