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홈커밍 행사가 마을 전체 축제로 번지는 이유 - Long Beach - 1

가을 어느 토요일 아침, 동네 큰길이 통째로 막히고 마칭밴드 소리가 울려 퍼진다. 접이식 의자를 든 사람들이 도로 양옆에 줄지어 앉아 플로트카와 치어리더 행렬을 기다린다. 아이 손을 잡고 나온 부모부터 지팡이 짚은 어르신까지, 동네 사람이 다 나온 것 같은 풍경이다.

처음 이 광경을 봤을 때는 그냥 학교 축제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동네 가게들이 아예 문을 일찍 닫고, 은퇴한 노인부터 갓 태어난 아기까지 다 나와 있는 거였다.

퍼레이드 전날 밤엔 보통 본파이어와 펩랠리가 열린다. 학생들은 일주일 내내 학교 색으로 옷을 맞춰 입는 스피릿 위크도 함께 챙긴다.

이게 바로 홈커밍이다. 원래는 1911년 미주리대학교에서 시작됐다는 게 정설인데, 당시 체육국장이던 체스터 브루어가 캔자스전을 앞두고 졸업생들을 다시 불러모으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응원 행사와 퍼레이드를 곁들였더니 첫 해에만 만 명 넘게 몰려왔다.

사실 이 문화의 뿌리를 더 거슬러 올라가면 대학보다 먼저 있었다. 1800년대 후반 뉴잉글랜드 마을들이 타지로 떠난 사람들을 다시 불러모으는 올드 홈 위크 행사를 열었는데, 이 흐름이 나중에 대학 홈커밍과 합쳐졌다고 본다.

물론 원조 논쟁은 있다. 베일러대는 자기네가 1909년에 먼저 시작했다고 주장하고, 일리노이대도 원조를 자처한다.

어느 쪽이 맞든, 이 행사가 고등학교로 내려온 건 1930년대부터다. 대학 캠퍼스 이벤트였던 게 동네 단위로 내려오면서 격식은 오히려 느슨해지고 소속감은 더 진해진 셈이다.

이 행사를 매년 굴러가게 하려면 의외로 손이 많이 간다. 도로를 몇 시간씩 막으려면 시청 허가가 필요하고, 학교와 경찰서가 미리 동선을 맞춰야 한다.

고등학교 홈커밍이 되니 참여하는 사람들 층이 완전히 달라진다. 플로트는 학부모회가 밤새워 만들고, 퍼레이드 통제는 동네 소방서가 맡고, 경기장 매점은 동네 식당이 돌아가며 채운다.

플로트도 매번 새로 만드는 게 아니라 지난해 쓴 골조를 재활용해서 겉만 새로 꾸미는 경우가 많다. 예산도 아끼고 쓰레기도 줄이는, 나름 실속 있는 방식이다.

경기 하프타임엔 홈커밍 킹과 퀸을 뽑아 왕관을 씌워주는 순서도 빠지지 않는다. 처음 봤을 땐 낯설었는데, 알고 보니 이것도 학교마다 이어져 온 나름의 오랜 의식이었다.

재미있는 건 이 행사가 사람들을 묶는 힘이 승패랑 별 상관이 없다는 점이다. 팀 성적이 시원찮아도 스탠드는 꽉 차고, 그냥 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박수를 받는다.

인종도 다르고 사는 형편도 다른 이웃들이 같은 잔디밭에 접이식 의자를 펴놓고 같은 팀을 응원하는 몇 시간, 나는 그 장면이 이 행사의 진짜 핵심이라고 본다. 평소엔 마주칠 일 없던 사람들이 그날만큼은 옆자리에 나란히 앉는다.

지난번에 이런 메시지 받았어요. 미국 온 지 얼마 안 된 가족이 처음 홈커밍 퍼레이드를 보러 나갔다가 동네 사람들이 먼저 인사를 건네줘서 그제야 여기가 내 동네구나 싶었다는 사연이었다.

동네 식당들도 이날만큼은 매출이 확실히 오른다고 다들 입을 모은다. 졸업생들이 오랜만에 돌아와 쓰는 돈이 적지 않다는 뜻이다.

이렇게까지 온 동네가 자기 시간과 돈을 들여 나서는 모습은 다른 곳에서는 흔히 못 본 것 같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다들 알아서 역할을 나눠 맡는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경기 자체보다 그 앞뒤로 벌어지는 마을의 리듬이 진짜라고 생각한다. 가게 문 닫고, 자원봉사자 나오고, 멀리 살던 졸업생이 굳이 비행기 타고 돌아오는 이 자발적인 움직임 말이다.

이런 결속력은 억지로 만든다고 되는 게 아니라서 더 부럽다. 여러분 동네에도 이렇게 다 같이 나오는 행사가 있나요, 여러분의 생각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