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를 보다가 X 맨과 스타트랙 함장으로 유명한 패트릭 스튜어트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향년 86세.
그런데 한국 뉴스를 보니 이번에는 최불암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겁니다. 향년 87세.
참 기분이 묘하더군요. 제가 좋아하던 두 배우가 거의 같은시간대에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최불암 선생님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혹시 최불암 시리즈 기억하십니까?
기억하신다면 당신은 최소 40대 중반 이상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1990년대 한국에서는 최불암 시리즈라는 유머가 엄청나게 유행했습니다.
학교에서도 하고, 군대에서도 하고, 술자리에서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별로 웃기지도 않은 말장난인데 그때는 사람들이 배를 잡고 웃었습니다.
최불암 선생님 특유의 진지한 표정과 느릿느릿한 말투를 흉내 내면서 이야기하는 게 핵심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수사반장에서는 범죄자를 잡는 형사였고, 전원일기에서는 근엄한 집안 어른이었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한국에서 수사반장을 본기억이 조금 납니다. 그 시절에는 텔레비전 채널도 몇 개 없었습니다.
수사반장 시작할 시간이 되면 집에서 다 같이 봤습니다. 오프닝 음악이 나오면 무슨 큰 사건이라도 벌어질 것처럼 긴장했던 기억이 납니다.
최불암 선생님이 연기했던 박영한 반장은 요즘 미국 범죄 드라마에 나오는 형사들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총을 마구 쏘거나 자동차 추격전을 벌이는 형사가 절대로 아니었습니다.
범인을 앞에 앉혀 놓고 이야기를 듣고, 사람 사는 사정을 이해하려는 형사였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그냥 재미있어서 봤는데, 지금 생각하면 상당히 잘 만든 드라마였습니다.
그리고 전원일기. 이 드라마는 정말 오래 했습니다. 1980년에 시작해서 2002년까지 방영했으니까요.
제가 한국에서 살던 시절의 기억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드라마입니다. 뭐 어쩌다 보긴 했지만 유투브로 보면 울컥합니다.
최불암 선생님이 연기한 김 회장은 우리 아버지 세대의 전형적인 모습이었습니다.
말도 별로 없고, 웃지도 않고, 집안에 무슨 일이 생기면 묵직하게 한마디 하는 사람.
전원일기에는 요즘 드라마처럼 재벌이 나오지도 않고, 누가 복수한다고 난리를 치지도 않았습니다.
농사짓고, 밥 먹고, 자식들 걱정하고, 동네 사람들과 싸웠다가 화해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지금 넷플릭스에 그런 드라마를 만들어 놓으면 사람들이 얼마나 볼지는 모르겠습니다.

세월이 흘러 미국에 와서 살다 보니 스타트렉 넥스트 제너레이션을 보면서 좋아하게 된 배우가 패트릭 스튜어트였습니다.
일단 함장 스타일이 문제가 생기면 일단 대화부터 했습니다. 부하들의 의견을 듣고, 상황을 판단하고, 마지막에는 자신이 책임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목소리. 패트릭 스튜어트가 낮은 목소리로 "Make it so".
나중에 엑스맨을 보면서는 또 반가웠습니다.
이번에는 휠체어를 탄 찰스 자비에 교수였습니다.
머리카락 하나 없는 노인이 초능력을 가진 젊은이들을 가르치고 보호하는 역할이었는데, 저는 그 배역도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매그니토와 대립하는 장면들도 기억납니다. 한 사람은 힘으로 세상을 바꾸려 하고, 다른 사람은 인간과 돌연변이가 함께 살아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 모두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엑스맨은 단순히 초능력자들이 싸우는 영화 이상으로 재미있었습니다.
특히 2017년에 나온 로건은 보고 나서 마음이 좀 그랬습니다.
그렇게 강력했던 자비에 교수가 늙고 병들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모습으로 나오거든요.
영화 속 이야기지만 패트릭 스튜어트 본인도 나이가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느껴졌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그저 멋있다고 생각했던 배우가 어느 순간 노인이 되어 있는 겁니다.
약먹은거 맞냐고 하니까 어린애처럼 혓바닥을 내밀던 짠하던 연기가 나오더군요.
이번 사망 소식을 접하면서 그 영화가 다시 생각났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최불암 선생님과 패트릭 스튜어트가 제게는 비슷한 이미지로 남아 있다는 점입니다.
한 사람은 한국 농촌의 집안 어른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우주선 함장이었습니다.
김 회장은 가족들을 이끌었고, 피카드 함장은 엔터프라이즈호 승무원들을 이끌었습니다.
요즘 제가 사는 시카고에서도 한국 드라마를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유튜브에 들어가면 옛날 수사반장도 나오고 전원일기 장면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스타트렉 역시 마음만 먹으면 다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예전 작품을 다시 보면 배우보다 그 시절의 제 모습이 먼저 생각납니다.
그때는 최불암 선생님도, 패트릭 스튜어트도 영원히 텔레비전에 나올 것 같았습니다.
배우들이 늙는다는 생각도 별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제가 나이를 먹었고, 그분들은 80대 중후반이 되어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람이 나이를 먹는다는 게 이런 것 같습니다.
어릴 때 좋아했던 가수와 배우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그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내 인생의 한 시절도 조금씩 멀어지는 기분이 듭니다.
두 분 모두 충분히 오래 사셨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86세와 87세면 짧은 인생은 아니지요.
그래도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하와이순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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