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제가 매일 듣는 노래가 임영웅의 '이제 나만 믿어요'라는 노래인데, 한국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을 거예요.
예전에는 임영웅이 왜 그렇게 인기가 많은지 잘 몰랐어요. 한국 친구들이 콘서트 표 구하기 어렵다고 난리일 때도 그냥 노래 잘하는 젊은 가수인가 보다 했거든요.
그런데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이상하네요.
같은 노래도 내가 어떤 처지에 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들리더라고요.
덴버는 벌써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해졌어요. 동네 나무들도 이제 낙엽이 떨어지면서 노랗게 물들었어요.
아침에 커피를 들고 뒷마당에 나가면 찬 공기가 얼굴에 닿는데, 그럴 때면 괜히 마음이 허전해집니다.
하나뿐인 딸이 작년에 결혼했어요. 사위는 덴버에서 근무한던 미 공군 대위인데 결혼하고 바로 일본으로 발령을 받아 둘이 떠났습니다.
딸이 좋은 사람 만나 잘 살고 있으니 감사한 일이죠. 일본 환율이 좋아서 딸이 생활비 걱정없다고 좋아하고 사위도 성실하고 딸에게 잘해줘서 마음에 들어요.
그런데 하나뿐인 딸이 떠나고 나니까 집이 너무 조용해졌어요.
예전에는 딸이랑 한인마트에 장 보러 가기도 하고, 주말이면 체리크릭에 가서 커피도 마시고 쇼핑도 했거든요.
별것 아닌 일들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 시간이 참 좋았어요.
딸이 쓰던 방은 아직 그대로예요. 책상 위에는 대학 다닐 때 찍은 사진이 있고 옷장에는 두고 간 옷도 몇 벌 있어요.
가끔 그 방에 들어가 괜히 창문을 열었다 닫고 나옵니다.
남편은 교회 일에 아주 열심이에요. 주중에도 모임이 있고 주말에는 거의 교회에서 살다시피 합니다.
좋은 일 하는 사람이니 뭐라고 할 수도 없죠. 술 마시고 돌아다니는 것도 아니고 교회 봉사하는 건데요.
그런데 가끔은 서운해요 ㅎㅎ.
교회 사람들하고는 그렇게 오래 이야기하면서 나하고는 언제 마지막으로 마주 앉아 커피 한 잔 마셨을까 싶거든요.
일요일 오후에 남편은 교회 사람들과 식사하고 늦게 들어오고, 저는 혼자 집에 돌아와 소파에 앉아 있을 때가 있어요.
창밖으로는 덴버 특유의 파란 하늘이 펼쳐져 있고 햇살도 좋은데, 이상하게 마음은 텅 빈 것 같아요.
그러다가 우연히 유튜브에서 임영웅 노래를 듣게 됐어요.
처음에는 목소리가 참 좋네 싶었어요. 그런데 몇 번 듣다 보니 노래가 마음속으로 들어오더라고요.
'이제 나만 믿어요.'
이 제목이 왜 그렇게 뭉클한지 모르겠어요.
남편이 없는 것도 아니고 딸이 연락을 안 하는 것도 아니에요.
그냥 각자 자기 인생이 생긴 거죠.
딸에게는 남편과 새로운 가정이 있고, 제 남편에게는 교회라는 중요한 세상이 있어요.
그런데 저는 생각해 보니까 지난 20년 넘게 누구 엄마, 누구 아내로 살아왔더라고요.
딸 학교 문제부터 대학 진학, 집안일, 남편 뒷바라지까지 늘 해야 할 일이 있었어요.
그때는 혼자만의 시간이 그렇게 갖고 싶었는데 막상 시간이 생기니까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며칠 전에는 차를 몰고 워싱턴파크에 갔어요. 호수 주변을 걷는데 조깅하는 사람도 많고 강아지 데리고 산책하는 부부들도 보이더라고요.
벤치에 앉아 한참 사람들을 구경하다가 이어폰으로 그 노래를 들었어요. 갑자기 눈물이 나더군요.
슬픈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냥 눈물이 났어요.
일본에 간 딸이 보고 싶어서인지, 남편한테 서운해서인지, 아니면 지나간 제 젊은 시절이 아쉬워서인지 저도 모르겠어요.
친구한테 이 이야기를 했더니 웃으면서 그러더군요.
"너 이제 임영웅 좋아할 나이가 된 거야. 너 거기서 더 심해지면 BTS 아미가 될 수 도 있어"
저도 한참 웃었어요. 아들뻘인 BTS 팬이 된다니 ㅎㅎ 이제 30대 중반인 임영웅도 저보다 한참 어리기는 하지만요
요즘은 남편에게도 가끔 같이 산책하자고 이야기하고, 혼자 할 수 있는 취미도 찾아보고 있어요.
덴버에는 갈 곳도 많고 할 일도 많은데 그동안 너무 집 안에만 있었던 것 같아요.
딸이 떠난 빈자리를 무조건 누군가로 채울 필요는 없겠죠. 이제는 저 자신을 위해서도 조금 살아보려고요.
그래도 가끔은 누군가 저한테도 말해줬으면 좋겠어요.
이제 나만 믿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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