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월 첫 주가 지나면 동네 약국과 마트 풍경이 조금씩 달라집니다. 아직 추수감사절도 오기 전인데, 입구 쪽에 홀리데이 카드 진열대가 슬그머니 자리를 잡기 시작하거든요.
미국에 와서 처음 받은 홀리데이 카드는 솔직히 좀 당황스러웠습니다. 앞면 가득 남의 집 아이들이 빨간 스웨터를 맞춰 입고 웃고 있었으니까요.
한국식 연하장에 익숙한 눈에는 그게 일종의 자랑처럼 보였습니다. 우리 가족 이렇게 잘 지낸다는 광고 같은 느낌 말이죠.
그런데 몇 해 겨울을 보내고 나니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그 사진 한 장이 생각보다 훨씬 많은 말을 대신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거든요.
카드 문화의 시작은 미국이 아니라 영국입니다. 1843년 런던의 공무원 헨리 콜이 화가 존 콜콧 호슬리에게 그림을 부탁해 만든 카드가 최초의 상업용 크리스마스카드로 흔히 꼽힙니다.
콜의 1843년 12월 17일 일기에는 호슬리가 저녁에 카드 도안을 들고 왔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편지를 일일이 손으로 쓰기 버거웠던 사람이 서명만 하면 되는 카드를 고안한 셈이죠.
그때 찍은 카드가 1,000장이었다고 하고, 가운데 그림은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잔을 드는 장면이었습니다. 처음부터 카드의 주인공이 가족이었다는 점이 저는 꽤 흥미로웠습니다.
미국으로 건너온 건 조금 뒤의 일입니다. 독일 출신으로 보스턴에 자리 잡은 인쇄업자 루이스 프랭이 1873년 영국 시장용 카드를 만들었고, 이듬해인 1874년부터 미국에서도 팔기 시작했습니다.
프랭은 1880년부터 디자인 공모전까지 열었는데, 심사위원 명단에 루이스 컴포트 티파니 같은 이름이 있었다고 하니 꽤 진지한 사업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미국 크리스마스카드의 아버지로 불립니다.
사진이 카드로 들어온 계기는 기술이었습니다. 1902년 코닥이 뒷면에 엽서 양식이 인쇄된 인화지를 내놓으면서, 집에서 찍은 사진을 바로 엽서로 부칠 수 있게 됐습니다.
당시 남은 엽서들을 보면 트리 앞에 선 아이들, 눈 덮인 집 앞에 모인 가족 사진이 적지 않습니다. 백 년 전 사람들도 결국 같은 걸 보내고 싶어 했던 거죠.
20세기 후반에는 인쇄 기술이 좋아지면서 대량으로 찍는 카드에도 가족 이름과 사진, 한 해 소식을 넣을 수 있게 됐습니다. 우리가 아는 지금의 포토카드가 이때 자리를 잡았습니다.
제가 이 문화를 다시 보게 된 건 인류학자 미카엘라 디 레오나르도의 개념을 접하고 나서였습니다. 그는 멀리 흩어진 친척과 지인의 끈을 이어 주는 일을 친족 노동, 즉 kinship work라고 불렀습니다.
그의 1987년 연구에는 카드 보내기를 그만둔 뒤 친척들과 멀어질까 봐 죄책감을 느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카드가 단순한 인사가 아니라 관계를 관리하는 도구였다는 얘기죠.
이렇게 보면 미국 가족사진 카드는 자랑이라기보다 출석 체크에 가깝습니다. 우리 아직 여기 있고, 아이들이 이만큼 컸고, 당신을 잊지 않았다는 신호입니다.
땅이 넓은 나라라 대학 친구는 서부에, 옛 직장 동료는 남부에 흩어져 사는 일이 흔합니다. 일 년에 한 번 우편함에 도착하는 사진이 그 사람의 근황을 알려주는 거의 유일한 창구가 되기도 합니다.
숫자로 봐도 이 문화는 아직 건재합니다. 미국 그리팅카드협회 추정으로는 크리스마스카드가 해마다 16억 장 팔린다고 하니, 문자와 SNS 시대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입니다.
물론 비용은 만만치 않습니다. 올해 7월 12일부터 포에버 스탬프가 78센트에서 82센트로 올랐거든요.
카드 50장만 보내도 우표값이 41달러입니다. 사진 카드 인쇄비까지 더하면 한 가정의 연말 지출로는 결코 가볍지 않죠.
그래도 이웃들은 꾸준히 보냅니다. 비싸다고 투덜대면서도 봉투에 주소를 손으로 적는 모습을 보면, 그 수고 자체가 메시지의 일부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인 가정 입장에서는 고민도 생깁니다. 아이들 사진을 담자니 쑥스럽고, 한국 가족에게 보내자니 미국식 카드가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으니까요.
제 주변을 보면 절충안을 찾는 집이 많습니다. 미국 이웃에게는 영어 포토카드를, 한국 어른들께는 같은 사진에 한글로 새해 인사를 적어 보내는 식입니다.
종교가 다른 이웃이 많다면 메리 크리스마스 대신 해피 홀리데이즈나 시즌스 그리팅스를 쓰는 것도 요즘은 자연스러운 배려로 받아들여집니다. 어느 쪽이 맞다기보다 받는 사람을 떠올리면 답이 나옵니다.
사진을 꼭 스튜디오에서 찍을 필요도 없습니다. 오히려 가을 공원에서 휴대폰으로 찍은, 아이 하나는 딴 데를 보고 있는 사진이 받는 쪽에서는 더 반갑더라고요.
한 줄 손글씨도 꼭 넣길 권합니다. 인쇄된 문구만 있는 카드와 이름 한 번 불러 준 카드는 받는 사람의 표정부터 다릅니다.
일정도 미리 챙겨야 합니다. 우체국이 권하는 올해 국내 일반우편 마감은 12월 17일이니, 크리스마스 전에 받게 하려면 늦어도 그 주 초에는 부치는 게 안전합니다.
저는 올해도 카드를 보낼 생각입니다. 화려한 사진은 아니어도, 일 년 동안 연락 못 한 사람들에게 우리 잘 있다고 말하는 가장 조용한 방법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180년 전 한 바쁜 공무원이 서명 한 줄로 마음을 전하려 했던 것처럼, 결국 카드의 진심은 기억하고 있다는 그 한마디에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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