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욕에서 살다 보면 한식당이 아무리 많아도 매번 나가서 먹을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 같은 아저씨들에게 필요한 게 멸치다시다다.
이것 하나 있으면 적어도 국물요리 세 가지는 해결된다. 미역국, 콩나물국, 계란파국이다.
첫 번째는 미역국.
미역을 물에 불린 다음 물기를 짜고 적당히 자른다.
냄비에 참기름 조금 두르고 미역을 슬슬 볶는다.
여기에 물을 붓고 멸치다시다를 조금 넣는다.
간장 있으면 한 숟가락 정도 넣고 마늘 조금 넣으면 끝이다.
소고기 없어도 이렇게 끓이면 고기 미역국보다 담백해서 아침에 밥 말아 먹기 좋다.
문제는 다시다를 처음부터 너무 많이 넣으면 짜진다는 것이다. 조금 넣고 끓인 다음 마지막에 간을 보는 게 낫다.
미국에서 오래 살다 보니 이제 생일도 아닌데 미역국을 자주 끓인다. 속 편하고 김치 하나만 있어도 한 끼가 된다.
아이들도 처음에는 별로라고 하다가 잘 먹기 시작한 메뉴이기도 하다. 와이프는 언제나 잘먹고.

두 번째는 콩나물국이다.
이건 정말 쉽다. 냄비에 물 넣고 멸치다시다 풀고 끓기 시작하면 씻은 콩나물을 한 움큼 넣는다.
마늘 조금, 소금이나 국간장으로 간하고 마지막에 파를 왕창 썰어 넣는다.
매콤한 게 당기면 청양고추 하나 넣으면 된다.
콩나물국의 장점은 가격이다. 뉴욕 한인마트에서 콩나물 한 봉지 사면 4식구가 2번은 국 끓여 먹는다.
국 끓이고 남은 것은 고춧가루, 참기름 넣고 무쳐 먹으면 된다.
술도 안 마셨는데 아침에 뜨거운 콩나물국 한 그릇 먹으면 괜히 해장하는 기분까지 난다.
세 번째가 내가 제일 자주 해 먹는 계란파국이다.
이건 냉장고에 정말 아무것도 없을 때 만드는 비상식량이다.
물 두 컵 정도 끓이고 멸치다시다를 약간 넣는다. 계란 두 개를 그릇에 풀어놓고 물이 팔팔 끓을 때 천천히 돌려가며 붓는다.

여기서 계란 넣자마자 미친 듯이 젓지 않는 게 중요하다. 몇 초 기다렸다가 살짝 저어야 계란이 예쁘게 풀어진다.
마지막으로 대파 많이 넣고 후추 톡톡 뿌리면 끝이다.
밥 한 공기 말아서 김치하고 먹으면 의외로 훌륭하다. 아이들이 제일 잘 먹는듯.
만드는 시간은 라면보다 조금 더 걸리는 수준인데 먹고 나서는 라면 먹은 것보다 속이 편하다.
물론 요리 제대로 하는 분들은 멸치와 다시마로 육수를 내야 진짜 맛이라고 할 것이다. 맞는 말이다. 나도 시간 많으면 그렇게 한다.
그런데 평일 집에 들어와 배고픈 뉴욕 아저씨에게 중요한 건 전통 육수의 깊은 풍미가 아니다. 빨리 뜨거운 국 한 그릇 만들어 밥 먹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집 냉장고에는 미역, 콩나물, 계란, 대파가 돌아가면서 들어가고 멸치다시다가 떨어지지 않는다.
미역국은 속 편한 날, 콩나물국은 시원한 게 당기는 날, 계란파국은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
김치 하나 있고 요리는 이 세 개만 할 줄 알아도 와이프 컨디션 난조일때 아이들과 집밥 건너뛸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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