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역사상 가장 피비린내 나는 하루, 앤티텀 전투 - Hagerstown - 1

가을 밤공기가 확 차가워진 날, 달이 구름 사이로 들락날락하는 걸 한참 올려다봤습니다. 이맘때가 되면 꼭 생각나는 장소가 하나 있어요.

차로 금방 닿는 샤프스버그의 앤티텀 국립전장입니다. 낮에 가면 그냥 평화로운 옥수수밭과 언덕인데, 그 땅에 얽힌 하루를 알고 나면 풍경이 전혀 다르게 보입니다.

1862년 9월 17일, 이곳에서 남북전쟁의 앤티텀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미국 군사 역사에서 단 하루 동안 가장 많은 피를 흘린 날로 기록된 전투예요.

국립공원관리청(NPS) 자료에 따르면 이날 하루 북군과 남군을 합쳐 2만 2천 명이 넘는 병사가 죽거나 다치거나 실종됐습니다. 숫자를 처음 봤을 때 한동안 말이 안 나왔어요.

그 많은 사람이 해가 뜨고 지는 사이, 개울 주변 들판과 숲에서 쓰러졌다는 거죠. 한 번의 전투라기보다 한 도시가 통째로 사라진 느낌에 가깝습니다.

배경을 조금 짚어보면 이렇습니다. 로버트 E. 리 장군이 이끄는 남군 북버지니아군이 처음으로 북부 땅인 메릴랜드로 밀고 올라왔어요.

이를 막으려고 조지 매클렐런 장군의 북군 포토맥군이 앤티텀 개울 근처에서 맞섰습니다. 전투는 새벽부터 저녁까지 북쪽, 가운데, 남쪽 순서로 장소를 옮겨가며 이어졌어요.

아침 싸움은 밀러 농장의 옥수수밭과 웨스트 우즈, 그리고 하얀 작은 교회인 던커 교회 앞에서 벌어졌습니다. 옥수수밭은 몇 시간 동안 주인이 여러 번 바뀌었다고 해요.

한낮에는 가운데의 움푹 꺼진 농로에서 격전이 벌어졌습니다. 몇 시간 동안 양쪽 시신이 쌓이면서 이 길에는 블러디 레인, 피의 길이라는 이름이 붙었죠.

오후에는 남쪽 끝 돌다리에서 앰브로즈 번사이드 장군의 부대가 건너려고 애를 썼습니다. 지금은 번사이드 다리라고 부르는데, 사진으로 보면 작고 예쁜 다리라서 오히려 더 서늘합니다.

전술적으로 보면 승부가 깔끔하게 나지 않은 전투였어요. 그래도 리 장군은 결국 버지니아로 물러났고, 남군의 첫 북부 침공은 거기서 멈췄습니다.

이 결과가 큰 의미를 갖게 된 건 닷새 뒤였습니다. 링컨 대통령이 1862년 9월 22일 노예해방 예비선언을 발표했거든요.

링컨은 패전 직후에 발표하면 궁지에 몰린 정부의 몸부림처럼 보일까 봐, 북군이 어느 정도 성과를 낼 때까지 기다렸다고 합니다. 앤티텀이 바로 그 계기가 된 셈이에요.

전쟁의 성격 자체가 바뀐 순간이라고 봅니다. 연방을 지키는 싸움에서 노예제를 끝내는 싸움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갔으니까요.

한편 매클렐런 장군은 물러나는 남군을 끝까지 쫓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결국 그해 11월 링컨은 그를 지휘관 자리에서 해임했어요.

제가 이 전투에서 제일 오래 붙잡고 있던 이야기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클라라 바턴이에요.

바턴은 워싱턴에서 의료품을 실은 마차 몇 대를 끌고 와서 전투 당일 정오쯤 전장 북쪽에 도착했습니다. NPS 기록에는 군의관들이 붕대가 없어 옥수수 껍질로 상처를 감싸고 있었다고 적혀 있어요.

그녀는 의료품을 건네고, 부상병에게 물과 음식을 나르며 머리를 받쳐줬다고 합니다. 그 모습을 본 군의관이 그녀를 전장의 천사라고 불렀죠.

그리고 거의 스무 해 뒤인 1881년, 바턴은 미국 적십자를 세웠습니다. 피의 하루 한가운데서 그런 씨앗이 자랐다는 게 묘하게 위로가 되더라고요.

사진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알렉산더 가드너와 조수 제임스 깁슨이 전투가 끝나고 이틀 뒤인 9월 19일 현장에 도착해 사진을 찍었어요.

그 사진들은 그해 10월 뉴욕 브로드웨이에 있던 매슈 브래디의 갤러리에서 전시됐습니다. 전장에 쓰러진 시신을 담은 사진이 대중에게 공개된 첫 사례로 꼽혀요.

신문 기사로만 전쟁을 접하던 뉴욕 사람들이 그 사진을 보려고 갤러리로 몰려들었다고 합니다. 전쟁이 먼 곳의 영웅담이 아니라는 걸 처음으로 눈으로 본 거겠죠.

지금 전장에 가 보면 너무 조용해서 오히려 귀가 먹먹합니다. 바람이 옥수수 잎을 스치는 소리, 멀리서 들리는 새소리 정도가 전부예요.

이민자로 살면서 미국 역사를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대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 땅을 직접 걸어보면 그런 거리감이 금방 사라져요.

남과 북 어느 한쪽 편을 들기보다, 그날 쓰러진 수많은 이름 없는 젊은이들이 더 크게 다가옵니다. 이 나라가 지금 모습이 되기까지 치른 값이 어느 정도였는지 실감이 나요.

혹시 가 보실 분이라면 방문자 센터에서 먼저 전체 흐름을 보고, 옥수수밭에서 시작해 블러디 레인, 번사이드 다리 순으로 돌아보길 권합니다. 전투가 흘러간 순서 그대로라 이해가 훨씬 쉬워요.

저라면 해가 기울 무렵을 고르겠습니다. 낮게 깔린 빛 속에서 던커 교회의 하얀 벽을 보면 오래 마음에 남거든요.

오늘 밤 구름 사이로 올려다본 이 하늘이 그날 밤 전장 위에도 똑같이 펼쳐져 있었을 겁니다. 그 생각을 하면 조용히 고개가 숙여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