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퇴를 준비하는 분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집값이나 세금 이야기는 정말 많이 합니다.
그런데 정작 가장 중요한 질문은 잘 하지 않습니다.
"내가 75살이 되었을 때도 이 동네에서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생각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매일 아침 샌안토니오의 브래큰리지 파크 산책로를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은퇴한 부부들이 함께 걷고, 벤치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같은 시간에 만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 흔합니다. 화려한 관광지는 아니지만, 이런 평범한 일상이 오히려 은퇴 생활에는 큰 자산이 됩니다.
한국 음식으로 비유하면 샌안토니오는 자극적인 맛집이라기보다 오래 먹어도 질리지 않는 집밥 같은 도시입니다. 특별히 화려하지는 않지만 생활하기 편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장점이 더 보이는 곳입니다.
우선 기후가 시니어들에게 상당히 유리한 편입니다. 겨울에는 영하로 떨어지는 날이 많지 않고 눈도 거의 오지 않습니다. 관절이 좋지 않거나 추위에 민감한 분들에게는 이 점이 생각보다 큰 장점입니다.
여름은 덥습니다.하지만 미국은 대부분의 주택과 쇼핑몰, 병원, 식당, 공공시설에 냉방이 잘 갖춰져 있어 실내 생활은 크게 불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봄과 가을에는 공원 산책이나 골프, 정원 가꾸기 같은 야외 활동을 즐기기에 좋은 날씨가 이어집니다.
생활비도 텍사스 대도시 가운데서는 비교적 부담이 적은 편입니다. 텍사스는 주 소득세가 없기 때문에 소셜시큐리티 연금이나 연금소득에 대해 주정부 세금을 내지 않습니다.
재산세는 높은 편이지만 65세 이상 거주자는 홈스테드 공제와 일정 조건의 재산세 동결(Tax Freeze) 제도를 활용할 수 있어 장기 거주할수록 부담을 줄일 수 있습니다. 군 복무 경력이 있는 은퇴자에게는 추가적인 세금 혜택이 적용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의료 환경도 안정적입니다. 사우스 텍사스 메디컬 센터를 중심으로 대형 병원과 전문 클리닉이 집중되어 있어 전문의를 찾기가 비교적 쉽습니다. 고령층을 위한 심장내과, 정형외과, 암센터, 재활의학과도 잘 갖춰져 있어 나이가 들수록 의료 접근성이 좋아집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건강보다 더 무서운 것이 고립입니다.
미국에서는 배우자가 먼저 세상을 떠난 뒤 혼자 생활하는 시니어가 적지 않습니다.
자녀들은 다른 주로 이사 가고, 친구들은 하나둘 건강이 나빠지거나 멀어집니다. 그때 집이 아무리 크고 전망이 좋아도 대화할 사람이 없으면 그 집은 오히려 외로운 공간이 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은퇴 후에는 너무 한적한 곳만 찾는 것을 꼭 다시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산속 전망이 좋다고, 호수 옆이라 조용하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닙니다. 병원까지 40분, 마트까지 30분, 사람 만날 곳도 없는 지역은 60대에는 괜찮을지 몰라도 70대, 80대에는 부담으로 바뀔 가능성이 있습니다.
오히려 공원이 가깝고, 도서관이 있고, YMCA가 있고, 시니어센터가 있는 동네가 훨씬 오래 살기 좋은 경우가 많습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산책하면서 얼굴을 익히고, 운동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커피 한잔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환경이 삶의 만족도를 크게 높여줍니다.
샌안토니오에는 이런 환경이 비교적 잘 갖춰져 있습니다. 여러 시니어센터에서는 운동 프로그램과 취미활동, 점심 식사 서비스까지 운영하고 있으며, YMCA 역시 시니어 전용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제공합니다. 독립생활 커뮤니티와 어시스티드 리빙, CCRC 같은 은퇴 주거시설도 선택지가 많습니다.
은퇴를 앞두고 있다면 집값만 계산하지 말고 사람도 계산해 보셨으면 합니다.
앞으로 20년, 30년을 살 집이라면 "얼마나 조용한가"보다 "얼마나 사람을 자주 만날 수 있는가"를 먼저 보는 것이 좋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인간관계는 선택이 아니라 건강의 일부가 됩니다.
결국 좋은 은퇴 도시는 화려한 도시가 아니라, 혼자 있어도 혼자가 아닌 도시입니다. 매일 공원에서 같은 사람을 만나고, 병원 가는 길이 어렵지 않고, 필요하면 이웃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곳. 그런 도시가 진짜 오래 살기 좋은 도시입니다.
샌안토니오는 바로 그런 조건을 비교적 고르게 갖춘 곳입니다. 은퇴는 일을 그만두는 시기가 아니라, 사람과의 연결을 더 소중하게 만들어야 하는 시기입니다. 그래서 저는 은퇴 후에는 너무 고립된 곳보다는 사람들의 왕래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동네를 선택하는 것이 훨씬 현명한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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