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에서 한 발짝 떨어지는 미국인, 퍼스널 스페이스 과학 - San Antonio - 1

동네 커피숍에서 계산대 앞에 섰는데, 앞사람이 저만치 떨어져 있어서 저 사람이 줄을 선 건지 그냥 서 있는 건지 한참 헷갈린 적이 있습니다.

조심스럽게 뒤에 붙었더니 앞사람이 살짝 앞으로 움직이더군요. 붙지 말라는 신호였습니다.

한국 마트에서는 카트 앞바퀴가 앞사람 뒤꿈치에 닿을 듯 서 있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죠. 그 차이가 어디서 오는지 늘 궁금했습니다.

은행 창구 앞 바닥에 그어 둔 노란 선, 공항 보안검색대 입구의 대기선을 떠올려 보시면 됩니다.

알고 보면 그 선들은 사람들이 이미 지키고 있던 간격을 나중에 바닥에 옮겨 그린 것에 가깝습니다.

이 한 발짝에는 이름이 있습니다. 1960년대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이 정리한 프록세믹스, 우리말로 근접학이라는 개념입니다.

홀은 사람이 상대에 따라 쓰는 거리를 네 층으로 나눴습니다. 18인치, 그러니까 45센티미터 안쪽은 친밀 거리이고, 1.5피트에서 4피트 사이가 개인 거리, 그 바깥이 사회적 거리입니다.

줄에서 뒤로 물린 그 한 발짝은 결국 개인 거리를 지키려는 동작인 셈이죠.

이게 문화마다 얼마나 다른지 제대로 잰 연구가 있습니다. 2017년 크로스컬처럴 사이콜로지 저널에 실린 소로코프스카 연구팀의 42개국 조사로, 참가자가 8943명입니다.

평균을 보면 낯선 사람과는 135.1센티미터, 아는 사람과는 91.7센티미터, 가까운 사람과는 31.9센티미터를 편하게 느꼈습니다.

낯선 사람 기준으로 가장 멀리 떨어지는 나라는 루마니아로 140센티미터 안팎이었고, 가장 가까운 쪽은 아르헨티나로 80센티미터 정도였습니다.

같은 인간인데 나라에 따라 60센티미터가 왔다 갔다 한다는 게 저는 좀 놀라웠습니다.

연구팀이 찾아낸 환경 변수 중 유일하게 의미가 있었던 건 기온이었습니다. 연평균 기온이 높은 나라일수록 낯선 사람과 더 가까이 섰습니다.

반대로 가까운 사람과는 오히려 더 떨어져 있기를 원했다고 합니다. 더운 동네에서는 남한테 붙는 건 괜찮고 식구한테 붙는 건 싫다는 얘기가 되니, 읽으면서 한 번 웃었네요.

성별과 나이에서도 차이가 갈렸습니다. 여성은 낯선 사람과 더 먼 거리를 선호했고, 나이가 많을수록 지인이나 가까운 사람과도 거리를 두고 싶어 했습니다.

그런데 이 거리감은 예절 교육의 결과만은 아닙니다. 뇌에 담당 부위가 따로 있다는 쪽으로 증거가 모였거든요.

2009년 네이처 뉴로사이언스에 실린 칼텍 연구팀 보고가 유명합니다. 편도체가 양쪽 다 손상된 환자는 실험자와 34센티미터 거리에서도 전혀 불편해하지 않았습니다.

같은 상황에서 일반 참가자들이 편하다고 답한 거리는 그 두 배쯤이었죠. 건강한 사람은 누가 바짝 다가오면 편도체가 반응했습니다.

그러니까 줄에서 뒤통수에 숨결이 느껴질 때 올라오는 그 불쾌감은, 성격이 예민해서가 아니라 경보 장치가 울린 겁니다.

다만 미국 줄의 진짜 핵심은 거리보다 순서라고 봅니다. 이건 스탠리 밀그램 연구팀이 1986년에 줄 129개에 실제로 끼어들어 확인한 부분입니다.

끼어든 사람에게 말로 항의한 경우가 21.7퍼센트, 눈빛이나 손짓으로 표현한 경우가 14.7퍼센트였습니다. 소매를 잡아끌거나 밀어내는 등 손을 댄 경우도 10.1퍼센트였고요.

조건에 따라 편차는 컸습니다. 한 명이 슬쩍 끼어들면 54퍼센트의 줄에서 항의가 나왔지만, 두 명이 함께 끼어들자 91.3퍼센트까지 치솟았습니다.

반대로 끼어드는 자리 뒤에 일행을 미리 두 명 세워 두자 항의율이 5퍼센트로 주저앉았습니다. 항의는 정의감만이 아니라 손해를 본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뜻이죠.

실제로 끼어든 지점 뒤쪽 네 자리에 있던 사람의 18.2퍼센트가 항의한 반면, 앞쪽 두 자리에서는 8퍼센트만 반응했습니다.

이 숫자들을 붙여 놓고 보니 그림이 맞춰졌습니다. 한 발짝 떨어지는 건 무관심이 아니라 일종의 계약입니다.

나는 당신 몸에 닿을 만큼 다가가지 않겠다, 대신 당신도 내 순서를 건너뛰지 말라는 약속이죠.

먼저 온 사람이 먼저 받는다는 원칙은 이 나라에서 꽤 오래 다듬어진 규칙이고, 그 규칙이 버텨 주니 몸을 붙여 자리를 지킬 이유도 없어진 겁니다.

줄이란 건 아무도 감시하지 않아도 굴러가는 몇 안 되는 장치입니다. 경찰이 지켜서가 아니라, 뒤에 선 사람이 스스로 파수꾼 노릇을 하니까 유지되는 거죠.

그 파수꾼 역할을 하려면 서로 몸이 닿지 않을 정도의 여유가 필요합니다. 붙어 있으면 감시가 아니라 시비가 되기 쉬우니까요.

처음 이민 왔을 때는 이게 정 없어 보였습니다. 지금은 생각이 다릅니다.

줄 끝이 어디인지 모르겠으면 붙어 서서 눈치를 보는 대신 마지막 사람에게 물어보면 됩니다. 대부분 웃으면서 알려 줍니다.

반대로 바짝 붙어 서는 습관은 여기서 재촉으로 읽히기 쉽습니다. 본인은 자리를 지킨다고 한 행동인데 상대는 압박으로 받아들이니, 괜한 오해를 살 이유가 없죠.

저는 그 한 발짝이 마음에 듭니다. 비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 공간이 사실은 질서를 떠받치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