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왜 우리집은 다른 집이랑 다르냐고 물을 때 - Lansing - 1

미국에서 자란 한인 아이들이 어느 날 꼭 한 번은 던진다는 질문이 있어요. "왜 우리는 다른 집이랑 달라?"

현관에서 신발 벗는 것부터, 도시락 반찬 냄새, 토요일 아침마다 끌려가는 한국학교까지. 아이 입장에서는 증거가 차곡차곡 쌓이다가 어느 순간 팡 터지는 거죠.

친구 생일파티에 갔다가 돌아온 날, 자기 집 저녁상을 새삼스럽게 쳐다보는 표정이 있잖아요.

그 표정이 며칠 쌓이면 질문이 됩니다. 비교할 대상이 생겨야 질문도 생기는 거니까요.

재밌는 건 이 질문이 나오는 시점이 부모 예상보다 훨씬 빠르다는 점이에요.

발달심리 연구를 보면 생후 6개월 된 아기도 피부색을 단서로 사람을 분류합니다. 세 살이면 특정 인종 집단에 성격이나 특성을 갖다 붙이기 시작하고요.

그런데 2020년 Journal of Experimental Psychology: General에 실린 연구에서 미국 성인들에게 물어보니, 아이가 다섯 살은 돼야 이런 얘기를 꺼낼 만하다고 답했대요.

연구진은 어른들이 아이의 인지 능력을 한참 과소평가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좀 뜨끔했어요.

아이는 이미 몇 년째 조용히 관찰 중인데, 어른은 여전히 "아직 어려서 모른다"에 머물러 있는 셈이니까요.

그러니까 저 질문은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온 게 아니라, 한참 전부터 예약돼 있던 겁니다.

여기서 꼭 덧붙이고 싶은 사실이 하나 있어요.

Migration Policy Institute가 2024년 인구조사 자료로 분석한 결과, 미국 아동 네 명 중 한 명, 즉 26퍼센트가 이민자 부모를 두고 있습니다.

같은 분석에서 이민자 가정 아동의 85퍼센트는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들로 나타났어요.

다시 말해 "우리집만 이상해"의 그 우리집이, 통계적으로는 교실에서 꽤 흔한 집이라는 뜻이죠.

물론 아이한테 퍼센트를 읊어주면 눈빛이 순식간에 식는다는 게 함정입니다. 숫자는 어른 마음 달래는 용도로만 쓰는 게 좋아요.

한인 마켓 주차장에 한 번 서 있어 보면 그 26퍼센트가 숫자가 아니라 실물이라는 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이 정도면 "우리 같은 집"이 예외가 아니라 이미 하나의 살림 방식이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싶어요.

다름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자리는 아무래도 식탁이에요.

퓨리서치센터 자료를 보면 미국 내 한국계 가운데 5세 이상의 59퍼센트가 집에서 한국어를 씁니다.

그런데 영어 구사력으로 넘어가면 미국 태생 한국계는 94퍼센트가 능숙한 반면, 이민자는 50퍼센트예요.

한 식탁에 앉아 있어도 각자 편한 언어가 다를 수 있다는 얘기죠. 다름은 바깥에만 있는 게 아니라 이미 집 안에 들어와 앉아 있는 겁니다.

어릴 때 한 번 묻고 끝나는 것도 아니에요.

정체성 연구들을 보면 자기 뿌리에 대한 고민이 본격적으로 올라오는 시기는 청소년기고, 성인 초기쯤 가서야 어느 정도 정리가 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다섯 살의 질문은 예고편에 가깝고, 본편은 중고등학교 때 다시 옵니다.

그때는 질문 형태도 좀 달라져요. "왜 달라?"가 아니라 "나는 어느 쪽이야?"에 가깝죠.

다행히 최근 연구 흐름을 보면 두 문화를 모두 자기 것으로 끌어안은 아이들이 정신건강 측면에서 더 잘 버티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둘 중 하나를 고르게 만드는 게 아니라 둘 다 가져도 된다고 말해주는 쪽이 낫다는 뜻이겠죠.

그래서인지 저 질문 앞에서 어른들이 내놓는 대답도 대체로 세 갈래로 갈리더라고요.

첫째는 "원래 그런 거야"로 문을 닫는 방식. 제일 빠르고 편한데, 아이 머릿속 물음표는 그대로 남습니다.

둘째는 "우리가 더 낫다"로 순위를 매기는 방식이에요. 자부심은 생기지만 비교하는 버릇도 같이 자라죠.

셋째는 그냥 사실대로 설명하는 방식입니다. 누가 어디서 왔고, 이 집에 어떤 습관이 남았고, 그래서 지금 이 모양이 됐다고요.

저는 세 번째 쪽이 제일 낫다고 봐요. 아이가 원하는 게 위로가 아니라 설명일 때가 의외로 많거든요.

다름을 결핍의 문장으로 받으면 어쩐지 변명이 되고, 그냥 목록으로 받으면 정보가 되니까요.

솔직히 저도 어떤 날은 설명이 귀찮습니다. 그럴 땐 "이따 말해줄게"라고 미뤄놓고 슬쩍 도망가고 싶어져요.

사실 이 질문을 무서워하는 분들을 자주 봅니다. 답을 잘못하면 아이가 상처받을까 봐 미리 긴장하는 거예요.

그런데 질문이 나왔다는 건 아직 나한테 물어볼 마음이 남아 있다는 뜻이잖아요.

진짜 무서운 건 아이가 다 파악하고 조용해지는 쪽이지, 시끄럽게 묻는 쪽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러니 저는 저 질문이 나오면 살짝 반가워하는 쪽을 택하겠습니다.

판다처럼 뒤뚱거리다 넘어지더라도, 끝까지 같이 이야기해보는 편이 훨씬 낫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