팰팍, 그러니까 뉴저지의 팔리세이즈 파크에서 두 딸을 키우며 살고 있다.
큰 애는 다섯 살, 작은 애는 세 살.
이 동네에선 유모차 밀고 다니는 엄마들을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친다.
다들 묵묵하게 아이와의 일상을 견뎌내고 있는 것 같아 이상하게 위로가 된다.
아이 둘을 키운다는 건, 하루 종일 작은 사람 둘과의 무한 전투를 치르는 것과 같다.
아침 여섯 시도 안 돼서 아이들이 깬다.
"배고파아!"
하루는 오트밀, 하루는 바나나, 하루는 밥을 달라 한다.
그러다 조금만 늦으면 떼쓰고 울고 싸운다.
그렇게 시작된 하루는 마치 끝도 없는 달리기 같다.
기저귀, 간식, 장난감 정리, 동화책 읽기, 낮잠 재우기, 어린이집 픽업, 점심 준비, 다시 청소…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숨이 턱턱 막힐 때가 많다.
그런 내게 하루 중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 있다.
바로 아이들 낮잠 시간이다.
세 살, 다섯 살.
이 둘은 아직도 낮잠을 잔다.
길어야 1시간 반, 짧으면 30분.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무슨 짓을 하냐고?
나도 함께 잔다.
그것도 아주 절실하게.
낮잠이 그냥 자는 낮잠이 아니다.
이건 내가 다시 살아나기 위한 재부팅이다.
아이들 울음에 반복적으로 깼던 밤, 허리를 굽히며 장난감을 줍느라 뻐근한 등,
끊임없이 "엄마, 엄마!"를 외치는 아이들의 목소리에 닳아버린 신경…
그 모든 것들이 낮잠 한 번으로는 완전히 회복되지 않지만,
잠깐의 낮잠이 나를 ‘엄마’가 아닌 한 명의 ‘나’로 되돌려주는 시간이 되어준다.
처음엔 낮잠 자는 걸 죄책감으로 여겼다.
"이 시간에 청소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밀린 설거지, 빨래, 장 보기도 해야 하는데…"
그런데 그런 생각으로 억지로 깨어있다가 지친 몸과 마음으로 오후를 버텨보니 더 힘들어지더라.
짜증도 늘고, 아이들에게 더 날카롭게 대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밤에 자기 전에 “오늘도 제대로 못 해줬다”는 자책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결심했다.
아이들이 자는 시간은, 나도 자는 시간이다.
설거지는 좀 밀려도 괜찮다.
빨래는 내일 해도 된다.
청소는 조금 더러워도, 어차피 금방 또 어질러진다.
하지만 내 정신과 감정의 컨디션은, 지금 회복하지 않으면 저녁이 무너진다.
낮잠을 자고 일어나면 신기하게도 생각이 정리된다.
오후 간식 시간엔 웃으며 사과를 깎을 수 있고,
동화책을 읽어줄 때 목소리에 따뜻함이 실린다.
누군가는 말할 수도 있다.
"그 시간에 운동을 하든, 영어공부를 하든, 나를 위해 투자해야지."
그럴 수 있다면 나도 하고 싶다.
하지만 아이가 둘이고, 매일 12시간 이상을 아이들과 씨름하다 보면,
그런 생산적인 투자는 충분히 쉬고 나서 가능한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낮잠을 즐긴다.
팰팍의 오후 햇살이 거실을 비추고, 아이 둘이 말없이 조용히 잠든 틈.
나는 조용히 침대에 누워 눈을 감는다.
이게 내가 다시 ‘엄마’가 되기 위한 숨 고르기다.