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살다 보면 제일 낯설고도 헷갈리는 게 바로 병원 예약과 보험 시스템이에요.
한국에서처럼 감기 걸리면 그냥 동네 의원 들어가서 접수하고 의사 만나고 약 받아 오는 식이 절대 아니더라고요.
미국은 일단 "예약 시스템"이 기본이에요. 아프다고 바로 병원 문 두드린다고 해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라, 미리 전화하거나 온라인으로 appointment를 잡아야 합니다. 물론 급한 경우는 ER(응급실)로 가면 되는데, 거기는 기다리는 시간이 몇 시간은 기본이고, 비용도 장난 아니게 나와요. 그래서 웬만하면 urgent care 같은 긴급 진료소를 이용하거나, 평소에 primary care physician, 즉 주치의를 정해 두는 게 필수입니다.
주치의 시스템이 또 생소하죠. 미국은 의료가 다 "게이트키퍼" 구조예요. 건강보험이 있어도 주치의(PCP)를 먼저 만나서 진료를 받고, 필요하면 주치의가 전문의에게 referral(진료 의뢰서)을 써줘야 그다음 단계로 갈 수 있어요.
한국처럼 바로 피부과, 정형외과, 안과 찾아가는 게 아니라는 얘기예요. 저도 처음에 무릎이 아파서 정형외과 가려고 했다가, 보험사에서 "PCP referral 없으면 커버 안 된다"는 걸 듣고 뒤늦게 깨달았어요.
그럼 보험은 어떻게 고르냐? 뉴욕처럼 보험 선택지가 많은 주에서는 크게 employer-sponsored plan(회사 제공 보험)과 marketplace plan(정부 보험 거래소, 흔히 오바마케어라고 부르는 것)으로 나뉘어요.
직장에서 주는 보험은 보통 회사가 보험료를 절반 이상 내주니까 혜택이 좋아요. 대신 본인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한정적이죠. 만약 프리랜서나 자영업자라면 뉴욕 state marketplace를 통해 플랜을 직접 고를 수 있어요. 이때 고민되는 게 HMO냐 PPO냐 하는 차이입니다.
HMO(Health Maintenance Organization)는 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지만, 정해진 네트워크 안에서만 진료를 받을 수 있고, 반드시 주치의 referral을 거쳐야 전문의를 볼 수 있어요.
PPO(Preferred Provider Organization)는 네트워크 바깥 병원도 어느 정도 커버되고, referral 없이 전문의를 볼 수 있어서 자유도가 높지만 보험료가 더 비쌉니다. 제 경우 회사에서 PPO를 제공해 줘서 쓰고 있는데, 대신 매달 내는 보험료가 꽤 높아요. 그래도 아이들 데리고 살다 보니 병원 자유도가 중요해서 그냥 감수합니다.
보험을 고를 때 꼭 챙겨야 할 게 premium(보험료), deductible(본인 부담금 한도), copay(진료 시 내는 고정 비용), out-of-pocket maximum(연간 최대 본인 부담 한도)예요.
예를 들어 premium은 매달 내야 하는 고정비니까 예산에 맞게 봐야 하고, deductible이 높으면 보험료는 싸지만 병원 갈 때마다 먼저 내야 하는 돈이 많아요. copay는 의사 한 번 만날 때 $20~$40 이런 식으로 내는 돈이고, out-of-pocket maximum은 1년 동안 내가 아무리 병원을 자주 가도 그 이상은 안 낸다는 상한선이에요.
뉴욕에서 살면서 또 크게 느낀 건, 병원 선택할 때 단순히 가까운 곳보다 내 보험 네트워크 안에 있느냐가 제일 중요하다는 거예요. 아무리 평판 좋은 의사라도 네트워크 밖이면 병원비 폭탄을 맞을 수 있거든요.
실제로 제 지인이 뉴욕대 병원 갔다가 자기 보험 네트워크가 아니라서 수천 불 청구서를 받은 적도 있어요. 그래서 병원 예약하기 전에 꼭 내 보험사 홈페이지에서 "in-network provider"를 검색하는 게 습관이 됐습니다.
또 한 가지 꿀팁은 urgent care를 잘 활용하는 거예요. 갑자기 열이 나거나 가벼운 부상이 있을 때, ER 가면 최소 5시간 기다리고 $2000 이상 나올 수 있는데, urgent care는 예약 없이 가도 되고 copay도 훨씬 저렴해요. 저는 회사 근처 urgent care를 하나 지정해 두고, 주말에는 집 근처 urgent care를 씁니다. 이게 은근히 생활의 안정감을 줍니다.
정리해 보면, 미국 병원과 보험 시스템은 한국에 비해 훨씬 복잡하고, 환자 스스로가 준비를 잘해야만 불필요한 비용을 피할 수 있어요. 주치의 선정, 보험 네트워크 확인, 보험 용어 이해, urgent care 활용 이 네 가지만 제대로 알면 생활이 훨씬 편해집니다.
뉴욕처럼 의료 선택지가 많은 곳에서는 더더욱 그렇고요. 처음엔 답답하고 번거롭지만, 몇 번 경험하고 나면 나름의 노하우가 생겨요. 저도 이제는 웬만한 병원 예약이나 보험 문의는 전화 몇 통으로 딱딱 처리할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해졌습니다.
그러니 미국에서 새로 정착하려는 분들이라면, 꼭 기억하세요.
아프기 전에 주치의부터 정해두고, 내 보험이 어디까지 커버되는지 미리 확인해 두는 것.
이게 결국 미국식 병원 시스템을 버텨내는 첫걸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