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에서 장사하다 보면 빚에 대한 생각이 한국에서 살 때하고 조금 달라지는 것 같아요.
한국에서는 빚이라고 하면 일단 빨리 갚아야 하는 것, 가능하면 없는 게 좋은 것이라는 생각부터 들잖아요.
그런데 미국에서 사업하는 사람들을 오래 보다 보니까 꼭 그렇지만은 않더라고요.
제가 아는 사람 중에 은행에서 Line of Credit을 무려 60만 달러 받은 사람이 있어요.
뉴저지 물류회사이고 월 매출이 5백만불 이하로 안떨어진다는 회사이긴 한데 아무리 그래도 한국 돈으로 생각하면 정신이 번쩍 드는 금액이죠.
처음 들었을 때 제가 물었어요. "아니 60만불 빌려서 그걸 어떻게 갚으려고?"
그 사람은 오히려 태연했어요. "갚으려고 빌리는 게 아니라 돈 벌려고 빌리는 거지."
처음에는 무슨 미국 사업가들이 좋아하는 멋있는 소리 하나 싶었어요.
그런데 몇 년 지나고 보니까 실제로 사업 규모가 거의 4배가 됐어요.
물론 60만 달러를 빌려서 신나게 쓴 게 아니에요. 이미 돌아가는 사업이 있었고 매출도 수입도 안정적 이었어요.
문제는 사업을 더 키우려면 돈이 선제적으로 먼저 필요했다는 거예요.
사람을 더 뽑아야 하고, 장비를 사고, 재고를 확보하고, 큰 계약을 따내려면 먼저 운영자금이 들어가야 했어요.
쉽게 말해서 10만 달러짜리 일을 따냈는데 그 일을 하기 위해 먼저 5만 달러를 써야 하는 상황이에요.
고객은 일을 끝낸 다음 30일, 60일 뒤에 돈을 주는데 직원은 "고객한테 돈 받으면 월급 주세요"라고 기다려주지 않잖아요.
여기서 Line of Credit이 힘을 발휘한 거예요.
필요할 때 10만 달러 꺼내서 쓰고 매출채권이 들어오면 갚아요.
또 큰 프로젝트가 들어오면 20만 달러를 사용하고 회수되면 다시 줄여놓아요.
그러니까 60만 달러라는 돈이 단순한 빚이 아니라 사업의 회전반경을 넓혀주는 도구가 된 거예요.
이걸 보고 나서 왜 미국에서 사업하는 사람들이 "Leverage"라는 말을 그렇게 많이 하는지 조금 이해가 됐어요.
내 돈 20만 달러밖에 없다고 20만 달러짜리 사업만 하는 게 아니라, 신용과 현금흐름을 이용해서 더 큰 일을 받아내는 거예요.
하지만 여기에는 아주 중요한 전제가 있어요. 돈을 빌렸다고 사업이 커지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60만 달러 빌려서 사무실 멋있게 꾸미고 좋은 차 사고 필요 없는 직원을 잔뜩 뽑으면 그건 레버리지가 아니라 그냥 60만 달러짜리 지출이예요.
반대로 이미 고객이 있고, 1달러를 투입했을 때 그 이상의 현금이 돌아오는 사업 구조가 확인돼 있다면 신용은 성장 속도를 크게 올릴 수 있어요.
제가 아는 사람도 바로 그 차이였어요. 돈이 없어서 망해가는 사업을 60만 달러로 살린 게 아니었어요.
이미 잘 돌아가는데 자본이 부족해서 더 큰 계약을 못 받던 사업에 돈을 집어넣은 거예요.
그랬더니 사람이 늘고, 처리할 수 있는 주문이 늘고, 매출이 커지고, 그 실적을 바탕으로 다시 더 큰 거래를 할 수 있게 됐어요.
그렇게 몇 번 회전하니까 사업 규모가 몇 년 사이 거의 4배가 되어버린 겁니다.
이게 잘되면 참 좋죠... 누가 모르나요. 문제는 반대로 돌아가기 시작하면 무섭다는 거예요.
매출은 안 나오는데 이자는 붙고, 거래처가 돈을 늦게 주고, 경기 나빠지면 레버리지가 목을 조르기 시작해요.
1-2년만에 쑥 올라가는 변동금리라면 이자 부담이 예상보다 커질 수도 있고요.
그래서 Line of Credit은 칼하고 비슷한 것 같아요.
요리사가 잡으면 훌륭한 도구인데 아무나 휘두르면 큰일 납니다.
60만 달러를 빌려 사업을 4배 키웠다는 결과만 보면 "나도 한번?"이라는 생각이 들 수 있어요.
하지만 정말 봐야 할 것은 60만 달러가 아닙니다.
그 돈을 어디에 넣었고, 얼마 만에 회수했고, 이자를 내고도 얼마가 남았는지가 핵심이에요.
결국 미국에서 사업하다 보면 빚에도 두 종류가 있다는 걸 배우게 돼요.
나를 먹여 살리는 빚이 있고, 내가 먹여 살려야 하는 빚이 있어요.
사업가는 그 둘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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