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리다 주 깃발만 보면 하얀 바탕 위에 큼지막하게 그려진 빨간 X자, 되게 단순한데 가까이 보면 가운데 주 seal 안에 세미놀족 여인이 햇빛 아래서 뭔가 평온하게 서 있고, 뒤에는 야자수랑 보트, 바다, 황금빛 태양까지 다 들어가 있어요.

특히 그 빨간 X자, 그게 처음엔 그냥 남부 느낌인가? 영국풍인가? 하고 넘겼는데 알고 보니 스페인 식민지 시절 쓰던 '버건디 십자가'에서 온 거라더라고요. 예전에 플로리다 땅이 스페인 손에 있었던 시절이 있으니 남아 있는 흔적이죠.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보는 그 깃발은 단순히 그림이 예쁘다 예쁘지 않다의 문제가 아니라 이 동네가 걸어온 시간과 역사, 문화 섞임이 그대로 박혀 있는 상징이었던 거예요.

원래 플로리다 깃발은 그냥 하얀 바탕에 주 seal 하나 딱 박혀 있는, 정말 말 그대로 '심심함의 정수'였대요. 멀리서 보면 거의 항복기처럼 보여서 당시 주지사가 "이건 아무래도 아닌데..." 하고 빨간 대각선 십자가를 넣자고 했다나 뭐라나. 그래서 1900년에 투표를 해서 지금 모양으로 확정. 그러니 이 빨간 X는 단순 장식이 아니라 '밋밋해서 못 견디겠다'는 시대적 취향과, 스페인 식민지 흔적이 잘 섞인 결과물인 거죠.

그러다 보니 어떤 사람들은 남부연합 느낌 난다고도 하는데, 사실 디자인 생김새가 약간 비슷하긴 하니까 그런 생각 드는 것도 자연스러운 것 같아요. 남부 문화와 역사가 남아 있는 지역이라 그런 뉘앙스가 더 크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나도 첨엔 딱 그 느낌이었어요. "어? 남부연합기 같기도 하고..." 그런데 알고 보니 뿌리는 스페인이라니, 참 이 동네가 복잡하게 살아온 거 느껴지죠.


마이애미 살면서 플로리다 주기 볼 때마다 참 묘한 생각이 드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에요.

플로리다라는 주 자체가 한 곳만 보고 판단하기 참 어려워요. 마이애미, 올랜도, 탬파, 포트로더데일, 키웨스트... 도시마다 분위기가 다 딴판이에요. 올랜도는 테마파크 중심이라 가족 여행 느낌, 탬파는 도시 감성에 바다 냄새 살짝, 포트로더데일은 보트 끌고 다니는 부자들이 많은 동네라 은근 럭셔리, 키웨스트는 그냥 속도감 없는 세상. 다 같은 플로리다인데 표정이 다 달라요.

그러다 허리케인 계절 오면 갑자기 또 현실이 딱 눈앞. 발전기 준비하고, 생수 사고, 창문 보강하고... 동네 사람들이 태풍 준비를 거의 연례 행사처럼 해요. 처음엔 나도 무섭고 울렁거렸는데 몇 번 겪다 보니 "아, 또 올 시간이구나" 하고 냉장고 정리부터 하게 되더라고요. 이게 바로 플로리다예요. 로맨스와 현실이 한 장면에 섞여 있는 곳이죠.

그래서 플로리다 깃발의 빨간 X를 볼 때마다 나는 조금 웃음이 나요.

한 줄로 설명되기 어려운 것들이 뒤섞인 모양이라 그게 딱 이 주랑 닮았거든요. 스페인 흔적도 있고 남부의 역사도 있고, 밋밋하면 못 참는 미국 특유의 '뭔가 넣자!' 정신도 담겨 있고, 바다와 태양 아래 적당히 느슨하면서도 어딘가 투박하고 불완전한 매력까지.

그래서 나는 이 깃발이 더 좋게 느껴져요. 무심한 듯 강렬하고, 간단한 듯 복잡한거죠.

저는 이 깃발이 엄청나게 푸르른 이곳 하늘을 배경으로 펄럭아는걸 볼 때마다 속으로 말해요. "그래, 딱 플로리다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