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3년에 개봉한 영화 애정의 조건(Terms of Endearment)은 시간이 흘러도 꾸준히 회자되는 할리우드 명작 가운데 하나예요.
솔직히 처음에는 '그냥 가족 드라마 아닐까?' 하는 마음으로 봤는데, 영화가 끝날 무렵에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라고요. 화려한 액션도, 엄청난 반전도 없는데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정말 대단한 작품이에요.
사실 이 영화는 원제인 Terms of Endearment를 직역하면 '애정의 표현', '사랑을 담아 부르는 말', '다정한 호칭' 정도의 의미입니다.
영어권에서는 연인이나 부모가 "Honey", "Sweetheart", "Darling"처럼 상대를 다정하게 부를 때 사용하는 표현을 뜻하는데, 한국어에는 정확히 대응되는 단어가 없습니다.
그래서 국내에서는 '애정의 조건'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했지만, 이 제목만 보면 마치 "사랑에는 이런 조건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로맨스 영화처럼 오해하기 쉽습니다. 실제로 영화를 보기 전에는 남녀의 사랑이나 연애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영화는 제임스 L. 브룩스 감독이 연출했고, 셜리 맥클레인, 데브라 윙어, 잭 니콜슨, 제프 다니엘스 등 당시 최고의 배우들이 출연했습니다.
특히 셜리 맥클레인이 연기한 오로라와 데브라 윙어가 연기한 딸 에마의 관계는 지금 봐도 너무 현실적이에요. 사랑하지만 상처를 주고, 미워하면서도 결국 가장 소중한 존재인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정말 섬세하게 그려냈습니다.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곳은 텍사스 휴스턴입니다.
영화 속에는 넓은 교외 주택과 당시 휴스턴의 거리 풍경, 레스토랑, 쇼핑가 등이 자연스럽게 등장하는데요. 요즘처럼 컴퓨터 그래픽으로 꾸민 도시가 아니라 실제 1970~80년대 휴스턴의 생활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어서, 오래된 미국 도시의 분위기를 보는 재미도 꽤 있습니다.
흥행 성적도 놀라웠어요. 제작비는 약 800만 달러였는데 북미에서만 약 1억800만 달러 이상을 벌어들이며 당시 기준으로 엄청난 흥행 성공을 거뒀습니다. 해외 수익까지 합치면 전 세계 약 1억6500만 달러를 기록했는데, 제작비의 20배가 넘는 수익을 올린 셈이었어요. 가족 드라마 장르가 블록버스터가 아니었음을 생각하면 정말 이례적인 성공이었습니다.

시상식에서도 압도적이었습니다. 제5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여우주연상, 남우조연상까지 무려 5개 부문을 석권했고, 데브라 윙어와 존 리스고 등 여러 배우들이 추가로 후보에 오르며 총 11개 부문 후보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야말로 그해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작품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영화가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이유는 상이나 흥행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아요. 이후 만들어진 수많은 가족영화와 모녀 드라마가 애정의 조건의 영향을 받았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파급력이 컸습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지나치게 이상적으로 그리지 않고, 서로 상처를 주고받으면서도 결국 가족이라는 끈으로 이어진다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보여준 작품이었거든요. 특히 마지막 병실 장면은 지금도 미국 영화사에서 가장 가슴 아픈 명장면 가운데 하나로 자주 언급됩니다.
잭 니콜슨이 연기한 전직 우주비행사 개릿 역시 영화의 분위기를 한층 따뜻하게 만들어 줍니다. 능청스러운 유머와 인간적인 매력을 보여주며 무거운 이야기 속에서도 웃음을 선사했고, 결국 이 역할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했습니다.
요즘 영화들은 화려한 CG와 빠른 전개로 관객을 사로잡지만, 애정의 조건은 사람의 감정만으로 두 시간이 넘는 시간을 이끌어 갑니다. 그래서 40년이 넘은 지금 다시 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고, 오히려 나이를 먹을수록 더 깊이 공감하게 되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앞에서 말한것처럼 '애정의 조건'이라는 한국 제목이 틀린 번역은 아니지만, 원래 담고 있던 따뜻한 뉘앙스와 정서는 완전히 전달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내용을 알고 다시 제목을 보면 비로소 의미가 이해되는, 제목보다 작품 자체가 훨씬 뛰어난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부모님이 계신 분, 자녀를 키우는 분이라면 한 번쯤은 꼭 봐야 할 영화입니다.
휴스턴이라는 도시를 배경으로 이렇게 오랫동안 전 세계 사람들의 기억에 남은 작품은 흔치 않으니까요. 한번 곡 보시기 바래요.


오렌지지휘관
calmbridge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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