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주 회사 휴게실에서 동료 하나가 한숨을 쉬더군요. 올해 FSA에 넣어둔 돈이 아직 꽤 남았는데, 연말에 그냥 사라질까 봐 걱정이라는 겁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그럼 이번 주말에 안경부터 맞추지 그래? 그 친구 표정이 꼭 냉장고 구석에서 잊고 있던 갈비를 발견한 사람 같았습니다.
FSA는 월급에서 세금 떼기 전 돈을 덜어 의료비에 쓰게 해주는 계좌입니다. 문제는 이 돈이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흔히 use it or lose it이라고들 하죠. 플랜 연도 안에 쓰지 않은 돈은 원칙적으로 회사 쪽으로 돌아가고, 내 손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물론 숨구멍은 있습니다. IRS 규정상 회사는 이월(carryover)이나 유예기간(grace period) 중 하나를 고를 수 있습니다.
둘 다 주는 건 안 됩니다. IRS Publication 969에도 이월을 채택한 플랜은 유예기간을 함께 둘 수 없다고 적혀 있습니다.
유예기간은 플랜 연도가 끝난 뒤 최대 2개월 반입니다. 달력 기준 플랜이라면 보통 다음 해 3월 15일까지 쓸 수 있다는 얘기죠.
이월은 남은 돈 일부를 다음 해로 넘겨주는 방식인데, 2026년 플랜 연도에서 넘길 수 있는 최대 금액은 680달러입니다. 작년 기준 660달러에서 조금 올랐습니다.
여기서 함정이 하나 있습니다. 680달러는 법이 허용하는 상한일 뿐이고, 회사가 더 낮게 정하거나 아예 이월을 안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제일 먼저 할 일은 쇼핑이 아니라 확인입니다. 우리 회사 플랜이 이월인지, 유예기간인지, 둘 다 없는지부터 HR이나 플랜 운영사 웹사이트에서 보셔야 합니다.
참고로 2026년 의료 FSA 납입 한도는 3,400달러입니다. 2025년 3,300달러에서 100달러 올랐고, IRS Rev. Proc. 2025-32로 정해졌습니다.
한도를 꽉 채운 분이라면 남은 잔액도 만만치 않을 겁니다. 그래서 10월 말이 딱 좋은 타이밍입니다. 12월에 몰아서 쓰려면 예약도 안 잡히고 마음만 급해지거든요.
첫 번째 추천은 눈입니다. 안과 검진, 처방 안경, 콘택트렌즈는 FSA로 쓸 수 있는 대표 항목입니다.
처방이 있으면 도수 넣은 선글라스나 보안경도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처럼 신문 볼 때 팔을 자꾸 뻗게 되는 나이라면 돋보기도 챙길 만하죠.
두 번째는 치과입니다. 보험이 다 커버 못 하는 본인부담금이나 미뤄둔 치료가 있다면 연말 전에 예약을 잡는 게 낫습니다.
세 번째는 약국입니다. 2020년 CARES Act 이후로 처방전 없이 사는 일반의약품도 FSA로 살 수 있게 됐습니다.
진통제, 알레르기약, 감기약, 소화제 같은 상비약이 여기에 들어갑니다. 생리대나 탐폰 같은 여성용품도 같은 법으로 대상이 됐고요.
구급상자를 한번 열어보시길 권합니다. 유통기한 지난 연고와 반쯤 남은 반창고가 나란히 누워 있다면, 그게 바로 FSA가 쓰일 자리입니다.
선크림은 조금 조심스럽습니다. 많은 플랜이 일정 조건의 자외선 차단제를 인정하지만, 기준은 플랜마다 다르니 구매 전에 운영사 목록을 한번 보시는 게 안전합니다.
반대로 안 되는 것도 분명히 있습니다. IRS Publication 502는 치약, 일반 세면용품, 화장품 같은 것은 의료비로 넣을 수 없다고 봅니다.
헬스장 회원권도 보통은 안 됩니다. 운동이 건강에 좋은 건 누구나 아는데 세법은 그걸 의료비로 쳐주지 않으니, 이것도 미국식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입니다.
한국 같았으면 연말정산 영수증 챙기듯 1년 내내 모았을 텐데, 여기서는 영수증보다 날짜가 더 중요합니다. 언제 샀는지, 언제 진료받았는지가 기준이니까요.
카드로 결제가 안 됐거나 현금으로 냈다면 영수증을 꼭 남겨두셔야 합니다. 나중에 운영사가 증빙을 요구하는 일이 꽤 흔합니다.
여기서 왜 이렇게까지 하냐고 물으실 수 있습니다. FSA 돈은 소득세에 더해 소셜시큐리티와 메디케어 세금, 합쳐 7.65%까지 피해 간 돈이기 때문입니다.
그 돈을 그냥 날리면 세금 아끼려다 원금을 통째로 버리는 셈입니다. 할인 쿠폰 아끼려고 마트까지 기름 넣고 갔다가 쿠폰을 집에 두고 온 꼴이죠.
그렇다고 쓸데없는 걸 쟁여두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1년 동안 어차피 쓸 상비약, 미뤄둔 안경과 치과 정도면 충분합니다.
그리고 다음 해 선택 금액은 올해 쓴 내역을 보고 정하시길 바랍니다. 매년 남는 분이라면 금액을 조금 줄이는 게 오히려 이득입니다.
저라면 이번 주에 플랜 규정부터 확인하고, 11월 안에 안과와 치과 예약을 잡겠습니다. 남는 돈은 12월 초에 약국에서 정리하고요.
세금을 아끼는 계좌가 제일 무서운 순간은 연말 마감일입니다. 날짜가 남았을 때 쓰는 사람이 결국 웃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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