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까지 텍사스 여름이 유난히 시원한 진짜 이유 - San Antonio - 1

텍사스에서 몇 년만 살아도 한여름이 본격적인 8월쯤 되면 "이제 부터 여름이 진짜 시작이구나" 하는 생각부터 들죠.

아침에 집 문을 열면 90도가 넘는 뜨거운 바람이 얼굴을 때리고, 차에 타면 핸들부터 의자까지 뜨거워서 고문 당하는 수준입니다.

그런데 올해는 좀 이상했습니다. 아니 사실 작년에도 여름이 좀 시원했습니다.

그러니까 작년부터 여기 샌안토니오가 여름이면 덥기는 더운데 예년처럼 미친 듯한 더위가 오래 이어지질 않는 겁니다.

근처 지역인 어스틴도 그렇고 산안토니오도 그렇고 100°F를 넘기는 날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운이 좋은 시원한 여름이 오는 해인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도 하나같이 같은 이야기를 하더군요.

"올해는 전기요금이 좀 덜 나온 것 같아."

"작년 같았으면 지금 에어컨 하루 종일 안 꺼졌을 텐데 에어컨이 수시로 꺼지네."

"올해는 한 낮에도 마켓에 다녀올만하네."

알아보니까 올해 날씨는 우연이 아니라 여러 조건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결과였습니다.

우선 첫 번째는 엘니뇨의 영향입니다.

텍사스 사람들은 라니냐라는 말만 들어도 긴장합니다. 라니냐가 오면 비는 줄고 햇볕은 강해지고, 땅은 바짝 마릅니다.

그러면 기온이 정말 무섭게 올라갑니다. 반대로 엘니뇨 영향이 남아 있거나 두 기후가 바뀌는 시기에는 멕시코만에서 습한 공기가 계속 올라옵니다.

습도가 높으면 사람은 더 끈적거리고 짜증은 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공기 중 수분과 구름이 햇빛을 어느 정도 막아주면서 기온 자체는 덜 올라간다는 점입니다.

두 번째는 히트 돔입니다. 거대한 고기압이 도시 위를 덮어버리는 현상인데, 이게 텍사스 한가운데 자리 잡으면 정말 답이 없습니다.

하늘은 맑고 바람은 없고, 뜨거운 공기만 계속 눌러 놓으니 며칠이 아니라 몇 주 동안 오븐 안에서 사는 기분이 됩니다.

그런데 올해는 그 고기압 중심이 텍사스를 완전히 덮지 않았습니다. 아리조나나 뉴멕시코 쪽으로 조금 비켜 있거나 미국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쉽게 말하면 폭염의 주범이 우리 동네 대신 옆집에 머물러 있었던 셈입니다.

또 하나 의외였던 게 봄비였습니다. 봄에 비가 자주 왔을 때만 해도 "또 비 오네" 하고 불평했습니다.

그런데 그 비가 지금 와서 큰 역할을 했습니다. 땅에 수분이 남아 있으면 햇빛 에너지가 물을 증발시키는 데 사용됩니다. 그러면 공기가 뜨거워지는 속도가 늦어집니다.

반대로 몇 년 전처럼 가뭄이 심했던 해를 떠올려 보세요. 땅이 바싹 말라 있으니 햇빛이 그대로 공기를 달궈 버립니다. 그 차이가 생각보다 큽니다.

기후도 사람처럼 숨을 고르는 것 같습니다. 2022년과 2023년 여름은 정말 심했습니다. 거의 매일 100도를 넘겼고, 며칠만 버티는 게 아니라 몇 주씩 이어졌습니다.

그때는 한겨울 고생한다음에 여름도 미쳐돌아가서 집에 히터나 에어컨이 고장 나면 정말 큰일 나는 수준이었죠.

그런데 자연도 계속 극단으로만 가는 건 아닙니다.

기록적인 폭염이 몇 년 이어지면 대기 흐름이 조금 달라지면서 평년 수준으로 돌아오는 해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올해가 딱 그런 분위기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습니다. 여기는 어디까지나 텍사스입니다.

다음 주에 히트 돔이 다시 내려오면 110도, 115도는 금방 찍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올해부터 텍사스 여름이 시원해졌다"는 말은 아직 하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솔직히 올해는 조금 살 만했습니다. 에어컨도 예년만큼 혹사하지 않았고, 전기요금도 부담이 덜했고, 저녁에 개 데리고 산책 나가기도 한결 편했습니다.

이런 여름이 텍사스에서는 흔한 일이 아니라는 걸 오래 살아본 사람들은 다 압니다.

그래서 저는 올해 날씨를 보면서 괜히 욕심내지 않으려고 합니다. 내년에 또 어떤 여름이 올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110도를 넘기는 불지옥이 다시 올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올해처럼 조금 숨 돌릴 수 있는 여름은 그냥 고맙게 즐기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