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밤에 잠이 안 와서 핸드폰으로 이것저것 검색하다가 문득 "한국전쟁 때 미군이랑 결혼한 여성들"이 궁금해졌다.
전쟁 신부, War Brides... 들어본 적은 있는데 깊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이야기는 단순한 러브스토리가 아니었다.
그건 아주 치열하고 슬픈, 그리고 어두은 미국역사의 조각이었다.
한국전쟁은 1950년부터 1953년까지였고, 그 당시 수많은 미군이 한반도에 파병됐다. 전쟁터였지만, 그 안에서도 사람들은 사랑을 했다.
특히 가난하고 혼란스러운 시대였기에, 많은 한국 여성들이 미군과 관계를 맺었고, 어떤 이들은 실제로 결혼까지 했다.
그 여성들을 '전쟁 신부(War Brides)'라고 부른다.
그런데 충격적인 사실 하나.
당시 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국제결혼', 정확히 말하면 '백인과 비백인 간의 결혼'이 불법이었다는 것.
심지어 백인 남성과 한국인 여성의 결혼도, 미국 본토로 돌아가면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도대체 왜?
왜 미국은 1967년까지 인종 간 결혼을 금지했을까?
찾아보니, 미국의 많은 주는 19세기부터 이른바 *"Anti-Miscegenation Law"*라는 법을 갖고 있었다.
백인이 다른 인종과 결혼하는 걸 법적으로 금지하는 조항이다.
흑인뿐 아니라 아시아인, 아메리카 원주민, 라틴계 등 '비백인' 모두가 대상이었다.
즉, 한국 여성도 포함됐다.
1967년까지도 무려 16개 주에서 이런 법이 유지되고 있었다고 하니, 우리가 상상하는 자유롭고 개방적인 미국은 꽤나 최근에야 만들어진 셈이다.
1967년 '러빙 대 버지니아(Loving v. Virginia)' 사건을 통해서야, 미국 대법원은 "인종 간 결혼 금지는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그게 20세기 후반의 일이라니 믿기지 않았다.
전쟁 신부로 미국에 간 한국 여성들의 삶은 어땠을까?
자료를 좀 더 찾아보니, 한국전쟁 당시, 전쟁 신부 수천 명이 입국했고 그 후 10만명에 이르는 한국신부들이 미국에 들어왔지만, 이들은 다른 소수 민족·이민자 집단과 크게 다르지 않은 차별을 겪었다고 한다.
2차대전 후 유럽 전쟁 신부들과 유사한 수준의 사회적 낙인과 편견을 경험한 것이다.
어떤 여성은 시골 마을에 떨어져서 단 한 명의 한국인도 없이 살아갔다고.
그래도 아이를 낳고, 식탁에 김치를 올리고, 꿋꿋하게 적응한 이들도 있었다.
중요한 사실은 한국 전쟁 신부들이 미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으며, 일부는 한국에 있는 가족들의 미국 이주를 위한 후원자 역할도 했습니다.
내가 본 한 인터뷰에서는, 한 할머니가 이렇게 말했다.
"사랑해서 따라갔어요. 근데 가서 알았죠. 그 사랑만으로는 참 많이 외롭다는 걸..."
이 말을 보고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사랑 하나만으로 낯선 땅에서 살아낸 그 여성들이 대단하게 느껴졌고, 그 시대에 '사랑은 정치였다'는 생각도 들었다.
국적과 피부색이 결혼의 조건이 되던 시절이 정말 존재했구나.
요즘은 국적도 인종도 별로 중요하지 않은 세상 같지만, 불과 60년 전만 해도 그게 결혼의 장벽이었다는 사실이 새삼 무겁게 다가온다.
한국전쟁 전쟁 신부들의 이야기는 우리 어머니 세대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권리가 얼마나 많은 이들의 고통 위에 쌓여있는지 알려주는 기록이기도 하다.
검색 하나로 만난 짧은 역사.
하지만 내게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연애하다가 ‘답장 늦다’고 삐지는 나는 참 평화 속에서 사는 인간이구나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