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수상작, Harry and the Hendersons (1987) - Seattle - 1

50대 동년배들이라면 아마 제목은 가물가물해도 'Harry and the Hendersons' 비디오 자켓이나 명화특급 화면은 기억날 거요.

1987년작이니까, 우리 한창 젊고 푸르던 시절에 나온 영화지.

요즘 애들은 '빅풋'이니 뭐니 하면 마블 영화 CG 같은 것만 떠올리겠지만, 우리 때 감성은 또 그게 아니거든.

이 영화, 지금 다시 보면 참 투박해. 근데 그 투박함이 되려 사람 냄새가 풀풀 나서 눈물이 찔끔 난다니까.

요즘 영화들은 전부 컴퓨터 그래픽(CG)으로 번쩍번쩍 칠해놔서 눈은 즐거운데 통 마음이 안 가잖아?

근데 이 영화는 달라. 진짜 세트장 짓고, 사람이 직접 털옷 뒤집어쓰고 연기한 거라 그 아날로그 특유의 뜨끈뜨끈한 온기가 그대로 살아있어.

이야기는 참 단순해. 헨더슨네 가족이 캠핑 갔다가 집으로 오는 길에 차로 뭘 들이받았는데, 그게 알고 보니 전설 속의 괴물 '빅풋'이었던 거지.

죽은 줄 알고 차 지붕에 싣고 왔더니 이 양반이 집안에서 깨어나 버렸네?

이 덩치 큰 녀석한테 '해리'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같이 지내는데, 아이고 말도 마요.

덩치가 산만 하니까 문짝은 기본으로 부수고, 가구 작살내고, 냉장고 문 열어서 음식을 한 입에 털어 넣는데 아주 가관이야.

그런데 며칠 지내보니까 이 녀석이 겉만 우락부락하지, 속은 법 없이도 살 만큼 순둥이인 거지.

괴물 쫓아내는 영화가 아니라, 털 가죽 덮어쓴 새 식구랑 정들어가는 이야기라 보고 있으면 마음이 참 짠하기도 하고 오글거리기도 하고 그래 ㅎㅎ

아카데미 수상작, Harry and the Hendersons (1987) - Seattle - 2

1980년대 시애틀, 그리고 그 시절의 풍경

영화 배경이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 쪽인데, 비 부슬부슬 내리고 침엽수림 빽빽한 게 딱 빅풋 살기 좋게 생겼더라고. 실제로 그 동네는 지금도 빅풋 목격담으로 축제도 열고 기념품도 판다더만.

근데 내 눈에는 빅풋보다 그 시절 시애틀 풍경이 더 들어오더라고. 지금처럼 고층 빌딩 빽빽한 삭막한 도시가 아니라, 숲이랑 맞닿은 한적한 주택가 모습이 참 정겨워. 가장 감탄스러운 건 역시 '해리'의 표정 연기야. 요즘 세상이면 다 컴퓨터 마우스 딸깍여서 만들었겠지만, 이때는 특수분장 장인들이 실리콘이랑 털 붙여서 직접 만든 옷을 배우가 입고 뛰었단 말이지. 해리가 슬퍼할 때 눈빛, 기쁠 때 씨익 웃는 입 모양이 어찌나 자연스러운지 몰라.

알고 보니 이 영화가 그해 아카데미 분장상까지 받았다더라고. 1987년 기술력으로 그런 생동감을 만들어냈다는 게, 지금 봐도 혓바닥이 내둘러질 정도야. 장인정신이라는 게 바로 이런 거지.

여기에 아버지 역할로 나온 배우 존 리스고(John Lithgow)의 연기도 기가 막혀. 과장 없이 툭툭 던지는 코믹 연기도 좋고, 가족을 지키려는 든든한 가장의 모습이 딱 우리네 아버지들 보는 것 같아서 참 뭉클해지더라고.

제작비 1,600만 달러 들여서 전 세계에서 5,000만 달러 넘게 벌었다니 흥행도 꽤 대박 친 셈이지. 나중에는 TV 시리즈로도 나왔을 정도니까.

물론 요즘 눈 높은 젊은 친구들이 보면 짜임새도 엉성하고 유치하다고 할지도 몰라. 반전도 없고 화려한 액션도 없으니까. 하지만 화짜장처럼 자극적인 맛만 가득한 요즘 영화들 틈에서, 이 영화는 푹 끓인 사골국물 같은 맛이 나.

나이 먹을수록 자꾸 옛날 게 그리워지는 건 어쩔 수 없나 봐.

머리 복잡하고 세상살이 팍팍할 때, 이런 '구닥다리' 영화 한 편 틀어놓고 맥주 한 캔 들이키는 게 백번 위로가 된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